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거미줄을 쳐내고 거미를 쫓아내도 끈질기게 다시 집을 짓는다. 스튜디오 외벽에 늘어진 거미줄이 흐린 날엔 유독 잘 보인다. 모서리에 웅크리고 거미줄을 짓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예비 집주인까지 합치면 대략 10마리는 될 것 같다. 입장에 방해가 될 지경에 이르러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빗자루를 갖고 나와 탁탁 쳐냈다. 아마 거미들에게는 청천벽력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 손바닥 (절대 과장이 아니다)만 한 녀석을 두려움에 떨며 쳐냈는데 어느새 땅으로 떨어진 녀석들이 재빠르게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아마 다음날이면 같은 자리에 더 단단한 집을 짓고 매달려 내게 혓바닥을 내밀겠지.
빗자루를 탁탁 털어내고 거리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아 방금까지 거미가 매달려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흐린 날에 왜 모든 게 느려지는지 모르겠다. 느려지는 탓에 모든 감각이 활성화된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신경이 날뛰듯, 모든 구멍이 확장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치익 - ’ 성냥갑에 성냥을 긋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일렁이는 둥근 주홍빛이 팔로산토 나무 조각에 옮겨가면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15초 정도 기다렸다가 손가락 쪽으로 기어올라오는 불을 피해 서둘러 성냥을 흔들어 끄고 나무 조각을 흔들어 향을 퍼뜨렸다. 시원한 달콤한 민트향이 스튜디오에 스며들었다. 마침 토독토독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쩐지 거미들이 쉽게 집을 포기한다 싶더라. 비가 오지만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우산을 쓰고 걸어서 동네 커피숍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해왔다. 가을비가 내리는 창문을 마주 보고 앉아 작업을 개시했다. 점점 사그라드는 여름의 향기와 기지개를 켜는 황량한 기운에 대비되게 며칠 전에 받은 라넌큘러스는 활짝 피어있다. 아직 불씨가 살아있는 팔로산토가 은은한 나무향을 내뿜고 덕분에 숲 속에서 작업하는 기분을 낼 수 있었다. 비 오는 날, 나무향 가득한 곳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느릿느릿 타자를 치면 빗소리와 타자 소리가 섞여 헷갈린다. 수업이 없는 날 스튜디오는 나만의 작업실이다. 요즘엔 향에 집중해서 수업을 연구 중이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 테지만 향이 주는 힘은 실로 놀랍다. 머리 서기가 어려울 때 향을 피우고 집중하는 연습을 한 후에 머리서기에 도전하면 10초 이상 버티는 게 거뜬해진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도 향을 피우면 진정이 되며 무엇보다 유난히 들뜨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수업 때, 향을 태우고 함께 호흡을 하면 스튜디오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진다. 모두 무아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한동안 아로마 오일과 인센스 스틱을 피웠는데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스머지 스틱을 접하게 되었다. 화학 성분을 가미하지 않고 허브, 나무 조각 등 자연물을 말려서 태우는 방식이다. ‘번지다’라는 의미의 스머지(smudge)는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말린 허브 묶음이나 식물을 태워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사용하던 천연 인센스 스틱으로 오늘날 제로 웨이스트와 힐링으로 이어진다. 잎을 모아 스머지 스틱을 만들고 남은 잎, 부스러기, 줄기 등을 모아서 포푸리를 만들 수 있다. 말 그대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태울 때 나는 연기는 요가와 명상 수업할 때 집중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버릴 게 없다.
원주민들은 팔로산토를 영혼을 맑게 해주는 신성한 나무라고 믿었다. 요즘 자주 사용하고 있는 팔로산토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나무로 불리며 에콰도르 산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나고 페루산은 솔향과 민트향이 난다. 내가 사용하는 나무는 페루산이다. 놀랍게도 스머지 스틱을 태워 경험한 스트레스 감소, 진정, 집중, 공기 정화 등의 효과는 실제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단순히 온도, 습도, 조명에 따라 다르다거나 미신이 아니라는 소리다. 자연 그 자체의 향을 코로, 눈으로, 손으로 느끼면서 감히 다른 존재에 정신을 빼앗길 사람이 있을까? 살짝만 스쳐도 방어기제인 듯 강한 향을 내뿜는 로즈메리를 한 움큼 쥐니 손에 송진처럼 끈적한 액이 묻었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오랜만에 느껴보는 촉감에 마음이 안정된다.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되는 유일한 순간'이다. 스머지 스틱을 만들 때만큼은 평소 생각으로 치열하게 타오르는 머릿속이 잠잠해지고 무작정 빠져든다.
"요가 수업해서 얼마 벌어요?"
시골에서 창업한 청년은 종종 여러 목적과 이유를 지닌 이들과 자의 반 타의 반 미팅을 하게 되는데 걱정 어린 시선을 자주 받는다. 하긴, 시골에서 요가와 명상 리추얼을 꾸준히 하고 싶은 젊은 청년층이 많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반박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요가 수업만을 위한 스튜디오가 아니었기 때문에 요즘 눈으로 보이는 수련 자체가 아닌 요가의 알맹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터라 요가 이외에 결합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보고 복합적인 장르로 기획해보고 있다. 늘 요가라는 단일 장르가 아닌 융복합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는 요기니가 되기 위한 자의적 채찍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인생에 멈춤이란 단어는 없는 게 확실하다.
제로 웨이스트가 아니라면 오히려 이상한 시선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취미 생활을 할 때도 환경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미덕으로 여겨지던 행위가 이젠 소위 힙한 키워드가 되었다. 요가로 말할 것 같으면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선한 에너지를 주변에 퍼뜨리는 제로 웨이스트라고 볼 수 있다.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개념에 맞춰 결이 같은 요소를 섞어보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재미있는 과정이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자연 친화적인 향을 태운다면 의도하지 않아도 마음이 차분해지는데, 이게 바로 명상이다. 명상과 요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모든 게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오전 수업에서 항상 피우던 인센스 스틱 대신 스머지 스틱을 태웠다.
"서서히 번지는 스머지 스틱의 향과 기운을 느끼면서 수련을 해볼게요."
아지랑이처럼 은은하게 스튜디오를 채우는 자연의 향을 맡으며 평소보다 집중도 높게 수련이 진행되었고 나중엔 치열해졌다. 높아진 집중도에 비례한 깊은 아사나가 실현되었다. 신기하게도 수련이 끝나면 기진맥진할 것 같은데 오히려 에너지로 맑아진 얼굴들을 볼 수 있다.
"선생님 이거 향이 좋은데 뭐라고 하셨죠?"
시골에서는 지천에 널린게 풀이고, 일하러 나가 만지는게 풀이라 '에이 이거 풀떼기 아니여'하시며 흥미가 있겠나 싶지만 '요즘 유행하는 것'이라는 한 마디면 다들 관심을 보이신다. 덕분에 어르신 대상 요가 교실에서도 향기로운 스머지 스틱을 태운다. 아마 한동안 스머지 스틱에 깊게 빠져있을 것 같다. 이참에 제로 웨이스트 리추얼을 만들어 볼까? 내가 앉았던 자리에 허브 조각이 떨어져 있어도 놀라지 말기를 바란다. 헨젤과 그레텔도, 풀밭을 뒹굴다 온 것도, 몰래 쓰레기를 버린 것도 아니다. 그냥 '향기를 머금은 여자로군'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