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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상해 이야기 33-대한민국이 시작된 곳

상해임시정부

by 안나

북경에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가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는 자금성과 만리장성이고 상해에 여행을 오는 사람들은 와이탄과 예원을 가요. 상해에 오는 한국인에게 꼭 가봐야 할 곳이 2군데 더 있죠.

상해 임시정부청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 홍코우 공원(지금은 뤼순 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화려한 와이탄의 야경과 푸동 신취의 번쩍번쩍한 스카이 라인보다 더 의미 있고 소중한 곳일 수 있어요. 안구 건조하신 분들도 여기에 가면 촉촉해질 수 있어요.


제 첫 번째 해외 여행지는 북경과 상해였어요. 북경에서는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갔었고 상해에 와서는 남들 다 가는 예원과 와이탄도 갔지만 제일 먼저 간 곳은 상해 임시정부청사였어요. 그때만 해도 옆 집을 임대해서 자료관을 만들기 전이었고 입장료를 받는 사람도 없었던 가정집 달랑 한 칸이었어요.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 후 내 조국 산천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아서 상해까지 와서 그나마 우리나라에게 호의적이었던 프랑스 조계지 안에서도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던 임시정부청사의 추정되는 곳에 현재 상해 임시정부청사가 남아있어요. 정부청사라고하면 광화문 청사나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생각하던 제게 옆 집에서는 빨래하고 있고 다른 옆 집에서는 도마에서 생선 손질하는 가정집 사이에 외롭게 남아있던 임정청사는 초라해 보였고 슬펐어요.


일제의 단속과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 가정집으로 위장할 수밖에 없었고 돈이 없었던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외로이 혼자 있는 임정청사를 보면서 눈물이 났었어요.

2004년도에는 상해시 조계지 재개발 이슈로 임정청사가 있던 동네가 헐릴 뻔했어요. 당시 정부와 민간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간신히 보존할 수 있었고 옆집을 자료관으로 만들면서 지금은 두 집을 합쳐 덜 외로운 모습으로 서있습니다.


상해에서 시작한 임정은 항저우, 창사, 광저우 등 남쪽 여러 지방을 떠돌다가 중경에서 광복을 맞이하면서 긴 유랑 생활을 끝내게 됩니다. 상해 임정시절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면서 임시 헌법을 만들면서 민주제라는 국가 정치 체계의 초안을 정했어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제의 우리나라는 중국 상해에서 시작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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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九江路600번지에 롱안백화점永安百货店이라고 있어요. 상해에 모든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난징루 보행가 거리에 있어요. 개화기 스타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 옥상에 1921년 1월 1일 임정 정부 인사들이 신년하례식을 치렀던 장소가 남아있어요. 평소에는 개방 안 하는데 행사가 열려서 가볼 기회가 생겼어요.

히어로 역사학교 100기 수료 기념식을 이곳에서 했고 저는 게스트로 초대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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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부르는 국민의례를 했어요. 애국가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처음으로 불러보는 것 같았어요. 해외에서 살면 애국가나 아리랑을 들으면 눈물이 자동으로 흐르게끔 DNA가 재조합된답니다.

독립운동가분들의 후손분들도 오셨어요. 사진으로만 보고 기록에서만 보던 분들의 후손 분들이 상해에서 살고 계세요. 지금은 중국 국적으로 중국어를 사용하시면서 중국에서 사시지만 이 분들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100여 년 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헌신하셨던 것이 역사이니까요.

상해 교민분들의 공연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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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관련된 곳이 있어요.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인 홍코우 공원을 비롯해서 독립운동 작전을 모의한 푸씽공원 등 독립 운동가분들의 살았던 집들도 있어요. 지금은 번지수 말고는 어떠한 느낌도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요.


역사는 공동의 기억이라고 하죠.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독립 운동의 흔적은 희미해지고 바래갈 거예요. 100여년 전 있었던 일을 알 수 없고 실감할 수 없어도 우리는 대한민국,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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