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에 다녀왔다. 지방 시골쥐인 나는 서울에 가는 일이 매우 드물다. 1년에 한 번꼴로 다녀오는 것 같은데 주로 목적은 지방에서 채울 수 없는 문화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이다. 하루에 20만원씩 하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 티켓을 끊고, 주말 야간 상관없이 일하는 남자친구와 일정을 맞추고 왔다갔다 인당 10만원이 넘는 케이티엑스 티켓을 끊고, 마지막으로 서울 올림픽공원에 가까운 숙소를 예약하면(벌써 100만원 썼다!) 1년만의 서울여행 준비 끝이다.
수업이 끝난 금요일 오후 남자친구와 부리나케 케이티엑스 역에 도착해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로 올라가는 동안 남자친구와 최애 프로그램인 고딩엄빠를 보고, 어떻게 이렇게 기구한 삶이 있나, 왜 이렇게 출연진의 삶이 흘러갔는지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켄드릭 라마의 엔95를 들으며 내가 가진 본질적이지 않은 허영심, 껍데기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용산역에 다다른다. 서재페 준비물로 돗자리, 보냉백, 미니손풍기, 미니 방석 등의 짐을 바리바리 싸서 왔기 때문에 서울 안에서 지하철은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 이동은 모두 택시를 이용했는데 서울은 차가 너무 많아 택시에 탈 때마다 서울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택시기사님의 운전실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사고 위험성도 지극히 높다고 생각이 들어 내 안전벨트도 단단히 채우고 별 생각없는 연인의 벨트도 있는 힘껏 채워줬다.
‘안전 사고는 언제 발생할 지 몰라. 1000번 타서 멀쩡하다가도 1번 잘 못 되서 다치면 피해 보는건 우리야. 항상 안전벨트는 매야 해.’
이동수단에 대한 나의 불신은 뿌리 깊은 것이라, 남자친구는 조용히 벨트를 매고 있었다.
우리는 토요일 공연을 예매해 금요일은 숙소 주변 동네 구경, 토요일은 서재페 구경, 일요일은 밥 한 끼 먹고 다시 내려오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2박을 묶을 것으로 예상해 근처에 있는 모텔을 예약했는데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결제한 15만원과 별도로 연박시 발생되는 돈이 있다며 6만원을 더 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가 연박을 해서 받지 못하는 대실 금액 만큼을 내라는 말이었다. 연박시에는 보통 깎아주지 않나 싶었지만 그들은 어플에 아주 작게, 얄궂게 기재를 해놨다며 주변 숙소들도 모두 자신들처럼 운영을 한다고 했다. 숙소 카운터에 입구에는
절 대 환 불 불 가
라는 말이 아주 엄중하게 적혀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터키에서도, 일본에서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에서도 안 당했던 덤탱이를 서울 한복판 한민족에게 당하는 구나 싶은 마음으로 그냥 돈을 지불했다. 카드로 지불하려는 내게 숙소 주인은 계좌이체를 해주면 더 좋다고 말을 덧붙이려 했지만 카드를 내미는 내 손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들어선 숙소는 …
쓰레기 같았다. 이 글을 읽는 이의 입장으로는 2박에 15만원, 21만원짜리 숙소에 뭘 그리 바라는 것인가 싶겠지만 오염이 묻은 수건, 찌든때가 쌓여 누런빛이 된 원래는 흰 색이었을 이불, 점입가경으로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 신발장에는 물이 고여 신발을 적셨다. 이 숙소를 찾은 것은 나였기에 남자친구에게 보일 낯이 없었다. 우리는 새벽 3시까지 숙소의 더러움과, 담배냄새와, 숙소 주인의 영업방침(어쨌든 환불 안됌 ^^)에 씩씩대다 지쳐 잠들었다. 속상했다. 1년만의 서울나들이가 혼란스러운 숙소 컨디션에 엉망이 되고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상태로는 하루종일 이뤄지는 서재페 공연도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이 뻔했다. 아…. 손해가 대체 얼마란 말인가.
다음날 3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6시에 눈이 떠졌다. 잠이 많아 비몽사몽한, 일하고 온 날 바로 서울나들이를 떠나 힘들어하는 남자친구를 구경하며 배민으로 서재페에 싸갈 음식들을 미리 탐색했다. 미리 서재페에 대한 정보를 탐색한 결과 페스티벌에서 판매하는 음식이 그리 다양하지 않아 간단한 요깃거리, 과일들을 싸가면 좋다고 했다. 역시 서울은 서울이라 아침 9시부터 장사하는 집이 많았다. 그 중 신중하게 시간이 지나도 눅눅해지지 않을 닭강정, 간단히 먹을 샌드위치 등을 주문해 반찬통에 옮겨담았다. 잠은 못 잔거고 이 공연 보려고 서울까지 왔다, 조금이라도 즐기지 못하면 완전한 나의 손해였다. 하루종일 야외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시원하게 먹을 물, 얼음까지 준비해 보냉백에 차곡차곡 쌓았다. 어떤 방해물이 있더라도 즐기고 말겠다, 이 공연!
