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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Dec 04. 2023

눈이 오면 좋겠다, 아프니까

병원에 다녀오다 쓰다

물리치료 받으러 병원에 가려다 말았다. 그 시간에 그냥 운동을 하자. 오고가는 시간과 주차자리를 찾아 헤매는 시간, 진료와 치료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아깝다. 멍때리는 건 잘하지만 멀뚱멀뚱은 못해먹겠다. 다른 사람들처럼 폰이라도 들여다보는 척하지만 아무것도 안 보고 있다.


시골 병원의 손님은 대부분 할망 하르방이다. 폰 들여다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대신 치료 중에도 곧잘 통화를 한다. 귀가 어두우니 자연히 목소리가 크다. 옆 침대 삼춘네 집안 얘기와 건너편 자리 삼춘네 가게 사정을 원치 않는데 알게 된다. 저 집은 올해 농사를 망쳤고 저 집 손주는 서울 대학에 붙었단다. 귀는 눈처럼 감을 수가 없으니 필요없는 딱지가 더께더께 앉는 듯. 안팎을 뒤집어 벅벅 문지르고 싶다.


날이 추워지고 길이 얼면 할망 하르방 환자가 는다. 아픈 데가 더 아프고 안 아프던 데가 덜컥 아프고 넘어지고 부러진다. 혼자라서 서럽고 혼자가 아니어도 아픈 건 혼자라서 서럽다. 골골골 아플 바엔 콱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몸이 아프면 마음은 더 아프다. 혼자 아파서 더 아프다.


할망 하르방 얘기가 아니다. 내 얘기고 어쩌면 당신 얘기다. 늙은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늙은 사람의 몸과 덜 늙은 몸이 있을 뿐이다. 아픈 부위가 늘고 정도가 심해지고 낫는 시간이 길어지고 낫지 않고 도로 아플 때마다 늙음을 자각하게 된다.


겨울엔 부고가 는다. 누가 아프고 누가 다쳤다는 소식도 는다. 작년 이맘때 옆집 할머니와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랜만에 연락한 한 친구는 수술을 앞두고 있고 다른 친구는 입원한 오빠를 간병중이라 했다. 나도 아프고 너도 아프니 세상이 다 아픈 듯한 착각이 든다. 눈이 오면 좋겠다. 얼어붙은 세상을 포근하게 보이게 하는 눈의 마법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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