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드로잉북을 만들다
그렇게 드로잉은 일상 취미로 자리 잡았다. 본 것을 그리며 다시 보는 것이 참 좋았다. 플립북을 만든 후 어느 날, 지인이 가르치는 드로잉 클래스에서 독립출판 모임을 만들어 불러주어 꼽사리 끼었다. 각자 주제를 잡아 드로잉을 하여 독립출판을 해보기로 했다. 마침 아빠의 환갑이 다가오기에 아빠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만날 수 없던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려 글을 보탰다. 엉겁결에 글쓰기에도 도전을 하였는데 그림보다 어려웠다. 아빠의 어린 시절 사진은 흑백과 칼라 다양한 사이즈로 있었고, 내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아빠의 얼굴이 있었다. 허세가 하늘 높이 올라간 사진을 보니 웃기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아빠의 얼굴에서 내가 익숙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콧잔등이 따가웠다. 아빠의 인생을 그리고, 쓰며 응원한 책이었다.
인디자인으로 편집을 해보고, 인쇄를 맡겨보고 책을 만드는 경험이 소중했다. 독립출판한 책을 책방에 입고도 시켜보고, 판매도 해본 것이, 이후 귀촌할 때 책방을 여는 데 결정적 경험이 되어 준 것 같다.
완성된 책을 아빠께 두근두근 마음을 담아 드렸지만 아빠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아마 많이 부끄러웠나 보다. 그리고 다음에 본가에 가니 표지에 웬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엄마가 통화하면서 메모를 거기에다 해놓은 것이었다. 이런 나의 가족들 같으니라고...
이렇게 모임에서 독립출판 만들 시기에는 생소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독립 예술의 한 분야가 되었다. 독립출판한 책을 입고하는 책방에 종종 가서 책 구경을 하고 적어도 한 권은 사고 나오면 괜히 뿌듯하다. 경험의 가치가 이토록 멋진 것이겠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