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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oland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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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Apr 13. 2024

4월 19일 산겐자야역

의존성을 버려가는 모습은 언제나 ‘검소한 것', ‘성숙한 것’, ‘절제력이 대단한 것’과 같이 바람직하고 따라야 마땅한 것으로 여겨졌다.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나는 이 틀 안에 갇혀버렸다. 때때로 고개를 올리는 욕구들을 나는 철저히 외면해야 했다. 가끔은 예쁜 가방을, 헐지 않은 신발을 신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절대로 그것을 소비하는 스스로의 모순을 허할 수 없었다. 그 깊은 구덩이로 빠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나라는 사람은 좋은 것, 안락한 것, 편안한 것을 누리려 하지 않는 사람에서 누려서는 안 될 사람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 강박의 결과는 참으로 참담했다.


삶의 서글픔은 스스로가 몹시 안쓰러울 때, 집 근처 공원에서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으며 생각했다. 이 아보카도 토스트를 만드는 스스로가 얼마나 가여웠는지. 


1월부터 살던 집에서 나왔다. 역에서 가깝고 회사에서 가깝고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의 집이 내게 과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월에 긴 여행도 예정되어 있으니, 회사에서도 멀고 평수도 작고 오래된 산겐자야역 근처의 셰어하우스로 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사할 건물에 도착했을 때 느낀 싸늘함은 주인공이 처참하게 죽지 못한 채 고통받는 그런 고어물 도입부에 나오는 폭풍전야 같은 느낌이 강하게 주었다. 

1층에는 약 6개의 칸막이 같은 방들이 있었다. 칸막이라는 표현이 적확하다. 문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간이식 막으로 한 명의 공간을 구분하고 있었다. 2층에는 큰방이 3개 있었고, 각 방은 네 명의 사람들이 같이 쓰는 형식이었다. 큰방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4평도 안될 크기였다. 한 벽면에는 짐을 둘 수 있는 벽장이 있었고 다른 두 벽면은 이층 침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초라한 삶을 살게 되면 셰어하우스 누구와 마주치는 것을 모두가 극도로 피하게 된다. 같은 비극의 삶을 공유하는 알고 싶지 않은 유대감이, 그 공감이 서로를 부끄러움으로 옥죄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을 땅으로 고정된 채 귀신처럼 각자의 흔적을 숨긴 채 살아가는 그런 공간이었다. 이곳에 사는 인간이라는 스스로가 찍은 낙인은 사람의 혼을 갉아먹는다. 인간다움을 영위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에서 볼 수 있는 활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기에 여기에 살게 된 것인지, 여기에 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경계선이 너무나도 불분명하게 흐리멍덩해지는 공간이다. 


처음 이사를 하던 날,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앞 게이트를 열었다. 잠겨있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에도 잠겨있지 않았다. 여기에 숨 쉬는 대 일곱 여덟 명의 사람들이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살인을 당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분위기였다. 

나는 힘겹게 짐 가방을 가지고 위층 방으로 갔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겨우 잠잘 수 있는 수준으로만 정리를 하고 잠에 들었다. 스스로에게 어떤 일을 자초한 것인가에 대한 상처의 무게를 겨우 견디며.

새벽같이 일어나 도망가듯 회사로 향했다. 밤 10시가 되도록 집에 가지 않았다. 집에 가야 하는 시간이 되는 게 끔찍했다. 그 말도 안 되는 집 방에 누워있을 때면, 스스로가 너무 가여웠다. 또 이런 삶을 살고 있는 딸을 둔 엄마의 삶까지 서글펐다. 

회사로 도망갈 수 없는 주말이 되면 나는 빠르게 아침과 점심을 만들어 공원이나 도서관으로 나갔다. 

공동부엌은 자는 공간과는 또 다른 음산함이 있었다. 어두운 붉은 계열의 수납장과 희미한 조명, 시체의 한 부위가 굴러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침침한 냉장고. 그곳에 발을 디디고 서서 식빵 조각에 아보카도를 잘라 얹고 있는 스스로가 인생을 되돌릴 수 없는 굴레에 떨어져 버린 정신 나간 여주인공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소름 끼치는 공기를 마시며 만든 아보카도 토스트를 공원에 나와 먹고 있을 때면, 한시라도 빨리 쌤네 집에 가는 것이 기다려졌다. 그가 해준 과카몰리가, 그의 집의 쾌적함이 기다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제공해주는 안락함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뭔가, 하면서 말이다.


쌤네 집은 요츠야역에서 보도로 3분 거리에 있는 맨션이었다. 1LDK로 남학생 혼자 살기에는 호화스럽고도 남을 집이었다. 아침해가 밝을 때 5층 복도에서 내다보는 요츠야역과 벚꽃이 흐드러진 조치대학교는 주말이면 기다려질 만한 광경이다. 집으로 들어가면 현관문에는 그의 접이식 자전거가 걸러있고, 문을 닫고 뒤를 돌아보면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의 세련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기다린다. 오른쪽에는 그의 개인방으로 침대가 한쪽 벽면에, 커다란 책상과 게이밍 피시, 게이밍 체어가 있었고, 문쪽의 벽면에는 운동용 벤치, 아령등이 있었다. 침대 위쪽으로는 큰 창문이 있었지만 두터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수년간 한 번도 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독 빛을 싫어하던 그였기에. 방의 건너편에는 샤워실과 분리된 세면대, 분리된 화장실이 있었다. 복도를 걸어 들어가면 왼쪽에는 부엌 오른쪽에는 거실이 있었다. 거실에는 같은 디자인의 텔레비전 다이, 두 개의 의자와 그 사이에 테이블이 있었다. 모든 가구는 짙은 갈색의 목조로 엔틱한 느낌이 강했지만 굵직굵직한 느낌이 세련미를 더했다. 텔레비전 다이 위에 있어야 할 티브이는 온데간데없고 다양한 고급술들이 열을 이루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베이지 배경에 푸른 무늬가 있는 에스닉한 테이블클로스, 그위에는 프로젝터가 놓여있었다. 짙고 굵직한 가구들위에 섬세하고 우아한 테이블클로스의 그 다운 대조에 시선이 머물렀다.

나는 한쪽 의자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기도, 그가 권한 칵테일을 마시며 넷플릭스를 보기도 했다. 그렇게 그 의자에서 인간다움을 영위하다 보면, 그는 어느새 부엌으로 가 점심이나 저녁을 준비했다. 그는 나의 시간이 조심스럽기라도 한지, 슬그머니 부엌과 거실을 사이의 문을 닫는다. 그가 내게 저녁을 해주기 위해 특별한 항신료를 사러 멀리까지 가거나, 며칠 동안 숙성을 시킨다거나 하는 수고를 했다. 그날 저녁은 간장게장, 그 전주의 저녁은 육회 덮밥이었다. 


그가 만들어주는 최고급 음료들, 유기농 식재료들, 엔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가구들 속 나를 그려보며, 그 미적인 그림을 스스로 음미하며 나는 셰어하우스에서의 상흔을 치유해 갔다. 영혼을 세척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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