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닌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다양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이중 몇은 생각하는 것만으로 나를 웃음짓게 하고 또 이중 몇은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자꾸 떠올라 나를 움츠려들고 몸서리치게 만든다. 밥벌이가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다른 직업보다 나를 보호할 수단이 현저히 적은 내 직업은 초등교사이다. 어린 아이들은 해맑게 웃고 그 순수함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지만 영악한 아이들은 어른보다도 나를 괴롭게 했고 보통 그런 아이들의 부모는 괴물과 같았다. 초등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많은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접하며 나는 종종 생각하게 됬다. 부모가 되면, 저렇게 되는 걸까?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가 받은 피해만을 생각하고 교사를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부모를 종종 보며 나는 아이를 가져 저런 모습이 된다면 부모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분명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겠지만 그것이 아이들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을 적대적으로 여기고 불편한 상황이 생길 때 자신의 감정까지 퍼부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교직은 나에게 있어 소중한 밥벌이 수단이자 일하는 성인으로써 내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이다. 이 일은 내게 행복과 뿌듯함을, 또 자괴감을 안겨준다. 시간이 흐른 후 내가 나의 기억을 돌아보기 위해 기록을 좀 남겨보고자 한다. 아이들과 일하는 모든 어른들에게, 세상 어디에서도 실수는 일어날 수 있으며,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린이를 가까이하는 직업을 택한 그들의 여린 마음으로, 모든 실수가 그들의 잘 못이라고 여기지 말 것을 말해주고 싶다. 죄책감으로 뒤덮인 마음으로는 결국 우리와 함께하는 어린 아이들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선생님들, 다들 힘내시게요!
- 한라산의 기상을 닮은 소년
내 기록의 첫번째는 현재 내가 맡고 있는 학급의 가장 큰 존재였던 한라산 군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한라산 군을 맡은 3월, 나는 충격에 휩싸여 한라산 군을 맡았던 전학년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 선생님은 2년전 내가 동학년을 맡았던 50대 중반의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라산군의 담임이 됬으며 이 아이에 대해 물으려 찾아왔다고 말하자 한숨을 내뱉었다. 그 소년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던 일이 한두번이 아니며 1년이 지나 새로운 아이들을 맡은 지금 너무 행복하다는 말씀도 하셨다. 수업시간 중 반복적으로 이상한 소리를 하며 몸을 흔들고, 여자아이들에게 성적인 욕을 큰 소리로 내뱉는 다는 그 아이는 10살이었다. 한 때는 아이가 등교를 거부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자 그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왔는데 선생님께서 이 아이가 학교 수업시간에 수업에 얼마나 큰 방해를 하는지, 또 친구들에게는 어떤 피해를 주는지를 아이들의 기록을 통해 보여주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런 놈이 내 반에 오다니, 눈 앞이 깜깜했다. 한 해간 어쨌든 파이팅 해보라는 말을 듣고 학급에 돌아오며 1년간 또 도를 닦아야하는구나 싶었다.
실제로 한라산 군은 3월달에만 수업시간에 리코더를 들고 교실안을 뛰어다녔으며(그 시간은 국어시간이었다.) 교실 뒤에 가서 서있으라는 나의 말에 갑자기 교실 쓰레기통을 뒤집어쓰고 서있어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한라산군에게는 지적도, 뒤에 서있으라는 벌도, 하교 후 남아서 청소하라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수업시간 중 갑자기 큰 소리로 욕설을 하기도 했고 친구들의 목을 조르기도 했으며 수업시간에 계속해서 수업을 듣지 않고 종이를 구겨 내가 종이를 빼앗자 내 팔뚝을 꼬집기도 했다. 내 남자친구는 나의 좋은 상담원이자 대화 상대인데 퇴근 후 나는 하루종일 한라산 군이 오늘 무슨 짓을 했는지, 나의 대처에도 어떤 반응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동안 한라산 군이 내 머리 안을 지배한 셈이다.
그의 계속된 정신지배에 더이상 참을 수 없게된 나는 학교 상담 선생님께 찾아가 올해 내가 맡은 학생이 한라산 군이며 그가 지금 나의 학급 운영에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지를 잉야기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올게 왔다는 듯 한라산 군이 올 4학년 학생 중에서 가장 강력한 문제학생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처음 학교를 들어왔을 때 그의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선생님이 그의 가정방문을 하였는데, 근처에서 음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는 내 아들을 법관으로 만들 것이며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라고 말한 뒤 단호하게 선생님을 내보냈다고 한다. 현재 4학년이 되 수업시간마다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빼락빼락 내뱉는 아들을 매일 6시간씩 보고있는 나로써는 법관은 무슨, 나중에 합의금 안 물어주려면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학부모에게 그런 표시를 내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 한 결과 그의 아빠가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다는 정보만을 얻은 나는 더욱 시무룩해졌다. 요즘같은 세상에 학부모와 대립하고 싶어하는 교사는 어디에도 없다. 뭐만하면 아동학대에, 교육청에 신고한다는 인간들이 넘쳐나는데 괜한 트러블이 싫어 다들 문제가 생겨도 외면하는 추세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나의 수업을 방해하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그를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 대체 어쩌란 말이냐…! 나의 고민만이 늘어갔다.
어느날이었다. 1교시 수업이 끝나고 2교시 체육 수업을 보내야 하는 때였다. 체육수업은 체육 전담 선생님께서 맡아서 해주셨는데 선생님은 키가 180이 훌쩍 넘는 체격 좋은 50대의 남자 분이셨다. 한라산 군은 특유의 좋지 못한 수업태도로 체육수업때마다 지적을 받았고 그것이 스스로도 별로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이들을 줄을 세워 체육관으로 보낸 내게 느지막히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라산이가 보였다.
"라산아, 왜 체육 안 갔어? 수업 늦어. 얼른 체육관으로 가."
"제가 왜 체육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는지 설명해보시죠? 선생님."
라산이의 말은 한달 반을 열심히 꾹꾹 내리눌러 참아왔던 나의 인내심을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열받은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라산이에게 아빠 번호를 찍으라고 했다. 아직 젊어서인지 간혹 나의 인내심은 한계로 다달라 내게 평소라면 두려워서 못할 추진력을 주곤 했다. 곧 라산이의 아빠가 전화를 받았고 나는 아드님이 지난 번에는 청소를 시켰다고 창문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으며(내 학급은 학교 3층에 위치해있다.) 지금은 체육 수업을 가라는 말에 자신이 왜 체육수업에 가야하는지 설명해보라고 한다고 지금 당장 학교로 와달라고 말했고 라산이의 아빠는 말이 없었다. 사실 작년 더 한 일들도 많이 겪었던 나로써는 더 더러운 꼴을 보면 이놈의 직장 떄려쳐버리고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가능했던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 라산이의 어머니가 학교에 도착했고 나는 라산이가 한달 반 동안 보여준 생활 태도와 학습 태도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나는 지금 그때의 라산이가 학교에서 뭘 배우고 느꼈을지 짐작도 채 할 수 없지만 다만 지루함에 몸서리쳤다는 점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