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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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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May 03. 2024

볼빨간 사춘기 VS 아이유

집과 교육원을 오가며 고속도로를 많이 타다 보니 H는 요즘 음악을 자주 듣는다. 원래 시동을 켜면 라디오가 자동적으로 틀어지는데, 터널이며 행정구역을 지날 때마다 지지직 소리가 자주 들려 최근에는 지니 뮤직을 더 자주 튼다. 도로 위는 음악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목청껏 따라 부르다 보면 차 안은 금세 노래방이 된다. 이봐! 조심하라구. 시속 120키로가 넘었어!


처음 들었던 볼빨간 사춘기노래는 '여행'이었다. 선곡했다기보단 당시 많이 흘러나오던 노래였으니까. 경쾌하면서도 개성적인 가사, 독특한 음색들이 귀에 꽂혔. 어디 놀러 갈 때 틀면 절로 기분이 업(up)다. 그때만 해도 볼빨간이 어떤 가수인지. 멤버가 몇 인지, 나이가 어떤지도 몰랐다. 지금도 나이는 모르지만.... (이 참에 찾아보니 95년생이구나.) H는 보컬톤이 신기했다.  요즘 가사들은 한국어인데도 평소 듣던 한국어 같지 않다. 마치 영어 발음처럼 세련되게 느껴진다. 영어 사대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종류 불문하고 락(Rock)어떤 음악이든 섞이면 다 잡아먹는 것처럼, 요즘에는 한국어가 영어를 삼켜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H는 요즘 아이돌 노래들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어른들이 해내지 못한 문화 사대주의를 아이들이 역전시켰다고 생각한다. 기특하다.  그래서 뉴진스나 아이브는 욕하면 안 돼. 그런데 볼빨간은 거기에 유니크함 하나를 더 쌓아 올린 것 다. '딱 붙어서' 같은 일상어를 가사로 선택하고, 톡톡 튀는 성조의 높낮이를 얹고, 리듬을 쪼개고. 그야말로 유니크하다.


지쳤어 나 미쳤어 나      ♪♬ ♬ ~ ♬

떠날 거야 다 비켜         ♬

I fly away                     ~ ♬

  

이 훅(hook) 따라 부르다 포기했다.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었다. 마치 다른 세계의 발성 같았다. 영화 은교에서 '은교'의 젊고 눈부신 하얀 피부를 훔쳐보던 노교수의 검버섯 같은 절망감이었다. 흠모였고 동경이었. 가수들 중에 더러 이렇게 기본 베이스 음정이 어나더(another) 레벨인 가수들이 있다. 볼빨간도 그런 하나이다. 이런 류흉내내기가 불가하다. 박자나 리듬감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 음정의 베이스선이 다르니까 한 두 키 올려 불러야 맛이 는데 그렇게 부르면 정작 해당 노래의 고음 부분에선 한 옥타브나 두 옥타브까지 올려줘야 한다. 그럼 목이 맛이 간다. 그런데  낮춰 부르면 맛이 안 산다. H에겐 그런 류의 가수들이 몇 있다. 옛날 가수 중에선 나미의 '슬픈 인연'이나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 같은 대표적이다. H도 고음엔 웬만큼 자신 있고, 또 좋아라 하지만 이들의 음정은 애초 베이스선부터가 다르다. 첫 톤의 음정이 아예 다른 차원에 있다 보니 목소리톤의 궁합 자체가 안 맞다고 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H와 궁합이 맞는 톤의 가수를 예를 들어보면 태양의 '눈코입' 이나 윤종신의 '좋니' 김범수의 '보고싶다' 정도를 들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가. 이들 모두 고음대의 노래들이지만 앞선 가수들과는 기본 음역대가 다르다. H는 그래서 이런 음역대의 가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 출연을 대번에 알아챈다. 볼빨간은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여행' 노래가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노래로 볼빨간의 세계에 입문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사춘기에게'를 듣고 H는 볼빨간을 다시 봤다.


엄마는~ 아빠는~ 다 나만 바라보는데        ♪~

       . . .

시간이 약이라는 게 내겐 정말 맞더라고   ♬ ~♪


얼마나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얼마나 ......

. . . 까.


마지막 후렴의 '바랬을까'를 처음 듣는 순간 H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줄 알았다.  들리지도 않는 즈막한 속삭임이었지만 마지막 내레이션을 듣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건 리듬의 힘. 아니면 가사(문장)의 울림이었을까. 새파란 어린 가수의 노랫말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게 좀 놀라웠다. 사실은 굉장히 서사적인 가사이지만, 그리고  더 많사연을 담고 있는 노래이지만 과감히 생략시키 감정만 극대화한 노래라고 생각했다. 중간에 음정이 일시 정지, 마침내 절규 어린 '아~~아아' 가 토해져 나왔 , 여운이 저 아래의 '바랬을까'를 향해 빌드-다운내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H는 노래가 끝난 다음 다. 그런 전개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사춘기에게' 란 곡이야말로 볼빨간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볼빨간(안지영)도 이 노래가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라고 했다. 그녀의 아이덴티티가 이 노래에 숨어 있다고 H는 멋대로 생각했다.


H가 평소 천재적인 뮤지션으로 손꼽는 가수가 있다. 자우림의 김윤아다. 그녀가 오래전 '나는 가수다'에서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란 편곡을 가지고 나왔을 때 H는 전율을 금치 못했다. 이런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했다니. H는 자신의 형편없는 안목을 탓했다. 이런 안목을 가지고서 '좋은 글을 쓰긴 글렀다'라고 혀를 찼다. 빛나는 재능과 천재성들은 아끼고 보살펴줘야 한다. 그런 것들은 세상의 보물이다. 그런 걸 알아채지 못하면 모두에게 불행이다. 재능이 반짝하고 빛을 발하는 순간, 그 빛은 여러 빈약한 삶들의 영감에도 불을 붙인다. 볼빨간이 귀를 사로잡았던 것은 그녀의 음악과 함께 그 나이에 이룩한 유니크함 때문이다. 그녀의 통통 튀는 가사를 들으면, H통통 튀는 문장들과 문체를 길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 H는 아무 편견 없이 그녀의 노래로 먼저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 건 비주얼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좀처럼 드문 일이다. 영혼과 감성만으로 순수하게 대중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그녀는 그런 걸 해냈다. 그녀가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래의 아이유에 비해 그녀의 음악성이 뒤떨어질까.


볼빨간의 '빨간립스틱'  정말 요즘 말하는 MZ들의 어투로 부르는 노래 같다.


빨간 립스틱을 발라요~ 랄라라  ♬ ~♪

이건 내 문제야 정답은 내게 있어 ~~ 빠라라빠라빠라밤(트럼펫)  ♬ ~♪


눈동자에 떨어지는 건 크리스탈인가요. ♬ ~♪     


중간중간 터지는  yeah! 가 그녀의 아이덴티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말 그대로 시크하게, 도도하게 세상을 칠해줬으면 좋겠. 그런 건 트레이닝하면 금방 되니까. 그녀도 이젠 자본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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