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달려 나간다. 글자 한 자를 쓰고 다음 글자를 쓰기 전에 찰나의 쉼이 필요한데, 글자 하나를 쓰자마자 다음 글자를 향해 달려간다. 이러면 각각의 글자들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고 모양도 좋지 않은데 알면서도 매번 그런다. 글씨를 빠르게 쓰는 직업을 가졌던 탓인가? 나이를 먹어도 꿋꿋하게 늙지 않는 바쁜 성격 탓인가? 아니면 끈질기게 붙어있는 조급증 탓?
“어어!” 공이 왼쪽 숲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에게!” 공이 날아가지 않고 굴러가더니 코앞에 선다. 골프는 번뇌란다. 골프 샷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 또는 핑계가 108가지여서. 요즘 빠져있는 파크골프도 마찬가지다. ‘자식과 골프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더니 진짜 그런 것 같다. 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공을 치기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
아마추어 골퍼의 주제넘은 생각으로는 골프든 파크골프든 문제는 스윙이 빨라서인 것 같다. 백스윙하고 탑에서 정지의 순간을 가진 후 부드럽게 다운스윙해야 하는데, 공만 보면 마음이 바빠진다. 바빠진 마음만큼 빨라지고, 빠른 만큼 허겁지겁 공을 친다. 천천히, 제발 천천히 하기를 되새기지만 어림없다. 어느 순간 또 빨라져 있다. 쯔.
근력운동을 한 지가 어언 20년이다. 가능한 매일 하려고 하는데 어쩌다 2~3일 하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하다. 몸에 뱄다는 것인데, 그런데도 가끔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일 때가 있다. 올바른 운동 방법은 적정한 무게의 바벨이나 덤벨을 천천히 들었다 내렸다 해야 하고, 반복하는 사이에는 정지의 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조금 힘들거나 게으름이 날 때는 얼렁뚱땅 빠른 속도로 횟수만 채운다. 이 빨리 빨리는 어쨌거나 운동을 했다는 자기기만일 뿐인데…
빠른 게 이것만이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아내가 식사 준비 중이다. 식탁에 앉자마자 먹기 시작한다. 아직 마주 앉지도 않았는데… 그러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지만, 또 그런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느긋한 시간이다. 얘는 밖에 나오면 그렇게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전문가들이 그 게 본능이란다. 그래서 기다린다. 잠시만. 좀 길어진다 싶으면 갈 길을 재촉한다. 산책길인데 뭐가 바쁘다고.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차근차근 읽어가다가 책의 분위기가 파악되면 달리기 시작한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빨리하지 않으면 안 되고, 결정할 일의 판단도 빠르게 해치우는 이 성급함.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게 위안이 될까? 퇴직 후 전원주택에서 생활하는 지인이 있다. 10여 년 전, 지금의 집터를 본 순간 너무 좋더란다. 그래서 계약하고, 잔금 치르고, 이전 등기하고, 집 짓기를 속전속결로 해치웠단다. 드디어 뿌듯한 마음으로 입주하고 동네 분들에게 떡을 돌렸단다. 한 분이 땅을 얼마에 샀냐고 묻길래 대답했더니 깜짝 놀라더란다. 시세의 두 배가량 금액이라는 거다. 빠른 결정이 낳은 참사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선진국이 된 이유가 뭐든 빨리해야 하는 바쁜 성격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화면이 바뀌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자료를 내려받는 잠깐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빨리한다는 건 미루지 않는다는 점에선 좋은 습관이고, 요즘같이 스피디한 시대엔 덕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빨리 쓴 글씨체는 예쁘지 않고, 빠른 스윙은 뒤땅을 치거나, 탑 볼, 심하면 OB가, 빨리 해치운 근력운동은 했으나 효과가 없듯이, 설익은 생각의 섣부른 판단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
무슨 일이든 천천히, 제발 천천히 하자. 그렇다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