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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Nov 06. 2023

쓰레기통을 버렸다

다시 산 건 안 비밀


우리집엔 쓰레기통이 총 세 개 있다. 하나는 부엌에, 하나는 뒷베란다에, 하나는 안방 화장실에. 다른 화장실이나 방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한방 화장실에 있는 쓰레기통은 무려 20년이 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반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귀여운 그림이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통인데 결혼 전엔 방에서 쓰다가 결혼 후엔 따라 나와서 화장실 쓰레기통이 되었다. 여전히 그림은 귀엽고 플라스틱은 거짓말처럼 새것 같다. 뒷베란다에 있는 쓰레기통은 시어머님이 가지고 계시던 것을 가져왔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용량이 큰 쓰레기통이 필요했는데 마침 어머님이 안 쓰시는 20L짜리가 있길래 얼른 주워왔다. 남편은 매직캔을 사자고 했지만 그만큼 큰 쓰레기통을 비싼 돈 주고 사고 싶지 않았다. 부엌 쓰레기통은 결혼 초반에 구입했던 것 같은데 제일 자주 봐온 녀석임에도 그 시작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디서 났더라.



남편은 그 쓰레기통이 너무 작아서 쓰레기봉지를 자주 갈아줘야 한다고 바꾸고 싶어 했다. 더 큰 것으로. 역시나 매직캔을 사자고 했다. 매직캔은 사지 않겠다고 했다. 첫 번째 이유는 쓰는 친구들 집에 가보면 매직캔이 열릴 때 그 안에 묵혀있던 기저귀냄새가 나오는 게 역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일반 종량제나 아무 봉지를 끼울 수 없고 전용 비닐을 사야 하기 때문이었다. 우리집은 아파트 통로에 쓰레기봉투 배출구가 있어서 쓰레기를 버리는 게 번거롭지 않은 터라 그때그때 자주 버릴 수 있으므로 굳이 큰 용량의 쓰레기를 안고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손만 대면 자동으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쓰레기통을 보며 저런 걸로 바꿀까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 가격을 알아보니 10만 원이 훌쩍 넘는 것이었다. 10만 원을 쓰레기로 만들 수는 없지 싶어 마음을 가다듬고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의 물건을 하나둘씩 다시 보고 버리다 마주친 녀석의 모습은 참담하게 느껴졌다. 락스로 내부 통을 닦아주고 물티슈 등으로 뚜껑 및 겉면을 닦아 주었는데도 금속인 겉은 곳곳에 녹이 슬었고 아래쪽엔 먼지가, 내부 통엔 찌든 때가 묻어있었다. 이 녀석이야말로 갈 때가 됐구나 싶었다. 그래, 보내주자. 마음을 먹고 보니 매번 쓰레기를 뒷베란다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이 느껴졌다. 요리하다 보면 나오는 계란껍질이나 작은 비닐 등을 바깥으로 가지고 간다면 아마 가는 길이 다 얼룩 천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그때그때 비닐에 넣어 버리자면 싱크대는 정신없고 비닐도 더 많이 쓰게 될 것이다.




이 고민을 해결해 주러 나타난 걸이식 쓰레기통. 일부러 제일 작은 용량으로 찾고 또 찾았다. 잘 걸려있고 뚜껑이 헐거워서는 안 되며, 입구는 넓고 디자인은 단순하여 세척하기 쉬워야 한다. 용량이 너무 크지 않아 쓰레기통을 자주 비울 수 있어야 하고 전용 봉투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한다. 그렇게 조건에 맞는 물건을 찾아 구매 완료! 정수기 근처에 걸었더니 남편도 아이도 유산균 먹고 쓰레기를 쏙쏙 잘 버린다. 왜인지 바닥도 깔끔해 보이고 싱크대 위도 산뜻하다.


요리조리 이동하며 제 몫을 한다. 좌) 평소 정수기 아래, 우) 조리중 인덕션 아래





쓰레기통을 버렸다. 그리고 다시 샀다. 돈 쓰고 자원을 쓴 건 아깝지만 명을 다한 물건을 잘 보내고 꼭 필요한 새로운 물건을 샀으니 잘했다고 위안해 본다. 대신 앞으로 최소 20년은 쓰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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