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히스 1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택희 Sep 27. 2023

뿌리박기

  파초가 제 꽃 빛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좀 놀랐지만 강물 오래 바라보다 나무가 되었다 두 팔은 나뭇가지가 되고 손바닥에 잎맥이 선명해졌다 중랑천 줄기 따라 목백일홍들이 물속으로 가지를 세운다 맑은 날엔 왜가리가 제 모습을 물속에 거꾸로 새기고 그림자로 달리는 자전거는 색깔 옷을 되쏜다 오리 부부가 커다란 물주름을 만들며 지나간다 새끼오리 뒤로는 작은 삼각형의 물주름이 따른다 오리는 등 뒤의 물빛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잘 걸어온 길에 미련을 두지 않는 물과 다르지 않다 큰 나무처럼 시들지 않는 문맥을 따라 제 걸음으로 걸어갈 뿐이다 길은 어디에나 있다고 지나가는 개미가 발끝 간질이지만 가만 눈을 감는다 오래 서 있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새 몸이 강줄기에 닿아 있다 



이전 09화 돌연, 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