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웨이트 훈련을 하러 헬스장에 내려왔다. 며칠 장맛비가 내려 습한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조명과 에어컨 바람 덕분인지 상쾌한 기운이 점차 우위를 점해가고 있었다. 준비운동 겸 트레이드밀 위를 걷고 있자니 창 안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수분을 뚝뚝 떨구고 있는 사철나무들의 짙은 초록이더해, 며칠간 생각했던 의문에 방점처럼 해답이 꽂히는 듯했다.
글쓰기보단 웨이트
최근 글쓰기 재미에 푹 빠지면서 시간도 꽤 많이 투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타이핑 시간이 늘어났다기보다 글감을 생각하는 등의 상념에 젖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연히 넓지 않은 생활 루틴들에 변화가 생겼고, 웨이트 훈련도 구멍이 나는 날이 많았다. 마침 몸에도 작은 이상 징후가 발견되었는데 특정 자세에서 발뒤꿈치가 찌릿하는 증상이 생겼다. 스트레칭으로 보자면 태양 예배 자세 중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개자세' - 명칭을 찾아보다 본인도 깜짝 놀랐음, 오해 없으시길^^ - 에서 종아리 근육들이 타이트하게 당겨지는데, 이때 발뒤꿈치가 칼로 베이는 듯 찌릿해 오는 것이다. 시간을 내어 동네 정형외과에 들렀더니 선생님은 허리 자세에서 오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크게 이상은 없었지만 평소에 자세를 바르게 가지라는 조언을 주셨다. 조금 갸우뚱했지만 이런 이유로, 그리고 장마의 습한 기운을 핑계로 요 며칠 웨이트 휴식기를 가지는 중이었다.
웨이트 훈련을 해온지는 제법 되었다. 그렇다고 일주일에 6일 이상의 하드한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2~3일 정도의 루틴을 소화하는 식이다. 만약 웨이트 훈련의 본질이 매일매일 극한까지 몰아붙여야 하는 엘리트식 코스를 지향했다면 나는 이 쇠질을 지금까지 이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 웨이트 훈련자들의 입문서로 많이 활용되었던 맛스타 드림님의 「남자는 힘이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웨이트 훈련에 있어 가장 많은 오해 중의 하나가 매일매일 하드한 트레이닝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정보다. 오히려 입문자에게는 이러한 하드한 트레이닝이 몸을 망칠 수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오버트레이닝(overtraining)이라 부른다. 강도 높은 훈련을 지속적으로 무리하게 실시하는 것은 웨이트의 본질이 아니다. 부상 없이 오랫동안 이 즐거운 운동을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홈페이지가 만료되어 정확한 구절을 옮기진 못했지만 아마 저런 취지의 글이었다. 그러면서 맛스타 드림님은 입문자에게는 주 3일 운동이 더 적당하다고 썼는데, 나는 이것을 일종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지금껏 웨이트의 모토로 유지해오고 있다.
당시 나는 나의 게으름과 나태에 대해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헬스장을 끊어놓고 며칠 반짝 다니다 텀이 길어지더니 결국 한 달의 대부분을 그냥 날리는 식이었다. 더욱이 당시에는 새벽 운동을 지향했던 터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정말 곤욕이었다. 그렇게 흐지부지 돈만 날린 게 일 년이 넘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올바른 운동은 빡세게 밀어붙인 후 충분한 휴식을 가져야 한다'는 저 맛스타님의 조언은 그야말로 나의 게으름에 하해와 같은 정당성을 부여해 준 것이다. 그때부터 내 웨이트 훈련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일주일에 3일은 충분히 수행 가능한 루틴이었고, 무엇보다 저 정도의 프로그램은 다음날 훈련을 위해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만 하는 따위의 희생이 불필요했다. 나는 전문 운동선수가 아니고, 더욱이 그런 선수가 될 생각도 없었으므로 업무 외의 가외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볼모 잡히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추구하는 삶이 아니었다. 웨이트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 나를 매우 고무시켰다. 나를 괴롭혔던 게으름과 나태가 무죄 선고를 받고 당당히 내 삶의 탑승 티켓을 배정받았다.
아마 이때부터 웨이트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하루 운동하고 이틀 쉬거나, 혹은 이틀 운동하고 이틀 쉬거나 징검다리 뛰듯 건너는 일주일은 구름처럼 상쾌했다. 운동 후 근육통은 다음 날이 아닌 그다음 날이 최고 정점에 이르는데 이때를 충분히 쉬어주니, 몸도 성장하고 새로운 활력도 더해지는 듯했다. 웨이트 하는 사람들은 이 근육통을 기분 좋은 근육통이라 부르는데 거의 일 년 365일을 이것을 달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겐 이것이 삶 그 자체이다.
좋은 포퍼먼스를 내기 위해서는 최상의 컨디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훈련뿐만 아니라 휴식에서도 함께 온다. 휴식을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해선 안된다. 그것은 훈련의 일부이며, 영양과 더불어 웨이트의 본질을 이루는 3요소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세팅'이다. 그리고 이 세팅 위에 - 나의 경우에는 - 글쓰기가 있는 것이다.
글쓰기를 위해서 조명을 밝히고, 노트북을 놓고, 음료 한잔을 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이런 것들은 데코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유지시키는 육체적·정서적 집중(focus)이다. 그리고 그러한 집중은 가족과 둘러앉아 봉골레 파스타를 즐기고, 목표한 워크아웃을 깔끔히 수행하고, 부모님께 드리는 규칙적인 안부 전화 같은 데서 온다. 대출 압박을 앞두고 글쓰기에 전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선 이것부터 해결하자.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