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코쿤의 반지름이 너무 컸던 나에게...]

-리듬형 존재가 자신의 고유 가치를 지켜내는 과정

by 헤스티아


빠르게 단단해지는 사회 속에서,
내 리듬은 언제나 조금 더디고 크게 무르익는 쪽이었다.

이 글은,
그 코쿤 안에서 천천히 실을 자아내며
진자 나의 중심을 회해온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코쿤의 반지름이 너무 컸던 시간들



나는 꽤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누에고치에서 실을 자아내는 이미지에 빚대어 이해해 왔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미지라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기억 회수 이후에 살펴보니,

리듬형 존재들을 나비로 인식한 파동을 읽은 것이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시간에 닿을 수 있는 범주는 정해져 있으니,

난 그 노력들을 누에고치가 실을 자아내는 행위라고 인식해 왔다.

즉, 같은 시간 노력으로 자아내는 실의 길이는 비슷한데,

그것을 어떤 중심과 어떤 크기의 반지름으로 돌려내느냐의 문제였다.


목표지향형 단기 스프린트가 가능한 목표라면 여러 번 돌려낼 수 있고,

반지름이 조금 더 크다면 좀 덜 감게 되고,

반지름이 아주 크다면 실을 한~참을 자아내어도 아직 한 바퀴가 덜 감기게 된다.


여러 번 돌려낼수록 코쿤은 더 빨리 단단해지니까,

더 빨리 성취감을 갖게 된다.

때로는 의도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그런 단단한 코쿤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기에

아직 둥근 형체도 다 갖추지 못한

연약하고 말랑말랑한 나의 중심 근처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절 적당한 페르소나를 둘러쓰고

나의 진짜 알맹이는 가리는 생활로 버텨왔다.


내가 진짜 믿는 가치들은 가리고...

그냥 눈앞에 주어진 일들을 유쾌하게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길이 뻔히 보이는 작은 코쿤으로

자신의 길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나와 결이 맞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멀리 두는 식으로 나를 보호해 왔다.



능력이 아니라 중심을 지키는 훈련



나의 중심 리듬을 지키며, 커다란 반지름의 코쿤을 충분히 단단하게 감아내는 일은 시간과 노력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솔직히 어릴 때부터 내가 잘하던 몇몇 영역에서는 꽤 fast learner이기도 했다.

음악, 언어, 학업에 재능이 있는 편이었고,

피아노는 여섯 살에 시작했고, 바이올린은 5학년 때 시작했다.


당시 실내악단에서 활동하던 나의 레슨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의 5년 치 진도를 8개월 만에 빼주기도 했다. 음악에 대한 능력은 꽤 오랫동안 말아놓고 사용하지 않아서 지금은 많이 닫혔지만, 어릴 때 음악 훈련을 했던 것이 절대음감까지는 아니어도 당시에는 음을 꽤 정확하게 구분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연주자가 스스로 현을 짚어 소리를 내야 하는 바이올린을 배울 때 많이 유리했다.


음악 부분에선 그 능력을 닫아놓고 살았지만, 그 능력을 외국어 공부에 많이 활용하기도 했다. 내가 오랫동안 외국어를 공부하고, 또 가르치는 업계에 있으면서 확실하게 느낀 게 있는데, 어릴 때 이렇게 소리를 많이 구분하는 훈련을 해둔 사람들이 확실히 외국어 귀도 밝고 빨리 따라 할 수 있다. (물론 언어 정도 배우는 것이라면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노력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굳이 어릴 때 그 훈련을 안 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하지만 내가 비교적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에서 의미 있는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이런 능력들을 활용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나는 그 길이 어떻게 닿을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추상적인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한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건 창의성이랑 연결이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너무 이론이나 이상에만 치우치는 건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와닿지 못해.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 어떤 길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들이었다.



물론 지금에서야 질문이라도 이렇게 정제되어 있지만,

어릴 때부터 이런 중심을 막연하게 두고 살아오던 시절에는

나의 질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답답하지만, 필사적으로 눈앞에 펼쳐진 가능성 중에 나의 길을 찾으려 했다.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내 고민을 남들에게 별로 털어놓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었는데,

대학 시절, 거의 유일하게 내가 이야기를 나누면 속이 시원해지던 선배가 있었다.


