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영어 듣기 평가에서 그렇게 집중했다면 내 영어점수가 조금은 더 좋았을 것이다.
2시간 반 운전, 낯선 사람들과 환경, 평소 안 쓰던 몸을 너무 열심히 쓴 데다가 결정적으로 와인까지 한두 잔 잔 마시니 눈꺼풀이 천근만근 자꾸 내려왔다. 처음에는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하다가 나중에는 어차피 어둑어둑해서 표정이 잘 안 보일 거라 생각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들렸다.
"니콜은 어떻게 생각해요?"
......
내가 한마디도 안 하고 앉아 있으니 누군가 나를 대화에 끼워주려고 배려해서 말을 걸어준 것 같았다.
대충이라도 대화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뭐라도 둘러댔을 텐데 그럴 수도 없어서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앗, 미안해요. 너무 피곤해서 조느라고 못 들었어요."
부끄러웠지만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저는 먼저 좀 들어갈게요."
약간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이내 텐트에 들어가 쌔근쌔근 자고 있는 제이든 옆에 몸을 뉘었다. 힘들면서 뿌듯하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묘한 기분을 오래 느낄 겨를도 없이 그냥 나 또한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지금은 외식하자고 하면 차라리 배달시키자고 하고, 여행 가자고 하면 잘따라나서지 않는 제이든이다. 하지만 어릴 적 이런 즐거운 추억들이 몸과 마음의 기억에 남아 성인이 되면 다양한 경험에 도전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