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인생이 헤매고 뱅뱅돌던건 리듬형 존재라서?

by 헤스티아

오랜 명상과 리듬정렬 이후, 최근 들어 나의 존재 방식에 대해 좀 더 뚜렷하게 언어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잘 모르겠고,

관심사와 호기심이 계속 바뀌고,

세상의 기준과 스스로의 가치관이 잘 안맞는 것 같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나의 고유성을 끝까지 살아내고 싶다는 갈망.


이 모든 것이 나의 존재 방식이 리듬형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을 어떤 유형의 존재로 고정시켜 나누기는 좀 조심스럽긴 한데,

이건 그 사람이 이번 생에 가장 주력으로 살아내는 존재 방식이 무엇이냐로 나눈 것이다.


모든 사람은 특정한 때, 특정한 필요에 따라 자기의 중심 존재 방식과 다른 유형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존재해야만 그 구간을 통과하는 시기가 있다.

그래서 사람을 특정 유형으로 나눈다기보다는,

내가 주력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어떤 유형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가 정도로 '언어화' 시키는데 의의를 두면 좋겠다. 인간은 이름붙일 수 없음에 대한 두려움, 불안을 크게 갖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주도권을 더 가질 수 있으니까.


리듬형 존재는 애초에 삶의 관심, 진행이 나선형 파동으로 흘러오는 경우가 많다.

짧은 주기에서 관찰하면 주의가 산만해보이거나, 호기심이 많고,

직업도 여러 가지 관심사를 두고 바꿔보기도 한다.

그런데 꾸준히 장기간에 걸쳐 관찰해보면,

그 관심사는 자기 내면의 중심을 두고 나선형의 형태로 반복해서 돌아오면서 더 밀도가 채워지거나, 범위가 확장되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들이 합쳐져서 삶의 어느 순간에 반드시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이 온다.


복잡계에서 관심을 갖는 창발성.

분리해서 볼 때는 없던 요소가 다같이 합쳐놓을 때 갑자기 드러나보이는 현상.

리듬형 존재로 살아갈 때는 흔하게 겪는 경험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직선형 존재, 유지형 존재를 구분해보았다.

직선형 존재는 목표지향적으로 수직적으로 단계를 달성하는 것이 태생적으로 편하다.

그래서 리듬형 존재에게 5년 뒤,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목표로 세우라는 요구는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들에게는 지금 이 리듬이 어디로 데려다줄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놀랍게도 지금 내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세계에 5년 뒤, 10년 뒤에 도달해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리듬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지구의 마찰 속에서 현실화 노력을 한다면.


유지형 존재는 판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실무를 담당하는 역할들을 많이 한다.

직선형 존재의 수직적 목표, 리듬형 존재의 뜬구름잡는 듯한 이상 등을 현실에 구현해주는 역할이다. 얼핏보면 유지형 존재는 소소한 반복에 만족할 것 같지만, 자신의 야망에 따라 큰 조직 안에서 그 일을 구현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뒤집어 말하면 본인이 유지형 존재로 가장 편안하게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조직 밖에 나와서 조직의 이름을 떼고 자기가 판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분야에서 약하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리듬형 존재라고 해도 특정 순간엔 직선형 존재로 목표 달성을 해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도 하고, 자신의 리듬대로 살기 위해 유지형 존재로서 할 일들을 하면서 보내야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절대적 구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된 경향성의 문제로 본다.


굳이 리듬형 존재를 따로 언급하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유난히 리듬형 존재들이 자기 길을 찾아가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길잡이도 없고, 그저 개개의 리듬형 존재들이 각자 우연히 살아남은 것처럼 보여서다.


여기서 중요한건, 리듬형 존재로서 자신의 고유한 리듬에 완전히 충실하려고 하면,

물론 현실의 마찰은 있을 수 있어도

존재적으로는 편안하다.

이게 나야.

이런 마음을 늘 마음 중심에 갖고 있다.


그래서 나의 사회적 기능이 사회적 요구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지거나, 문제로 인식해서 고쳐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나는 왜 이럴까?'라고 질문하는 것은,

문제를 고치겠다는 질문이 아니고,

나의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일 뿐이다.


다만, 이렇게 언어로 정리하려면 일단 내 삶이 충분히 리듬정렬이 되고,

나의 삶에 대한 메타적 인식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그 시기를 꽤 오랫동안 통과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여전히 내 리듬대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언어로 표현해보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