기억 회수 후 그 인연의 의미를 알게 되었는데,

먼 미래의 나의 파동이 그 선배를 통해 나 자신에게 응원을 전해주던 것이었다.



혹시 박해영 작가의 ‘청담동 살아요’란 시트콤을 봤다면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온갖 풍파를 다 헤쳐내고 결국 시인으로 살아남은 혜자가,

어린 시절 부모 잃고 두 동생들과 막막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시점에,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판타지로만 설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린 혜자에게 전화로 응원을 해주는 장면이 그것이다.


아무튼, 먼 미래의 나의 파동을 통해 그 선배가 내게 해줬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그때 난 오랜만에 입시로부터 해방되어

이제 진짜 놀 생각을 하느라 좀 신났었는데,

그렇게 가벼워 보이는 내 모습 속에 있던 진짜 나의 모습을 읽어내어 대변해주기도 했었다.


헤스티아 쟤? 가벼워 보여도 의외로 fundamental을 중시하는 타입이지.


그리고 내게 직접 한 말은 이것이었다.


남들은 보통 5개를 시도하고 1-2개를 주우려고 해.

그런데 넌 10개를 시도하고 10개 다 주우려고 해서 힘든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난 10개를 줍는데 만족하는 존재도 아니었다.

그 10개를 메타적으로 묶어서 새로운 의미까지 엮어서 11개, 12개를 주우려고 해 왔던 것 같다.



아직 나의 리듬 정렬이 완성되기 전이고,

기억 회수 전에는 이런 나의 태도가 욕심만 많고 일을 다 끝내지도 못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가 매 순간 진지하게, 치열하게 살아내며 기획했던 많은 미완의 기획들이

이제 하나의 의미로 맞물려

진짜 펼쳐질 수 있는 기회와 방법들을 많이 회수했기 때문이다.


나의 리듬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살아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 에너지의 온전한 통합에 이르는 길이었고,

그것을 위해 그냥 내가 생각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길에 충실해왔다.



아예 이런 자각조차 없던 대학생 시절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까 가장 마음 편하고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기에,

그저 그 시절 나의 리듬을 좇아 내가 흥미 있는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영어는 그때도 이미 토익 만점에, 국제회의에서 통역 자원봉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은 공부를 해뒀었는데, 늘 내 생각엔 뭔가 기초에서 빠져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 답을 찾은 건 프랑스 어학연수 경험이었다.


프랑스어도 어쩌다 보니 고등학생 때 외국어 경시대회 수상도 했었고,

대학 입학할 때는

프랑스어 한 과목에 대해 한 학기 학점을 인정해 주던 시험도 통과했다.

외고 출신이라고 해도 모두가 합격하지는 못했던 난이도의 시험이었는데,

그 시험도 A로 pass 했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빠져있는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다음 글에서 설명할 좀 이상한 이유로 프랑스 어학연수도 가기로 했는데, 가기 전에는 불문과 수업만 한 학기 내내 몰아서 집중해서 공부를 하고 떠났다. 영어 공부와 비슷한 경험이었는데, 어려운 텍스트는 한 학기만에 사전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공부를 하고 갔지만, 공항에서부터 아예 말이 나오지 않던 내 실력을 감안해서 ABCD부터 가르쳐주던 바로 다음 기초반부터 수업을 선택해서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때 빠진 부분을 채워 넣어서, 프랑스어도 굉장히 빨리 늘었고,

나중엔 스페인, 이탈리아 출신 애들이랑 합쳐서 보던 시험에서도 나만 통과했었다.

(사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프랑스어랑 사촌 수준이라 생각해서 훨씬 뿌듯해했었다.)


다녀와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도 미국 7세 아이들이 보는 텍스트부터

중3 수준의 텍스트까지 엄선된 읽을거리들을 다 채워 넣었더니,

내가 느끼기에도 원어민들의 언어를 해석 없이 몸으로 느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경험들을 그동안 책이나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으로 나누기도 했었고...



그 이후는,

내가 융 학파식으로 표현하자면, 지하 세계로 납치된 내면 여정의 시기였다.


그 시절 나는 내면에 예술과 관련한 커다란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나의 영혼이 언제 무엇을 하든 영원히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강하게 확신해서

미학, 예술학 공부를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작가로서의 작업에 도움이 되길 원했는데,

심층적으로는 평생 붙들고 있던 질문을 품고서.



