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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May 04. 2024

몰입 그리고 짜릿함

첫 드로잉 북을 만들었다


그림에 재미를 느끼는 시기는 활동적으로 다양한 모임 활동을 벌인 시기와도 겹쳐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관심 있는 주제, 관심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찾아가서 듣고 보고 말하며 다녔다. 처음 들어보는 하위문화를 즐기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류에 비켜나도 되는구나, 괜찮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고, 식당, 술집, 카페가 아닌 복합 문화공간을 쫓아다니며 인적 네트워크와 내 세계를 넓게 확장시켰다. 확장한 세계에서 나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늘려갔다. 하다 보니 이런 것을 왜 만들지 생각하게 만드는 행위에도 만드는 과정을 즐기는 지경에 이를 수 있는 긍정성을 가질 수 있었고, 지금도 이 깨달음은 노후의 중요한 문화적 자본이 되어줄 거란 믿음이 있다. 그림도 마찬가지. '이런 그림 그려서 뭐 해?'라는 질문을 부드럽게 무시할 수 있는 관용이 생길 수 있다랄까. 그런 취향 공동체에서 만든 드로잉 모임도 간헐적으로 참여하고는 했다.


소셜미디어로는 페이스북이 대세인 시대였기에 그린 것을 페북 계정에 업로드하면서 자연스레 그리는 이들을 페친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게 되었다. 그들의 그림을 보며 자극을 받으며 그리는 생활을 하던 중 어느 페친이 30일 드로잉 프로젝트를 같이 할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어떤 망설임도 없이 하고 싶다 댓글을 달았다. 열댓 명 정도 모였고 처음 가진 오프라인 모임에서 룰을 정했다. 룰은 간단했다. 자정이 넘어가기 전까지 그리고 자신의 계정이 올리기는 것, 그렇게 30일 치 그림을 모으면 가내수공업 작업을 통해 함께 폴딩북으로 만들자는 것. 하루라도 못 올리면 그림은 계속 업로드 가능하나, 책은 같이 만들지 못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림 주제를 무엇으로 정할지 생각하다가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그리는 것으로 잡았다. 그때 사진을 보며 그리니 그곳으로 다시 여행을 떠난 기분에 젖었다. 모임으로 시작하니, 동기부여가 컸다. 3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림을 그렸다. 가방 안에 드로잉 도구를 항상 챙겼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굴하지 않고 매일 그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렸다. 술을 먹어 집에 늦게 갈 것 같으면 술자리에서 그림을 완성했다. 그렇게 30일 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 포스터로 만들어 폴딩북으로 팔기도 하고 선물로 주기도 했다.




모임에서 약속으로 생긴 의무감 그 의무감을 행할 때 즐거움, 그 즐거움이 주는 몰입감은 참 짜릿했고 뿌듯했다. 이 기분은 기억되어 다음에 무언가 시작할 때 망설임을 제거하는 소독제가 되어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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