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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배 Oct 09. 2022

도라지꽃

인간의 일생에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사랑과 죽음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근본적인 것을 꼽으라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과 관련해서 영화 이야기 하나 해볼까 합니다. 아주 흔한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대중적인 영화도 아닙니다. 제 주관적 생각과 평가가 들어간 것이고 좀 길더라도 너무 나무라지 말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설날 연휴 잠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TV를 틀었습니다. 마침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었는데 보면서 제목을 잘 붙였다고 감탄했습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누가 가져다 붙였는지 참 근사한 제목이라고 생각했고 저를 TV 앞으로 끌어 당기에 충분했습니다. 다음으로 제 눈을 잡아끈 것은 노부부의 한복이었습니다. 보라색 바지와 치마를 맞추어 입은 한복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세 번째는 할머니의 내레이션이었습니다. 담담하면서도 막힘없는 내레이션이 제 귀를 잡아끌었습니다. 이렇게 내 모든 것을 잡아끄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설날 특집으로 만들어 방영하다니 '방송국이 애썼네'라고 생각하며 보는데 아내가 들어와 보더니 영화라고 합니다.
 
아, 나의 무식함이여! 영화인 줄도 모르고 여태까지 보고 있었다니……. 굳이 변명하자면 이 영화가 방영된 때가 아마도 제가 뇌종양 수술 후 병원에서 재활 치료에 전념하고 있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고 있을 때였고, 내 몸 하나 이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니 모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제작진과 출연한 노부부여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2014년 진모영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로 무려 480만 명의 관객을 모은 대단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76년 일생의 연인 우리 참 잘 살았죠?'라는 부제가 달린 포스터도 좋았습니다. 줄거리는 대부분 아실 터이니 인터넷에 소개된 내용만 간략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조그만 강이 흐르는 강원도 횡성의 아담한 마을. 89세 소녀 감성 강계열 할머니, 98세 로맨티스트 조병만 할아버지. 이들은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다.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여름엔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가을엔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엔 눈싸움을 하며 지내는 하루하루가 신혼 같은 백발의 노부부.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꼬마를 묻고 함께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할아버지의 기력은 점점 쇠약해 가는데……. 비가 내리는 마당, 점점 더 잦아지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듣던 할머니는 친구를 잃고 홀로 남은 강아지를 바라보며 머지않아 다가올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한다. 할머니는 집 앞의 강가에 앉아 말없이 강물을 쳐다보는 일이 잦아진다. 할아버지와 수시로 건너오고 건너가는 저 강이, 남편이 자신을 홀로 두고 먼저 건너게 되는 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네이버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줄거리 편집  

   


이 영화가 주목을 받는 점은 시나리오가 없어도, 그리고 목소리 좋은 성우나 연예인의 내레이션이 없어도, 그러한 것들이 있는 영화보다도 더 상징성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강(혹은 물)이 상징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든지, 강아지 '꼬마'의 죽음이 '할아버지의 죽음'의 복선(伏線)이 된다든지, 죽은 자식들과 할아버지의 옷, 그리고 눈사람 등이 이 작품에서 연출되지 않은 듯이 자연스럽게 상징성을 갖고 의미가 오버랩을 이루게 되는 것은 모두 감독의 능력입니다. 이 영화는 비록 허구가 아님에도 마치 소설과 같이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하나하나의 장면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하며 볼 수 있게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감독의 연출 능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와 관련된 두 가지의 단어를 꼽는다면 단연 '사랑'과 '죽음'일 것입니다. 서두에서 저는 인간의 삶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답은 이 영화가 우리에게 '사랑'과 '죽음'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본질적인 질문을 받게 됩니다. 뜨거운 열애를 통해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속았다고 헤어지는 요즘 세태와 비교해서, 사랑도 없이 굴도 모른 채 결혼했지만 76년간이나 연애 감정으로 살아가는 노부부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머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가슴에서 활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온 맘으로 낭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이라야 몇십 년 동안 이들처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부부의 사랑은 우리에게 현실주의자보다는 로맨티스트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머리 주위를 떠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테마는 죽음입니다. 제목에서 상징하는 바와 같이 강을 건너는 것은 죽음입니다. 강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과의 이별의 경계입니다.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의 죽음 후 할아버지의 기침은 더욱 심해지고 할머니의 시름도 깊어만 갑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데리고 장에 갑니다. 거기서 내복 6벌을 삽니다. 12남매를 낳았는데 여섯 아이를 질병과 전쟁과 같은 이유로 잃었다고 합니다. 죽은 아이들이 추워서 입고 싶어 했던 내복을 삽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물건들을 정리합니다. 할아버지가 저승에 가서 추울까 봐 미리 옷가지들을 아궁이에서 태워 할아버지가 갈 곳으로 보냅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넙니다. 혼자 남겨진 할머니는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옷을 입고 기다리라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옷들을 무덤 옆에서 태웁니다. 아이들의 내복과 함께……. 그리고는 돌아오다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 장면에서 "삶이 즐겁다면 죽음도 그래야 한다. 그것은 같은 주인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미켈란젤로의 통찰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예감하고 준비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만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할머니도 죽음 앞에서 결국 나약한 한 인간이 되고야 맙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승화시켜 우리에게 죽음이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별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세상이 있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줍니다.



