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이 한방병원이나 요양병원도 적용이 돼요? 대학병원만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무슨 소리야. 거긴 병원 아니야? 모든 병원 다돼. 거기다 입원 일당도 있으면 그것도 다 나와.”라고 말씀해 주셨다.
갑자기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주신 할머니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여러 번 들였다. 나는 바로 남편에게 전화해서 병원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남편도 잘되었다며 여기저기 알아보겠다고 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학원을 운영했었다. 그 당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하원하여 집에 오면 나도 학원에서 집으로 왔다. 깐깐한 내 성격에 어린 자녀들을 남에게만 맡길 수는 없었다. 아이들 식사부터 이유식까지 모두 내 손으로 만들어 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아이들 목욕 또한 내 몫이었다. 일하시는 분은 오직 청소와 남편과 내 식사 준비만 해주셨다.
매일 시간에 쫓기는 생활에 쇼핑할 여유가 없었다. 필요한 물건은 대부분 홈쇼핑에서 사들였을 때였다. 건강 보험 상품이 자주 보였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아프면 누가 날 돌보지?’라는 생각에 보험을 적지 않게 가입했다. 내 것만 가입하자니 괜히 미안하기도 했고, ‘남편이나 아이들이 아프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가족들 보험 또한 넉넉히 가입했다.
보험 가입하면서 남편과 몇 번의 말다툼이 있었다. 남편은 병원 안 갈 건데 왜 그렇게 보험 가입을 많이 하냐면서 불평했었다. 그 당시 내 한 달 수입이 웬만한 직장인 연봉 이상을 벌고 있었다. 나는 “내가 보험금 내고 당신이나 아이들 아프면 내가 받아서 쓸 거야.”라며 들어놓은 보험이 이렇게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보험은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그때 가입한 보험 덕에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다고 본다. 이 많은 치료비와 생활비를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우리 형편에 절대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날, 남편은 한방병원이 좋을 거 같다고 했다. 요양병원은 그때만 해도 암 환자를 위한 병원이 아니었다. 노인분들 호스피스를 위한 병원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있기는 별로라는 것이다. 나는 퇴원하면 한방병원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후에 레지가 왔기에, 나는 퇴원하면 한방병원으로 갈 거라는 말에, 레지의 반응이 너무 황당했다.
“환자분. 제가 매일 말씀드렸잖아요. 미친년의 순서를. 거기에 썩은 물 먹으로 한방병원 간다고 하시니 하나 추가되겠네요.”라면서 미친년의 순서를 다시 말하기를,
“1번 수술 안 하는 사람.
2번 항암 안 하는 사람.
3번 방사선 안 하는 사람.
4번 썩은 물 먹으러 한방병원 가는 사람.”이라고 웃으면서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어이없이 웃으면서 “나는 정말 미친년이군요?”라며 넘어갔다. 속으로는 ‘어린 것이 의사라는 타이틀로 월권이 심하군. 내가 참는다. 환자인 내가. 약자인 내가.’라고 생각하면서 그 상황을 넘겼다.
2023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