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추크,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읽고
어떤 책은 다 읽고 나서 다시 어떤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모든 문장이 살아있는 것처럼, 새로운 의미가 생동한다. 책 전체의 모든 문장을 밟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여정이 왜 필요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전에 김애란 소설가가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에 있다. 좋은 소설은, 좋은 이야기를 가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왜 문학의 형식으로 쓰여야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라고.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을 읽으며 그 말이 떠올랐다. 이야기가 흘러가고 지연되는 과정이, 인용된 시 구절이, 긴 독백과 신체감각의 묘사가, 길게 늘어지는 지형지물에 대한 설명까지. 모두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형식을 통해 담고 있다. 어떤 문장은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눈앞에 스친 환영이나 몸의 감각으로 남는다.
오랫동안 논리로 쓰는 글, 이해를 거친 글, 설득이 중요한 글을 쓰려고 애썼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섣부른 언어가 고유한 경험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도 한다. 형식이 경험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것을, 글을 쓰면 쓸수록 배운다. 좋은 작품은 그렇게 형식에 대한 합당성이 있는 글이다. 언어라는 매체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자각하는 글. 그 가능성을 모색하면서도 그 한계를 받아들이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단정 짓지 않는 글이다. 토카르추크의 소설은 이성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의 모순을 얘기한다. 글 쓰는 일이 어떤 사물의 본질을 삭제해 버릴 수도 있다는, 작가의 날카로운 자의식이 느껴진다.
책 제목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18세기의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책을 출간하면서 편집자가 다른 제목을 제안했다는 일화가 책 말미 옮긴이의 글에 나온다. 재밌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나부터도 책 제목이 너무 강렬해서, 누군가와 함께 읽지 않았다면 엄두를 못 냈을지도. 하지만 작가의 고집처럼, 이 책은 이 시구 그 자체이다. “거대하고 넓은 무덤 속”에서 날마다 “상중”인 사람들의 이야기. 애도하고 비통해하고 행동하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비인간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못된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거대한 슬픔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책의 모든 장이 블레이크의 시 구절로 시작하고, 시를 번역하는 것이 등장인물들이 하는 중요한 일로 나오기도 한다. 자연을 사랑하고, 모든 연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을 가졌던, 살아생전 읽히지 않았던 무명시인 블레이크의 시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위베르 성인>이었다. 사냥꾼에서 성인이 된 인물이, 사냥꾼들의 수호성인으로 변모해 협회와 교회의 긴밀한 이해관계에 이용되는 모습. 단지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종교가 손쉽게 그 뒷받침을 하는 어떤 현실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선 자리가 세계의 어느 위치에 와있는지 좀처럼 돌아보려 하지 않는 무지와 순진함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인 위계 속에서, 너는 우리 모두가 몸 기대어 살아가는 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있느냐고, 소설은 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두셰이코 부인의 모습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사람상을 보여준다. 분노하고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이름 붙이고 돌보고 반응하고 손수 먹을 것을 만들고 연구하는. 어리석은 연설의 입을 막고 아무도 고발하지 않는 잘못을 고발하며 잘못된 세계를 때로는 파괴하는. 소설의 결말이 어느 독자들에겐 반향을 일으켰다고도 하는데 나는 극 중 인물에 대해 도덕적 감정이 들진 않았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는 점이다. 유용하거나 쓸모 있다고 누가 주목하지 않는, 매일 지나쳐 가는 풍경 속에.
“동물들은 정의감이 매우 강하거든요. 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아니면 부당하게 꾸짖거나 약속을 어길 때마다 나를 바라보던 그 애들의 눈빛이 기억나요. 내가 도대체 왜 신성한 법칙을 어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지독히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했죠”. (281.)
“약간의 불편함을 야기하는 사소한 문제들은 참을 수 있지만, 이처럼 무분별하고 도처에 만연한 잔인함은 절대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문제다. 타자의 행복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등식이다.” (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