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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Feb 10. 2020

나를 숨겨라, 제주 서귀포 '카페 바다다'

제주 공간 여행

*카페 홍보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전국 어디에나

이쁜 카페가 넘쳐나는 세상.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 대부분의 집에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기만의 거실이 없어서

이를 대체할 카페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p230>


그런데...

거주민뿐만 아니라 여행자도 많은 제주도에  

왜 그리 카페가 늘어나는 것일까?

꼭 카페가 아니더라도

여행자가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은

여기저기 많을 텐데 말이다.


<카페  바다다>


어느 해 10월,

제주 서귀포시 중문 관광단지 근처

대포 주상절리 부근에 있는 '카페 바다다'에 갔다.


카페가 예쁘다기보다는

건물 생김이 독특하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처음 만난 사람의 얼굴 보듯이

우선 건물 외경부터 보니,   

2~3층의 빌딩도 아니고

주택도 아니고

마치 컨테이너처럼 직사각형 박스 모양이라

정말 특이하다 싶었다.  



자세히 보면 건물 전체가

땅으로부터 약간 떠 있는 듯 보여서

만약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면

수상 가옥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바다를 향해 낸 폴딩 도어는

영화 건축학 개론에 등장해

인기를 끌었던 '서연의 집'을 연상케 한다.



사방을 열어 놓아서

빛이 잘 드는 내부 공간은

널찍하고 시원해 보인다.




레드 카펫 대용인지

계단의 색이 붉다.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널찍한 옥상 공간으로 나간다.



옥상에도 바다를 향해

형형색색의 의자가 자리 잡고 있으며

옥상에서는  

카페를 둘러싼 소나무 숲과 바다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서귀포 앞바다를 바라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여행자들은 멀리 제주도까지 와서

왜 자신이 살던 곳에서처럼

카페를 찾아다닐까?


햇빛을 가린 파라솔과

숲 속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며

이문열의 소설 <익명의 섬>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어디서든

'익명(匿名)'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우리나라의 남쪽 끝 제주도에서도
카페를 찾아가는 이유는

그냥 보통의 거실이 아니라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익명이 보장된
'익명의 거실'이 필요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직장 근처의 카페에 가면

내 자리 앞에 앉은 사무실 동료를 만나고

집 근처 작은 카페에 가면

주인장이 나를 알아보거나

단골손님들과 눈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제주도 어느 바닷가,

아니, 어느 큰 길가에 있는 카페라 할지라도

갑자기 나타난 여행자를 알아보는 주인장이나,

회사 동료, 단골손님도 없을 확률이 높다.


아주 완벽하지 않더라도

나와 친구가 간섭받지 않고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익명(匿名)'이 보장되는 것이다.



땅에서 약간 떨어져 섬처럼 보이는 카페,

소나무와 파라솔이 나를 가려주고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  <카페 바다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나만의 거실 같을까?




<카페 바다다>는

나를 숨기는 '익명의 섬'인가 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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