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은퇴 후 세번째 해 (3)

노는게 진짜 지겨워지고 있다

by 퇴사자

지금 달랏의 숲이 보이는 숙소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아시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타이난이다. 레트로를 좋아하는 나는 대만의 그 낡은 느낌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여름을 좋아하는 나는 더운 날씨도 좋았다. 그런데 더운 남미 지역에 1년 반을 있다보니 대만이 별로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일년내내 봄날씨로 시원한 베트남 달랏에서 주로 지내며 한국도 오가고 주변 나라 여행도 하고 있다.

대만 헝춘.jpg 대만 헝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숙소인데 문 닫음


중국

귀로 여행에서 북경에 갔는데, 공항에서 파는 유심이 비싸게 느껴져 마침 내가 도착한 날 비가 오는데도 우비 입고 캐리어를 끌며 텔레콤 회사를 찾아가 현지 유심을 장착했다. 많은 도시를 이동하다보니 미리 공부하고 대비라는 게 느슨해져 e심이 아니라 중국 통신사의 데이터를 이용시 미국의 sns와 한국의 포털 같은 내가 평소에 익숙한 앱들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중국어를 거의 못하는데다 북경이 수도임에도 공항에서부터 영어로 의사소통이 아예 불가했다. 친절하긴 무지 친절해 공안 빼고 일반인은 도와주려고는 하는데 수도에서 이렇게 영어가 안 통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과거 상해에 갔을때 불편함이 없어서 북경은 더 수월하리라 기대했는데, 미국인이 타국어를 굳이 공부하지 않는 것처럼 중국인도 이제 남의 나라 언어 따위 안배우고 니들이 배워! 라고 하는 상황이 된것인가 당황스럽기도 했다.


위페이 알리페이로 다 결제하니 환전을 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데이터 사용이 안되면 페이 사용도 안된다. 그리고 왜케 조깅하는 사람이 많은지 맨하탄인줄. 도시에는 항상 구식 느낌의 시장이 있는데 북경은 이제 전통 시장 형태는 사라지고 현대식 쇼핑몰만 존재하고 수퍼도 다 백화점 수퍼 형태였다. 음식은 진짜 다 맛있고, 훠궈를 먹으러 갔는데 솥이 너무 커서 당황했다. 난 혼자 갔는데 다른 손님들은 최소 5명 이상이었고 대만에서 훠궈를 자주 먹어 비슷할 줄 알았는데 북경의 홍탕은 매운 정도가 상상초월하게 매웠다.


이번 방문으로 중국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졌고, 다음 달에 윈난성 지역(쿤밍, 리장 등)을 한달간 여행할 계획이다.


일본 도쿄

도쿄는 여러번 방문했는데 그동안 일본이 환율 때문에 오버투어리즘을 겪어서인지 내가 만난 모든 일본인들이 아주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다. 팬데믹 직후 2023년 경에 도쿄에 갔을 때 심지어 호텔 직원 마저 방 넘버를 영어로 말을 못하고 도쿄에서 만난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기초적 회화도 안되서 당황했었는데 불과 2년 만에 연세있는 지하철 역무원들도 영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변화가 놀랍고 북경과 너무 다른 상황도 놀라웠다. 영어 못하고 친절한 북경인 vs. 영어 잘하고 불친절한 도쿄인.


편의점에는 이제 일본인 직원을 찾기 힘들고 인도인들이 엄청나게 들어와서 영어 소통이 매우 편했다. 일본은 온천가는 재미로 자주 방문했고, 일본 3대 온천 비롯해 유명 온천 찾아다니느라 도쿄에서 몇시간 기차타고 힘들게 다녔는데 이번 여행 여정이 짧아 도쿄 시내의 당일 온천을 방문했는데 시골의 온천 못지 않게 물이 굉장히 좋아 가족 모두 만족했다. 그동안 왜 시골 구석에 있는 온천을 비싼 돈 주고 왜 찾아다녔나 싶을 정도다.


한국

한국에 갈때마다 한달 정도 지내다 다시 나온다. 덕질하는 연예인 팬미팅 일정에 맞춰 서울로 가서 지내며, 여성인력센터 수업을 듣기도 했다. 간만에 한국와서 지인들을 하루에 몇팀씩 돌려가며 만났는데 대부분이 회사 동료다 보니 과거 회사 앞에 매일 갔다. 다시 한번 내 인간관계의 편협함을 느꼈다.


강남에 집 두채 있는 한 지인이 초대해 집들이에 갔는데, 나에게 강남에 집 사지 않을 것을 야단치며 이제 강남집은 너무 올랐으니 당장 마용성 임장 가서 집사라고 조언을 했다. 맞는 말인것 같았지만 한달도 안되어 또 출국해야 하는데 결정하기도 힘들고 직장도 없어 대출도 거의 안나올 것 같아 포기한다는 변명을 했다. 집값 뉴스 보면 속이 쓰리지만 신포도로 대응하고 있다.


마침 처음 귀국한 시기에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서 한달 동안 비어 머물렀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면 서울 집세가 비싸서 서울에 오래 머물기는 힘들다. 그런데 뭘 제대로 배우거나 경력을 쌓으려면 서울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것이 딜레마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서울에 정착해 사회생활을 하라고 가족들이 돌아가며 압박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전 한국에 갔을 땐 대학교 때 방학하면 고향 가 지내던 것처럼 뒹굴거리며 많이 자고 푹 쉬었다.

달랏 꽃밭

베트남 달랏


내가 달랏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시사철 꽃이 지천에 있고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 휴양지라 그런지 주택들이 프랑스 전원풍이다. 호치민 출신 예전 숙소 주인은 달랏 사람들이 훨씬 교양있고 호치민 사람들보다 수준이 높다고 하는데 나는 언어가 안 통해서 잘 모르겠다.


현재 달랏에서 두번째 한달 살기를 하고 있다. 숙소는 한달에 약 600만동(원화 30만원 정도)하는 저렴한 숙소를 구했다. 첫번째 숙소는 아름답긴 한데 숲이다 보니 모기와 벌레가 많아 괴로워서 이번에는 도심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왔다. 여기도 나무는 많지만 숙소에는 많이 들어오지 않아 살만 하다.


이번엔 푸꾸옥 행 비행기표가 저렴하게 나와 푸꾸옥-호치민을 거쳐 야간침대버스를 타고 달랏으로 왔다. 베트남 음식이 동남아 음식 중엔 가장 맛있고 게다가 달랏이 날씨가 선선하다보니 호치민이나 나짱 같은 더운 도시보다 입맛도 살고, 재료 자체도 더 맛있다. 아시아 음식은 안 질릴 줄 알았는데 이것도 두달째 되니 질리기 시작한다.


운동은 라틴댄스가 없어 줌바로 검색해서 갔는데 참여해보니 거의 에어로빅이다. 에어로빅은 겉만 봐도 너무 숨차보여서 한국에선 감히 도전하지 못했는데 정말 격렬하고 무서운 운동이다.


여행할 땐 달랏에 몇년은 너끈히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호치민과 달리 영어 소통이 거의 안되다 보니 사람들과의 소통도 줄어 달랏도 오래 머물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중국이 무비자로 30일간 여행이 가능해 당분간 중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지낼 생각이다.

달랏 산마이 구름사냥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