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자신을 깨달을 때까지는 다른 사람을 깨닫지 못한다 (칼 융)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 가셔요?”
“오오냐, 순인 집에 있나 보더라.”
- 한인현, <귀머거리 할아버지> 부분
한 어린 여자아이가 골목에서 만난 ‘귀머거리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 가셔요?”
귀머거리 할아버지는 여자아이가 인사를 하는 순간, 손녀인 순이가 떠오른다. 귀머거리 할아버지는 인사도 받고, 여자아이에게 중요한 정보를 준다.
“오오냐, 순인 집에 있나 보더라.”『손자병법』을 쓴 손자는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다.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이때의 싸움을 생택쥐페리의『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길들임’으로 생각하자. 인간은 서로 만나면 관계를 맺는다. 이게 길들임이다. 둘이 가장 알맞은 관계 맺음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 길들임이 옛날의 마을 공동체에서는 척 보는 순간 진행된다. 굳이 말이 필요 없다. 온몸이 말을 하니까.
이게 센스(Sense)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각. 현대인은 이 센스를 잃어버렸다. 자아(Ego)가 너무나 강고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자아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사람, 사물과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독백을 쏟아내게 된다. 지바 마사야의 『센스의 철학』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수소가 산소를 만나면 물이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수소와 산소가 사라진 건 아니다. 물 안에서 수소와 산소는 평화롭게 살고 있다.
심층 심리학자 칼 융은 말했다. “당신 자신을 깨달을 때까지는 다른 사람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자아팽창(Ego Inflation)환자’다. 인간은 서로 길들여야 진정한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