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우물에 빠져 가만 두 팔을 젓는다
하늘 한편이 상기되어 있다
위쪽은 부풀고 아래쪽은 짓물렀다 왜가리 한 마리 비를 맞는다 피할 생각도 없이 가는 발목을 물에 담근 채 먼 곳 바라본다 이제는 낫지 않을 수피 같은 그을음 발자국 거둬 떠난 물가 적막이 깊다 새기고 새겨도 제자리인 빗방울이 그리는 무수한 동그라미를 세다 물방울로 돌아와 앉는다고 적었다 물가 왜가리 비를 맞는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센다 나란하던 체취처럼 환영이 오른다 빗줄기의 시든 목구멍이 삼켜지고 있다 한때 온통 환하던 물가인데 혼자가 되어 돌아온 계절 산딸나무 꽃 하얗게 돋고 있다 돌고 돌아 피고 지는 흰 구름의 날들 두고 온 골목이 잠 끝에서 오래 서성인다 슬며시 어두워지는 길목에서 맨발로 두리번거리는 나를 부르는
당신, 구름이었던 적 있다
소나기였던 적이 있는 나도 한때 그의 언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