대니(남친이라고 번거롭게 말하기도 힘드니 이젠 그냥 그의 별명으로 지칭하겠다.)와 채비를 마치고 서재페의 시작 시간에 맞춰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다. 도착한 올림픽 공원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이었다. 한 명당 20만원이라고 계산을 해보려 했으나 주최측이 3일간 벌어들일 수익이 굉장히 막대할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처음 경험한 서재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첫 날의 거지같은 숙소도 잊어버리게 할 만큼 행복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잔디광장 그늘이 자욱한 끝 편에 자리를 잡았는데 미래를 내다본 대니의 선견지명에 가까운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침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있으니 처음엔 가수 보러간 공연인데 무대 가까운 게 최고지! 싶어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햇빛이 피크에 가까워지면 작열하는 햇빛에 녹아가다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선점한 그늘의 끄트머리라도 얻으러 돌아다녔다. 나도 처음엔 무대와 너무 먼 것 같아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참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자리 선정 등의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서는 대니가 나보단 훨씬 낫다.
서재페 첫 경험자들을 위한 팁 - 잔디광장에 자리를 잡을 때에는 무조건, 무조건 그늘자리로 잡아라. 가수와 보다 가까이 있고 싶다 하더라도 장시간 공연 관람을 위해서는 그늘자리는 필수 요소다.
우리는 따뜻한 햇빛의 온도 아래서 쿠팡으로 구매한 빨간 돗자리를 펴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누워있었다. 귀로는 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들이 들렸고 배가 고프면 간식을 사먹고 몰래 숨겨운 미도리 칵테일을 얼음에 타먹고 또 우리가 하고 있는 이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보였다. 나는 대니에게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남들 눈치를 엄청나게 보는 한국 사람들은 그저 잔디에 누워서 산들바람을 맞는 이 간단한 피크닉도 인당 20만원을 줘야 할 수 있는 경험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간단한 햇살, 바람, 무성한 초록의 나무에도 행복감을 느끼니 자주 잔디밭에 가서 공짜로 돗자리를 피자고 이야기했다.
유명한 가수들의 공연을 연달아 듣고 행복해하다가 마지막 밤 옮긴 숙소로 이동했다. 예상치 못한 숙소 컨디션으로 다른 숙소를 예약하느라 30만원을 오버해서 더 썼다. 이번 경험으로 삶의 지침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서울 여행을 갈 때에는 1박에 20만원이 넘는 숙소를 예약할 것. 안그러면 더한 피해와 감정적 손해를 얻게될 수도 있다.
새로 예약한 숙소에 가서 숙소는 이래야 한다며 행복하게 침대에서 폴짝폴짝 뛰다 마포에서 가장 리뷰가 많은 떡볶이집의 떡튀를 시켜먹으며 서울여행을 마무리했다. 어쨌든 행복한 나들이였다. 그런데 문득 우리반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6학년의 큰 행사로는 수학여행이 있다. 우리 학교도 2박3일의 서울행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는데 우리학년 선생님들의 생각을 모아본 결과 수학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크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난 2022년 수학여행을 간 초등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관리감독 부주의의 책임을 물어 담당 인솔교사 2명은 과실치사의 죄목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 수학여행에서 자녀를 잃은 부모님의 심정은 나로써는 쉽사리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20명의 아이들을 버스로 태워 서울까지 데리고 가 2박 3일간 아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장담할 수 없다. 부모가 1명의 아이를 데리고 놀러다녀도 눈깜박할 사이 나는 것이 사고이다. 그런데 담임교사인 나를 포함해 기껏해야 2명인 지도교사가 20명의 아이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감독 할 수 있을까? 눈이 4개인데 어떻게 20명을 빈틈없이 본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반 녀석들은 당연히, 수학여행에 갈 수 있을지 안다. 6학년을 버티는 이유가 수학여행이라고. 반짝반짝 빛나는 그 눈을 보면 그냥 모른채 하고 서울로 데려가고 싶기도 하다. 평생을 지방에서만 살고 타지역도 가지 못한 아이들에게 서울의 높은 건물들도 보여주고 롯데월드에도 데려가고 공연도 보여주고 싶다. 부모 없이 저희들끼리만 킥킥대다 잠드는 그런 경험을 주고 싶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1프로의 사고율도 없이 수학여행에 데려갔다 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지도교사를 한 10명은 붙여달라고 해야할까? 학교 안에서도 다칠려면 다치는데, 내가 환경을 전부 통제할 수도 없는 야외로 아이들을 데려가 다치거나 심하게 죽는 경험이 생긴다면… 최악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