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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Jan 05. 2025

너의 아름다운 비상의 길이 늘 푸르기를 소원한다.

세 번째 편지

오늘은 그런 날이네요.


눈 날리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그냥 멍하니 있고 싶은 날.


무언가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한

그런 감정이 올라오는 날.


무엇이 나를 잡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럴 때면 생각납니다.

지난 나의 잘못들이

누군가에게 주었던 상처의 말과 행동들이.


특히 오늘처럼 신비로운  하늘을 마주하는 날이면

그것들이 내 안에서

자꾸 붙잡고, 말을 걸어옵니다.


그 마음을 비워보고 싶어서

하지 못했던 말, 미안하다는 말을 나누고 싶은 날이네요.




곤아.

너 기억나?


우리 작별의 날 말이야.


너는 아쉬운 듯 헤어지기 싫어했고,

나는 그런 너를 외면했지.


우리가 함께 얼굴을 마주한

날은 많지가 않았어.


그럼에도 나는 기억나.


그날이 떠오를 때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떠오르는 것일까?

나에게 물었어.


그런데 이제야 알 것 같아.

왜 내가 너를 외면했는지.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하늘은 어디서나 다 보이잖아.

너무 커서 숨을 수가 없으니 말이야.


나는 생각해.


하늘을 보면,

그 하늘을 날고 있을 너를 말이야.


그리고 너에게 주었던 상처.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말이야,

어린 너에게는,

용기 내어 나에게 말했던 21살의 너에게는

그게 아니었겠구나 생각을 했어.


분명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었는데,

네가 어떻게 자랐는지,

너의 가슴속에

얼마나 깊고 큰 구멍을 안고 나아갔는지.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하늘조차도

그 깊은 어린 너의 상처를

감추어 줄 수는 없었을 텐데


너는 어떻게 그것을 안고 자랐을까?


비가 오는 날이었지.

그때, 우리 반년 만에 다시 만난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손 한 번만 잡아보면 안 되냐는 너의 말.

나는 외면했지.


잡아줄 것을 그랬어.

두 손 꼭 잡고

너, 너무 멋있다고

그 험한 시간들 잘 이겨내고 컸다고,


그러니 그냥

부디 너의 길을 잘 가라고 말해줄 걸 그랬어.


그리고 미안하다고.


지하철에서 생각난다.

너의 제복, 사람들의 시선,


멋진 너의 모습을, 왜 나는 부끄러워했을까.


"야. 다음에 너 방학 때 우리 다시 만나는 날,

제복 입고 오지 마. 나 너무 창피해. 사람들이 보잖아."


각진 모자,

제복 위의 망토.


그 망토를 입는 순간까지

수많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들이 너와 함께 했을 텐데..


나의 핀잔에도 그저 수줍게 웃던 너의 모습

그랬는데, 너는 그런 아이였는데,


모진 세월에도

순수한 마음으로 꿈을 향해 나아갔던 아이였는데.


그래서였을까?

우리 마지막 만난 날 너는 사복을 입고 왔었지.


그래서 더 미안하네.


우리 작별 후

몇 해 지나 어느 밤 너에게 연락이 왔을 때,

그때도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지.


나는 잘 지내니, 너도 잘 지내라고.


그때라도 말해줄 걸 그랬어.


너의 모든 세월이, 의지가, 마음이, 빛난다고

그러니 늘 그 빛을 안고 살아가라고.


왜 너를 밀어냈는지 너는 알 수 없겠지.


아마 혹여 다시 마주하는 날이 있다 해도

나는 말할 수 없을 거야.

그 누구에게도 말이야.


가끔 하늘을 보면 생각해.

나의 그 이유를 되뇌며.

그리고 소원해.


지금 너의 하늘은 그 누구의 하늘보다

깊고, 높고, 푸르기를


오늘 마주한 눈 내리는 하늘이 너에게 미안하다고


꼭 한 번은 말하라고 해서

나의 마음을 전해보네.


21살의 너에게 이제야 용기를 내어 말해.


미안하다.


어디서든

너의 의지, 모든 것을 뛰어넘었던 그 의지.

잊지 마.


늘 푸르기를 소원한다.

너의 아름다운 비상의 길을.

곤이와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친구로 알게 되었어요.

공군사관학교 학생이라 방학 때만 얼굴을 볼 수 있었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했고,

전화통화하며, 우정? 썸? 을 키워나갔어요.

하지만, 어느 날 밤새 통화하다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아이의 배경을 알게 되었고,

저는 그와 유사한 상처로 한동안 힘들었기에 그 아이의 마음을 외면하기로 했답니다.

사실, 당시에는. 그 당시에는 그 외면의 이유를 저도 뚜렷이 알 수 없었는데,


이제야,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더 미안하네요. 그 순수했던 어린 마음을 내가 알아주지 못해서.


무엇이든 뛰어난 아이였어요. 곤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 파일럿이 되었을지 민항기 조종사가 되었을지는 저는 모릅니다. 다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 아이가 올려다보는 하늘은 늘 맑기를 푸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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