영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사랑’과 ‘죽음’을 표상하는 꽃 이야기입니다. 바로 도라지꽃입니다. 이 영화는 도라지꽃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라지꽃은 강렬한 보랏빛 꽃입니다. 죽은 자가 잠들어 있는 무덤가에 핀 꽃입니다. 할아버지 무덤가에도 보라색 도라지꽃이 피어 있을 것입니다.   


  

도라지꽃의 이미지와 잘 맞는 시 한 수 소개할까 합니다. 강은교의 <사랑법>이란 시인데 사랑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천착한 시입니다. 제목이 사랑법인데 그 안에는 죽음과 이별이 함께 하는 우리 삶을 표현하면서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가장 큰 하늘, 곧 운명이나 그것을 관장하는 신(神)이 우리의 등 뒤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강은교 시인은 도라지꽃을 보며 이 시를 쓰지 않았을까 하고 제 나름으로 추측해 봅니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에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강은교, <사랑법> 전문     

     


이 보랏빛 꽃이 도라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전설을 소개하겠습니다. 많이 알려진 전설이라서  독자 여러분이 많이 알다시피 역시 도라지는 사람 이름입니다. 요약하자면 도라지라는 소녀가 중국으로 공부하러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할머니가 되도록 기다리다 죽어 도라지꽃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신라 시대에 부모님을 여의고 오빠와 단둘이 사는 도라지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도라지는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허드렛일 하면서 오빠가 공부하는 것을 뒷바라지했습니다. 도라지네는 몰락한 귀족 집안이었기 때문에 오빠가 신라 조정에서 하찮은 벼슬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도라지가 17살이 되던 해 결국 오빠는 새로운 땅 중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습니다. 도라지의 오빠가 중국으로 공부를 하러 간 것은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길에 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오빠가 중국에서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도라지는 오빠를 곧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오빠는 중국 조정에서 벼슬을 얻어 정착하여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도라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라지는 높은 산에 올라가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오빠가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 등 뒤에서 “도라지야, 오빠가 왔어!”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았으나 오빠의 모습은 잠깐 나타나더니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허망한 그림자를 본 도라지는 마침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도라지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는데, 이듬해 무덤에서 작은 보라색 별 모양으로 생긴 꽃이 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꽃을 오빠를 기다리던 도라지의 영혼이 피어난 꽃이라고 해서 ‘도라지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설 때문에 도라지꽃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 되었습니다.  

   

도라지꽃은 ‘사랑’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일생에서 거쳐야만 하는 두 가지의 양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피해 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실 죽음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문제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고대 스토아학파의 한 철학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죽음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이 끔찍한 것이다.
   - 에픽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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