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결석계 06화

세상은 날 싫어해

by 까밀

래퍼 창모의 '빌었어'란 곡을 다들 아시는지? 거기엔 이런 가사가 있다.


친구들이 대학을 갈 때

난 한강에 가서 술을 마셨네

되뇌이면서, '세상은 날 싫어해'


이 가사 세 줄이 딱 내 처지였다. 한강에 가서 술은 몇 번 안 마셔봤지만. 나는 한강 대신 PC방에 다녔다. 리그 오브 레전드, 그래 롤. 친구가 롤을 가르쳐 준 뒤로 PC방에 거의 매일 출석 도장을 찍었다. 여담인데, 그 게임을 한지가 벌써 7년인데, 난 아직도 티어가 아이언이다. (...아이언 티어는 롤에서 제일 낮은 등급이다) 매일 욕설과 부모님 안부를 묻게 되는 게임이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밤 아홉 시쯤 가서 열 두시 즈음 끝내고 집에 들어왔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내 PC방 출석에는 아빠도 함께했다.


한 두 번만 따라올 줄 알았더니, 아빠는 1년을 내리 날 쫓아다녔다. 엄마가 걱정스럽다고 따라가라고 보챈 탓도 있겠지만, 일단 하나뿐인 딸내미가 어두운 밤길 다닌다 생각하니 신경 쓰이셨던 모양이다. 아빠는 주로 옆에서 만화를 보거나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아빠도 왕년에는 게임 좀 하셨던 분이라, PC방에 앉아있는 모습이 제법 자연스럽긴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우습다. 야밤에 PC방 같이 다니는 부녀라니. 아빠를 달고 다닌 나도 웃기지만, 따라다닌 아빠에게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당신은 21세기의 신세대 아버지예요.


PC방에 다녀도 낮에는 알바를 했다. 그때 정말 한 게 없다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나름 열심히 살았던 거다. 그리고 가끔씩 심리상담을 다녔다. 항상 갈 때마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매번 하던 얘기를 똑같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과 라포(신뢰관계)는 잘 형성이 됐지만, 그 상담으로 내가 많이 나아지진 못했던 것 같다. 병원을 병행했으면 나았으려나. 약간의 아쉬움은 남아있다.


나는 전혀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었다. 부모님이 은근히 바이올린을 다시 잡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다시 할 인간이 아니지, 내가. 전공이 아닌 취미로 하는 바이올린은 제법 나쁘지 않았다. 악기를 놓으면서 바이올린 실력은 무뎌졌지만, 연주하는 마음만큼은 제법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군가 다시 권유해도 잡을 생각이 요~만큼도 안 들었던 것 같다.


아빠가 PC방에 따라다니면서도, 대학은 다녀야지 않겠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여름까지는 '대학? 쿡. 그딴 건 이제 내 인생에서 없다!'라는 주의였다. 가을쯤 되고 나서, 음.. 그래도 넣긴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유웨이 어플라이에 들어가서 대학을 이리저리 찾아본 것 같다. 성적 컷이 얼마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정~말 아무 데나 넣었다. 대충 관심 있는 과를 골라서. 지금 생각해도 내가 참 미친 X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대학을 그렇게 정해... 앞으로 살아봐도 나 같은 계집애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지방에 있는 대학에, 심리학과 관련된 학과에 붙었다. 심지어 나한테 장학금도 준다더라. 나는 그걸 보자마자 고등학교 때 퍼질러 잔 기억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에 대학이 참~ 많구나. 나 같은 똥멍청이에게도 장학금을 주는 학교가 있구나. 그런 생각이었다. 딸의 '원서 아무 데나 발사하기 공격'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지방으로 딸내미를 유학을 보내게 되었다.


기숙사에 나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는 길에 온 가족이 눈물을 글썽였다고 했다. 함께했던 우리 할머니가 말하길, '느그 아부지가 그리 우는 건 살다 처음 봤다잉.' 그러시더라. 나를 만리타국에 시집보내는 것도 아니고 뭘 그렇게 유난들을 떨었나 싶지만.. 평생 끼고 산 딸이 갑자기 떨어지게 된 거니 이해하기로 했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2-3주에 한 번씩 서울로 올라가기도 했다. 다시 학교로 갈 때, 나를 배웅하는 엄마는 항상 울었다. 엄마에게 창피하다며 그만 울라고 타박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 울 만 하다 싶다.


그 학교에서 적응을 잘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학창 시절처럼 누가 직접적으로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아니다. 단지, 학교 분위기가 영~ 아니었던 부분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이 아니라 고등학교 4학년 같았다고 해야 할까. 어른이 아니라 그냥 몸만 자란 청소년들의 모임 같았다. 누구를 유치한 방식으로 시기하고, 모함하고, 따돌리고... 그 상황이 꼭 고등학교 때 상황이랑 비슷해서, 트리거가 제대로 눌려버렸다. 결국엔 작은 정신과에 가서 항불안제 약을 받아왔다. 그때 내가 트라우마가 제법 심하다는 걸 깨달았다.


여름방학이 되고 나서 서울에 다시 올라왔다.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는 건지 고민하다가, 휴학계를 냈다. 항상 그랬듯, 나에겐 구체적 계획이라는 것이 없었고... 다른 학교에 간다면 어디를 써야 할지 머리가 아팠다. 그러다 친구에게서 과거에 이런 말을 들었던 게 떠올랐다.


"너, 지휘로 시험 볼 생각 없어?"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열아홉엔 꺾여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