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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디 Jul 13. 2024

여름의 중간, 사춘기가 휘몰아친다.

 시간은 참 빠르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좀 알 것 같다. 2월 올 해 아이들을 만나기 전, 한 해를 함께 할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일까 생각하며 두근거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벌써 여름방학을 앞둔 7월이다. 출근일만 세어보면 2주하고도 반. 약 13일만 출근하면 신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신나는 여름방학이 오기 전 내게 남은 관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적 처리다. 아이들 행동발달 및 특기사항에 여러 가지 칭찬을 주욱 나열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녀석들에게는 촌철살인의 비수를 꽂고 싶지만 그 말을 빙글빙글 돌린다. 그 아이가 한 선행이 한번이라도 생각나면 좀 더 예쁘게 돌려본다. 생기부에 대한 민원이 늘어나면서, 아이들 생활기록부를 쓰는 일은 한 학기간 아이들을 관찰한 일을 가지고 사실을 나열하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 문장이 어떻게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학부모에게 들릴 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과정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글짓기를 한 편씩, 총 20명의 아이들에 맞게 짓는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실과, 체육, 영어, 미술, 음악 과목수대로 짓는다.


 학생부를 해가 지난 다음 고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학생부를 고치기 위해서는 수정대장을 써야 하는 등 과정이 복잡하다. 따라서 당해년도 생기부 점검을 꼼꼼히 마쳐 오류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종합일람표 점검은 보통 3차례를 거친다. 1차는 동학년 선생님들과, 2차는 학년군과, 3차는 교무실로 제출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그때는 정말로 여름방학 돌입이다!


 여름방학이 오기 전 또 하나의 관문이 있다면 그건 슬슬 고개를 처들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사춘기다. 사춘기는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나이를 타고 온다. 옆 반 여자애들이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옆반 쌤을 보며 우리 애들은 아직 ‘그 것’이 안 온 것 같다며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옆 반 여자애를 마주칠 때마다 그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눈빛에 당황했었는데, 옆 반 그 아이와 친한 우리 반 여자아이들에게서도 슬슬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여자 아이들의 사춘기 징조는 보통 1. 책상 위 왕거울의 존재, 2. 슬슬 메이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 3. 담임교사에게 시니컬해지는 면모 등이 있다. 사춘기 티가 나는 녀석들 책상 위엔 벌써 왕거울이 하나씩 자리한다. 이 큰 거울은 아이들이 생활하다 보면 꺠지기도 쉬워서, 거울이 깨지면 네가 쳤네 누가 쳤네 얼마를 물어내야 하네 아주 난리다. 이 놈의 거울들 다 가져다 버리고 싶은데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할 것이기에 그렇게도 못한다.


 여자아이들이 이렇다 하면 남자아이들은 어떤가? 말하자면, 나는 남자아이의 사춘기가 버겁다.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고 책상을 두들겨대고 한 마디로 난리부르스를 치는 초6 남자아이를 보고 있자면 그저 한 숨만 푹푹 쉬게 될 뿐이다. 이걸 잡아야 되는데, 내 앞에서 악을 쓰고 버릇없게 행동하는 저 녀석을 뭐라 해야하는데, 몇 번이고 또 한 말을 또 해야 하기에 입이 다 아프다.


 현재 우리반에는 세 녀석이 사춘기로 제정신이 아니다. 게임에서 하루종일 패드립을 일삼는 녀석들이라, 갈등이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바로 패드립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이른바, ‘니애미’의 바다에서 요즘 헤엄치고 있다. 어제, 업무를 정신없이 해결하는 중 부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반 녀석이 다른반 아이에게 ‘니애미 xx를 잡아 뽑겠다.’는 현란한 패드립을 박은 것이다. 아이를 불러 추궁해보니, 쉽게 인정은 한다. 하지만 절대 자신만의 잘 못이라곤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다른반 아이가 어떻게 했기 때문에 자신은 그렇게 했다.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기란 어른도 어려운 일인데, 13살 소년이 가능할 리가 없다. 너가 욕을 들었으면 너도 욕을 해도 되냐고. 학교 안에서 그게 무슨 욕설 허가증이라도 받은 거냐고 혼을 내고 네가 한 모든 욕설을 부모님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네 생기부에도 모두 적히고 있다고. 학교 안에서 이런 언사를 하면 선생님은 기록에 남길 수 밖에 없다고. 요 녀석은 아버지를 엄청나게 무서워한다. 꼬리를 세우고 바락바락 악을 쓰다가도, 부모님 이야기만 나오면 활활이가 바짝 내려간다. 죄송하다고 제발 집에 알리지 말라고 녀석이 빈다. 이런 녀석은 차라리 다행이다. 가정 안에 무서워하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아이에게 일종의 제어기가 된다.


 한 녀석은 아버지라도 무서워해 억제가 되는데 다른 두 녀석은 집에 무서워하는 어른이 하나도 없다. 자신의 불안정하고 기복이 심한 감정이 최고로 중요하니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선생님 앞에서 악을 바락바락 쓰는 너, 소리지르지 말라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소리를 지르는 너, 악! 소리를 왠지 모르겠지만 반복해서 내는 너, 책상을 쿵쿵 잘도 쳐대는 너, 친구에게 스프레이를 뿌리는 너, 숙제를 4개월동안 한 번도 해오지 않은 너, 수업시간이면 엎드려 자는 너, 엎드려 안자면 딴소리를 해대는 너.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다. 마음가짐을 고쳐 먹어야 겠다. 선생님 앞에서 악은 쓰지만 욕은 쓰지 않는 너, 소리 지르는 정도로 분노표출을 하는 너, 감정을 적극적으로 소리로 표현하는 너, 행동으로도 표현하는 너, 친구에게 소독약은 안 뿌리는 너, 숙제는 안해와도 수업은 안 튀는 너, 수업시간에 방해는 안하려고 하는 너, 그래도 수업에 참여하려고 하는 너…


마음을 넓게 써야한다. 말리면 내가 손해니까. 애야, 2학기도 우리 잘 보내야 하니 여름방학동안 선생님이 마음 공부를 많이 해올게. 너도 좀 자라서 오길 바란다.    

항상 기억할 것. 그러나 항상 잊혀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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