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다음에 6월이었다.
늦겨울 다음 초여름이었다. 봄은 없었다.
내가 누워있는 차가운 대리석 타일 바닥과 하얀 벽이 출렁거리며 팔랑거렸다. 눈을 뜰 수가 없다. 떠야 한다는 강한 의지는 움직일 수 없는 팔다리에 묶여 있었다. 살아있는 것은 청신경이었다. 현관문이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현관문을 열려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청력이 예민했다. 버튼 누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음의 높낮이로 몇 번을 누르는지 들을 수 있다. 누군가 문 앞에 서있다는 것을 느끼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고 싫었다. 내 집에 오는 사람은 코로나 검사를 하러 온 방역요원이거나 아파트 경비원이거나 주민회, 내게 강압과 고통만 주는 사람들만 내 집 문을 두들겼다. 베이징산우회 무전기주파수를 나는 아파트 문 비밀번호를 사용했다. 띠띠띠띠띠띠 6번 소리는 정확하게 404075였다.
민혁 씨일까…
비행 나간다고 했는데 왔을까…
상하이 봉쇄는 오늘 6월 1일 아침에 풀렸다.
팡창에서 나를 감시하는 사람도 없지만 나를 데려다줄 사람도 없었다. 0.01초라도 팡창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나올 기력도 없고 휴대폰 충전을 해야 했다. 충전을 하고 물이라도 마셔 말라붙은 목과 내장을 적셔야 했다. 일주일도 넘게 꺼져있던 휴대폰 충전은 내 몸에 수분이 돌기 시작하는 시간만큼 더디 흘렀다. 끔찍한 소독약 큐브에서 나가야 하는데.. 휴대폰 충전이 끝나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일단 팡창에서 나가자
컨테이너를 급조해 만든 팡창은 우주기지 같았다. 끌려올 때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컨테이너가 병마용처럼 도열해 있었다. 마음은 빛보다 빠르게 가고 싶지만 몸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보다 느리다. 공성전을 방불케 하던 수많은 방역 요원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같이 끌려왔던 중국 사람들은 이미 다 집으로 돌아갔나 보다. 외국인의 서툼이 서글프다. 디디滴滴가 불러질까 싶다. 디디앱을 열고 내가 있는 위치를 찍으니 집까지 2시간 걸리는 섬이다. 상하이시하고 연결된 다리가 있다. 섬 안에 수용소가 여러 군데 있었나 보다. 평소 제일 싼 요금의 차만 불렀는데 지금 이 시간은 얼마를 주든지 상관없다. 제일 비싼 요금부터 모든 요금의 차를 다 불렀다. 지금 아무 차라도 타면 좋겠다. 평소 요금의 3배를 부른 탓인지 차가 잡혔다. 끌려올 때 가지고 온 작은 캐리어 가방과 출퇴근 때 메고 다니는 투미 백팩은 내 옆에 있는데 내 안에 나는 없다.
팡창에 끌려온 2주 동안, 나는 연옥과 지옥을 오고 갔다. 비싼 요금을 내고 부른 차인지 좋은 차가 왔다. 지금 뭐라도 좋아.. 불쌍했는지 한심했는지 기사는 짐을 실어주었다. 차 안에 생수도 2병 있다. 생수 1병 더 마시고 나니 눈이 감긴다. 지금 나는 24시간 불 켜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소독약을 뿌려대는 집단 수용소가 아닌 공간에 있다. 차 안이라도..
봉쇄 풀린 지 몇 시간 안 되어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휴대폰에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온 문자와 메일로 가득했다. 민혁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지금 팡창에서 나와 집으로 간다고 그동안 연락 못 해 미안하다고 바로 답장이 왔다. 괜찮다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비행 가야 한다고, 비행 갔다 와도 시설 격리 14일 해야 하니 보름 뒤에나 만날 수 있다고 정말로 미안하다는 문자다.
안다. 비행을 하지 않는 기장은 기장이 아니다.
이 순간만은 비행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2주 동안 나는 살아있지만 죽은 것 같았다. 민혁이 너무 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무릎에 떨어졌다. 차 안에 있는 휴지로 눈물을 훔치며 차에서 내렸다. 64일간 바리케이드 쳐져 있던 아파트 정문은 너무 쉽게 열렸다. 기사는 짐도 내려주고 차문도 열어주고 자꾸 괜찮냐고 물어본다. 괜찮치 않지만 기사가 가해자도 아닌데 심통 부릴 필요 없다.
문 앞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영자 집이라는 딱지가 끈적하게 붙어 있고 방역요원들이 뿌렸던 소독약은 현관문 안까지 허옇게 염전 소덩어리처럼 굳어 있다. 문 앞에 민혁이 격리시설에서 보냈을 것 같은 헬싱키에서 사 왔을 빵봉지와 초콜릿이 든 봉지도 있었다. 주인 없이 방치되어 있는 빵봉지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났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의식을 잃고 거실 바닥에 쓰러졌다. 시간이 있다면 그건 내 것이 아니다. 봉쇄 동안, 내 의지로 할 수 있던 것은 없었다.
시간은 나를 가둔 자의 것이었다.
봉쇄 해제 후 이제 시간은 내 것일까?
현관문이 열렸다. 민혁이다.
민혁은 키가 컸다. 180cm도 넘는 민혁 키를 내가 못 느낄 수 없다. 기장 표시하는 4줄 견장을 어깨에 단 유니폼을 입고 플라이트백을 끈 채이다. 말을 하고 싶은데 입술과 식도가 말라 나오지 않는다. 민혁은 말하지 말라고 했다. 오늘 비행이 취소되었다고 했다. 브뤼셀로 가는 전세 여객기였는데 코로나 감염자가 기준보다 더 나오면서 비행이 취소되었다고 했다.
비행이 취소되어 너무 다행이야.
오늘 여기로 올 수 있어 정말 다행이야.
라고 말하면 나를 안아주는 민혁 얼굴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내 마른 입술에 떨어졌다.
미안해요.
혼자 팡 창에 끌려가게 해서, 고생하게 해서, 미안해요.
죽지 않고 버텨줘 고마워요.~
그래 나는 죽지 않았다.
죽으려고 했지만 사실 죽고 싶지 않았다.
중국에서 상하이에서 팡창에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죽지 않으려 나는 발버둥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