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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과 환대

by 작가서당


지난겨울 갈비뼈 골절로 한방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병원에서 식사와 함께 나오는 흰 수저 봉투 위에 다음과 같은 시구가 쓰여 있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수저 봉투에 이런 시구가 쓰여 있다는 것이 내게는 새롭고 고맙게 느껴졌다. 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중대한 일이 아닌가. 이 시구는 병원에서 나는 그저 환자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순간을 짊어지고 온 귀한 방문객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라 읽혔다. 이 시구를 처음 본 것은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서 본 병원 안내 팸플릿에서였다. 팸플릿 맨 밑에 적혀 있던 이 시구는 나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흠, 첫인상이 좋네”라고 생각했다. 병원 분위기가 그 시구와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원장님이나 간호사 선생님, 그리고 병원 직원은 모두 조용하고 친절하게 바쁜 치료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믿고 맡기기로 했다. 이 병원에서는 의술이 인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진료를 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다시 한번 그 시구를 발견한 것은 식사가 나왔을 때였다. 수저 봉투에서 다시 시구를 마주하자, 병원의 환대 정신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병원 곳곳에 환자를 귀히 여기려는 마음이 배어 있었다. 이 시구가 적힌 수저 봉투에서 수저를 꺼내어 삼시 세끼를 먹으며 나는 환자가 아니라 귀한 방문객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정현종 시인의 원래 시는 조금 다르게 시작한다. 원래 시에는 ‘사람이 온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인간 일반을 의미하고, 다가오는 사람을 귀한 방문객으로 대한다는 보편적인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발견한 시구에서는 '사람'이 '한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이 시구는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병원에 온 나와 같은 환자 한 사람을 특정하여 다루고 있다. 병원은 각 개인을 존중하고 그 사람의 삶을 귀하게 여기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생을 짊어지고 온 특정한 사람으로 대한다는 결의와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방문객이 단순히 몸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도 함께 온다고 말한다. 그 마음은 부서지기 쉬운 것이라 쉽게 다루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시인은 강조한다. 이 부분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병원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환자들은 단순히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들이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담긴 마음이 몸과 함께 오고 있다. 나는 병원에서 시에서 말하듯 그런 진심 어린 환대를 받고 있었다. 수저 봉투 위에 적힌 시는 단지 글귀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병원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이른 아침이면 회진을 도는 주치의 선생님의 환한 미소, 간호사실의 생기와 병실에 들르는 간호사 선생님의 친절한 발걸음은 마음을 안정되게 해 주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는 병원 로비에서 환자, 가족, 직원을 위한 다채로운 송년회가 열렸다.


병원은 환자를 단지 환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이야기를 가진 귀한 존재로 여겨 주었다. 그것이 바로 이 시구에서 말하는 ‘방문객’이 갖는 의미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귀한 방문객이며, 각자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로 환자 하나하나는 환대받을 귀한 방문객이다. 병원이 제공하는 전문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의 따뜻한 배려와 존중이 환자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이 시구는 단순히 한 줄의 시가 아니라 병원과 환자 사이의 진정한 소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시구는 내가 병원에서 겪는 모든 경험을 다시 한번 성찰하게 했다.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들을 통해 느꼈던 배려와 존중이 소중하다.


방문객의 마음의 무게를 헤아려 지극히 환대한다. 그런데 부서지는 것이 어디 마음뿐이랴. 삶에 부딪히고 고단해지는 것은 몸도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환자는 부서진 마음과 몸을 이끌고 와 조용히 환대받는다. 얼핏 봉투 위 글씨 다음의 세 잎 클로버 그림에도 눈길이 간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그랬던가? 희귀한 네 잎 클로버와 꽃말 '행운'만 찾다 보니 세 잎 클로버의 ‘행복’이라는 꽃말은 지나치며 살고 있었다. 행운은 네 잎 클로버처럼 저만큼 있고 행복은 세 잎 클로버처럼 늘 가까이 풍성히 있다. 병원에서 한 사람 방문객 되어 가까이 있는 행복을 짚어보는 하루다. 문득 생각이 미친다. 우리가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그들 또한 어쩌면 잠시 머물다가는 환대받아야 하는 귀한 방문객들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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