묵묵한 아이, 억울함으로 남지 않기 위해

by Aunty Bo

엄마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은 제사와 차례를 집에서 지내고 있다. 명절이 다가오면 자연스레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면서 아이들과 추석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첫째 아이가 툭 던지듯 말했다.
“하… 가면 일하는데, 안 가고 싶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레이시아에 있던 5년 동안은 제사 한 번 못 지내봤잖아. 한국에 돌아와서도 고작 세 번 참석했을 뿐인데,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그래?’


그래서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다른 애들도 많은데 네가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한다고 그래?”


그러자 첫째 아이가 대답했다.
“거기에 제수용기 닦아서 음식 담고, 상에 차리는 거 다 내가 했어.”


그 말을 듣자 잠시 멍해졌다. 우리 집은 5남매라 조카만 7명. 이제 심부름할 만한 나이의 아이들만 해도 다섯이나 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조카 지훈이가 주방을 들락거리며 “할 일 없어요?” 하던 모습만 선명한데, 첫째 아이는 자신이 그 많은 일을 혼자 했다고 했다.

“거기 다른 애들도 있었잖아. 다들 안 하고 너 혼자 했다는 거야? 엄마 기억에는 지훈이가 계속 와서 심부름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자 아이는 조용히 덧붙였다.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상에 접시에 담아 올리는 건 다 내가 했어. 과일이랑 약과 같은 거 다 내가 담아서 올렸다고.”


그제야 깨달았다. 첫째 아이는 늘 묵묵히 움직이면서도 티를 잘 내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조용함이 쌓여 결국 억울함으로 남는다는 걸.


명절은 가족을 이어주는 의식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크고 작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아이의 말속에는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티 내지 못했던 억울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을 어떻게 풀어주어야 할까. 단순히 “다른 애들도 같이 해야지”라고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한 일을 엄마는 알고 있어’라는 인정의 말이 먼저였을지 모른다. 명절의 기억이 억울함으로만 남지 않도록, 이제는 아이의 노고를 먼저 알아채 주어야겠다.


가족이 서로를 알아주고 함께 웃는 명절. 그 따뜻한 기억으로 우리 아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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