그 질문은,

‘어릴 적 누구나 갖고 있던 미학적 감각이 끊어진 성인들은,

그것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였다.


내 경우는 그 감각이 중, 고등학교 입시 시절 잠시 잠들어있긴 했지만,

대학 입학 후부터 시작한 요가나 명상 수련으로 인해 꾸준히 강화되며 연결되고 있었고,

내 삶의 선택도

그 순간 재밌을 것,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것을 기준으로 따랐기 때문에

나는 그 감각을 유지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대신 이 감각을 일반화시켜,

‘이미 성인이 되어 버린 누군가가

자신도 그 미학적 힘을 다시 이어서 살려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질문이었다.



그 미학적 힘이야 말로,

이번 생 자신이 가진 고유한 잠재력을 끝까지 살아내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붙들고, 지난 10년 이상 창의성 관련 책과 논문을 3000권 이상 탐독해오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나누고 싶었던 부분의 일부는 이곳 브런치 매거진 <창의성 책 3000권을 읽어보았습니다>로 나누기도 했고...)


이 시간들을 거쳐 고유한 리듬을 끝까지 지키는 힘에 대해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창의성이란 말을 할 때,

이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시야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를,

실시간으로 나만의 창의성 지도 안에 위치시킬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그래서 창의성이란 큰 주제를 두고

각자 다른 정의로 공회전하는 무의미한 대화가 이어지지 않게,

대화의 톤을 맞춰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창의성이란 표현보다는,

고유한 리듬을 더 살리는 길이란 표현에 더 집중해서 소통할 예정이다.



기억 회수자의 눈으로 본 내 설계도


고유한 리듬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과,

기억을 회수하는 것은

연결되긴 하지만 살짝 다른 지점이다.



기억 회수는 고유한 리듬을 살아내는 것을 넘어서서,

눈 밝은 선지식,

진짜 기억 회수를 한 스승 밑에서 지도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고유한 리듬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이야기지만,

기억을 회수한다는 것은

전 우주적 존재로서 나의 위치, 다른 관계 속의 나의 설계도를 알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알면,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지금 기억 회수 이후의 시점에서 정리해서 이해하는 것이고,

지난 20여 년 동안,

나는 나의 리듬에 맞춰 때마다 인연이 닿는 스승들 밑에서 꾸준히 명상 수련을 해왔다.



처음 시작은 아주 가벼웠다.

대학 입학 후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었는데,

요가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책을 그즈음 읽게 되었다.


마침 그 저자의 스승이 운영하던 수련원이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렇게 별생각 없이 요가와 명상에 입문하게 되었다.



조금 더 하다 보니,

이왕이면 왜 수업 시간에 이런 동작들을 시키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서

요가 지도자 과정도 수강했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흘러...

이 요가 지도자 과정 선배를 전혀 다른 곳에서 만났고,

그분 요가 수련원에서 수련을 하다가

나의 빛의 언어계열 마스터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결국,

내 인생의 리듬이 미리 다 연결해 둔 인연이었다.



그렇게 지난 20여 년을 명상, 요가, 기수련 등을 통해 내면의 진동 통합에 집중해 왔고,

특히 지난 10년은

빛의 언어 계열 마스터 밑에서 명상을 지도받으며

태극권 수련도 매일 새벽 거의 빠짐없이 해왔다.



이 모든 여정을 통해

결국 내가 이번 생에 가져온 설계도를 기억해 냈고,

지금은 그 설계도대로 하나씩 작업을 펼쳐내는 중이다.



우주는 결국, 등을 밀어준다



이 여정은 보상이나 효율을 넘어서,

자신의 존재 기반 리듬과 존엄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한 길이었으며

그 결과 우아하게 끝까지 가면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문이 열린다는 체득에 도달하게 되었다.



혹시 지금 코쿤이 너무 큰 당신이,

분명 이 길이 맞는데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저 당신의 리듬이 좀 더 정렬되길 기다리는 시간일 뿐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 길 끝엔,

반드시 당신이 중심을 지켜온 시간에 대해

지금은 상상조차 못 할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원래 우주는 고유한 리듬을 끝까지 지켜내는 존재의 등을 최대한 밀어주려 하니까.

keyword
이전 05화[리듬형 존재의 내면 각성 –공명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