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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사랑에 빚진 자

by 작가서당

2024.12.10 화요일, 갈비뼈가 골절되어 이곳 병동에 입원했다. 사고는 그 전날, 12월 9일 월요일에 있었다. 그날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 찍고 진단을 받은 후, 여러 차례 통증 주사를 맞으며 통증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앉기도 어렵고 누워 있는 것도, 숨쉬기도 괴로운 지경이었다. 견디기 힘들어 다음 날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한방병원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곳인데,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훨씬 쾌적하고 조용하다. 암 환자, 스포츠 선수, 사고 후 재활과 요양을 위한 병원이라는 사실은 입원한 다음 날에서야 알았다. 처음에는 그저 아픈 것을 견디기 바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 병원에 오게 된 배경을 돌아보게 된다.


이곳까지 오는 길은 나 혼자의 판단만으로는 어려웠을 것이다. 친구와 지인들, 형제자매의 조언과 격려가 있었다. 나는 아마도 늘 그래왔듯 그날도 참으며 버티려 했었을 것이다. 입원하라는 의견을 준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아픈 몸을 이끌고 참았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방병원 쪽을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 이는 오빠였다. 덕분에 비교적 빠르게 병상을 구할 수 있었다. 병은 알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걱정을 끼칠까 염려되어 처음에는 언니에게만 전화로 조심스레 알렸다. 언니는 다른 형제들과 기도해 줄 이들에게 연락하라고 조언했다. 곧바로 유용한 의견들이 이어졌다. 간병인을 써보는 것이 어떠냐, 입원을 고려해 보면 어떠냐는 등의 조언이 쏟아졌다. 역시 병은 나누는 것이 맞다. 폐를 끼친다는 마음에 주저되지만 그 부담을 넘어 따뜻한 손길이 다가왔다. 사실 이 병원에 오기까지도 내가 겪은 아픔의 연대기처럼 그때그때 주변 사람들의 작은 배려들이 나를 이끌어 주었음을 느끼고 있다.


사고 다음 날은 공교롭게도 약속이 세 개나 잡혀 있었다. 오전에는 합창 연습이 있었고 오후에는 북성재 인문 모임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날이었다. 저녁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현대 음악 공연을 볼 예정이었다. 할 수 없이 음악회에 같이 가기로 한 여고 동창 친구들에게 상황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는 꿀벌처럼 소식을 잘 퍼뜨리는 메신저 친구가 있어 소식은 곧 퍼졌다. 곧 나는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에 둘러싸였다. 친구들의 유쾌하고 따뜻한 말, 내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기도의 문장들. 사랑은 그렇게 내게 먼저 와 있었다. 누군가는 이 시간을 ‘특별 영성 수련의 시간’으로 삼아보라고 했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라는 조언도 있었다. 특별히 아픈 몸에 기회를 주고, 한 번은 완전히 내려놓아 보라는 그 말—‘방기(放棄)’—이 오히려 위로처럼 남았다. 특별한 쉼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다른 연말보다 이례적으로 약속이 많이 잡혀 있었다. 어제는 글씨 수업과 대학 동창들과의 송년회가 있었지만 참석하지 못했고, 오늘은 학수고대하던 여고 동창들과의 추사박물관 방문을 하지 못했다. 2주 후 성가대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도, 꼭 참석해서 축하해주고 싶은 결혼식도 아마 갈 수 없을 것이다. 섭섭하다.


병상에 누워 지내다 보니 내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도움과 조력을 받아왔는지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는지도 새삼 깨닫는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 내가 위로하지 못했던 아픈 이들의 얼굴도, 무심히 흘려보낸 타인의 고통도 떠오른다. 또한 생명의 신비, 우리 몸의 신비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몸 어느 한 곳도 허투루 존재하지 않는다. 작은 부분 하나가 탈이 나도 삶 전체가 흔들린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며 나는 내 몸에 대해 새롭게 느끼고 있다. 우리가 매일 익숙하게 살아가며 당연시하는 것들, 그 소중함을 이번 기회에 비로소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

어제는 내가 속한 주드림 성가대의 팀장님, 파트장님, 성가사님이 병문안을 왔다. 내가 “사랑에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성가사님이 성경 구절 하나를 읊어주셨다.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떤 빚도 지지 말라.” 그러니 사랑에 빚지는 것은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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