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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oland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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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Mar 01. 2024

1월 17일 요요기역

처음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일본 지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를 처음 만나던 날은, 도쿄에 도착해서 2주 동안의 격리가 끝나 나의 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이었다. 격리를 하던 나리타 공항 근처의 호텔까지 데리러 오겠다는 그의 과분한 친절함을 정중히 거절하고 중간 지점이기도 하고 집 계약을 한 부동산이 있기도 한 요요기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요요기 역까지도 여러 번의 환승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의 친절을 거절한 것에 대해서 조금은 후회를 했다. 게이트를 한 번에 지나가기에는 짐이 너무 많았다. 하는 수 없이 두 번에 나누어서 게이트 쪽으로 캐리어를 옮겼다. 게이트 밖에 그가 보였다. 


검정 재킷과 긴 머리. 


두 개의 캐리어를 겨우 통과시킨 후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All good.” 그가 늘 하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캐리어를 잠시 맡아 줄 수 있냐 묻고 새로 살 집의 키를 받으러 부동산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면서 든 생각은, 그의 이름이 뭐였더라. 


사실 아침 내내 머리를 쥐어짜 보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만나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Hey? You? 일단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서 키를 받아 돌아가자. 


역으로 다시 돌아와 캐리어를 건네받았을 때 눈에 띄었던 그의 손톱. 

왼손에만 발라져 있는 검정 매니큐어, 그것과 너무 잘 어울리는 약지의 은반지, 그리고 중지의 한자 타투. 그의 손에 오래 머물러 있는 나의 시선을 의식한 건지, “손을 왜 그렇게 떨어?”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 


“연구실에 있을 때 커피를 다섯 잔이나 마셔서 손이 좀 떨리네.” 다섯 잔을 마셔도 괜찮은가 생각하면서 말했다.

“짐을 맡아줘서 고마워. 근데 혹시 집 앞까지 같이 가 줄 수 있을까? 아직 핸드폰 개통을 못해서 데이터가 없거든. 아, 혹시 핫스폿을 좀 빌릴 수 있을까?” 말을 뱉으며 깨달았다. 


이것이 얼마나 이름을 알아내기 천재 같은 방법인지.

속으로 뿌듯해하며 핫스폿 리스트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쌤의 아이폰


그의 이름은 쌤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매주 종이 맨 위, 내 이름 옆에 적혀 있던 그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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