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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디 Oct 29. 2023

5년차 초등교사 살아남기

우리반 귀여운 질투쟁이, 새우

 2023년 올해 학급을 새로 맡으면서 내가 한 해동안 함께할 아이들의 이름을 쭉 훑어봤을 때, 새우는 내게 낯선 이름을 가진 아이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형을 맡아보았기 때문이다.(이 아이때문에 학교에서 울고불고 하는 일이 생겼고 어머님과 면담까지 마친 사이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나의 경험을 보다 덤덤히 볼 수 있을 때 해보고자 한다.) 3월이 되고 만나본 새우는 통통한 몸을 가진, 사랑과 배려를 받는 일에 익숙한, 다정하고 여리지만 큰 성량을 가진 남자아이였다. 나는 남자아이들의 성량을 다소 놀랍게 생각하는데 10살, 11살밖에 안된 아이들의 성량이 28살, 목소리를 크게 만들기 위해 노력까지 한 나의 성량을 몇 배나 쉽게 뛰어넘기 때문이다. 아마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이 큰 영향을  미치는 곳 중 하나가 성량이 아닐까 싶다.


 새우는 장난기가 많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수업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는 내내 책상 위에서 조그마한 종이들을 찢었고 좀 더 지나서는 공책들을 엮어 만화책을 만들어 하루종일 스토리를 그려댔다. 수업 시작할 때는 책 좀 피라고, 수업 중에는 책 보고 글씨 좀 쓰라고, 연필 어디갔냐고, 쓰레기 치우라고 잔소리하는 일에 지쳐 나는 새우를 그냥 놔뒀다. 공부란 어차피 시킨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수업을 할 때마다 하는 나의 잔소리가 새우를 위축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니 그냥 스트레스라도 안받게 놔두자 싶었다. 수업은 학생에게도 여간 스트레스 받는 일이 아니다. 자유롭게 뒹굴고 떠들고 놀 수 있는 집과 다르게 40분간 가만히 앉아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버텨야 하는 일을 하루에 5번이나 참아야 하는 것은 수업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는 고문과도 같다. 다만, 내가 열심히 떠들고 있는 수업을 열심히 안듣는 새우가 얄미워 만화책을 만들어야 하니 테이프 빌려달라는 말에 “내가 왜? 싫어~” 하고 넘겼다.


 새우는 나를 좋아한다. 나도 새우처럼 다정다감한 어린 남자아이는 거의 처음이었기에(올해 우리반에는 다정다감한 남자아이들이 많다!) 새우를 잘 받아줬지만 새우는 어리광이 많은 편이었다. 우리는 수요일마다 스포츠 강사 선생님과 함께하는 체육시간이 있었는데 수업의 전반부는 스트레칭과 체력단련 위주고 후반부는 게임을 했다. 통통한 몸을 가진 새우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수업 전반에 있는 활동들이 지루하게 힘들게 느껴졌다보다. 새우는 체육 시간을 시작할 때면 머리가 아프다, 발목이 아프다, 배가 아프다며 내 옆에 찰싹 자리를 깔고 앉았다. 몸이 아픈 아이를 체육 시간에 굳이 참여시키는 일은 대단한 민원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아파보이는 아이들도 다 쉬게 해주지만 새우는 아프다는 녀석이 20분 내내 내게 여러가지로 말을 붙이다 체육시간 전반부가 끝나고 게임을 시작하면 몸이 나았다며 쏙 아이들 사이로 들어가 게임에 참여했다. 하루 이틀이면 그냥 그렇게 보내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니 아이들 사이에서도 좋게 보이지 않았나보다.


 또 새우가 20분 휴식, 20분 게임을 하려는 순간 우리반 대장격인 준이가 새우를 향해 소리쳤다. “넌 수요일만 아프냐? 너 아까도 뛰어노는거 다봤어! 엄살 좀 부리지마! 네 병의 이름은 수체병이야!(수요일체육병)” 준이의 말의 새우의 어깨는 확 내려갔다. 단번에 풀죽은 모습이었다. 학교생활은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사실 친구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또래집단이 이 시기 남자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일개 교사가 미치는 힘보다 훨씬 파워풀하다. 나는 기가 확 죽은 새우에게 “준이 말이 맞아, 새우야. 체력 단련도 좀 해야해.”하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후 새우가 수요일 체육 시간에 빠진 적은 없다. 체육 좀 빠지지 말라는 나의 잔소리보다 준이의 말 한마디가 새우에게는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남자아이들 사이의 관계란 참 신기한 게 많다.


 하지만 새우는 이러한 일을 겪고도 중요한 점을 알지 못했다. 집에서 막내격인 새우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마다 뭔가를 내게 이르는 일이 많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준이가 저 따시켜요. 왠지 제 뒷담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준이가 저를 안놀아줘요.” ”축구할 때 저를 안 끼워줘요.“

새우가 말하는 것들은 따돌림의 모습을 하고 있긴 했지만 실체가 불명확했고 또 놀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교사가 개입하기에 어려운 문제였다. 사실 우리반 남자아이들을 잡고 있는 목소리 큰 준이의 성향을 봤을 때 준이에게 가진 불만들을 모두 내게 털어놓는 새우의 모습이 준이로 하여금 더 같이 놀고 싶지 않게 만든다는 것을 왜 새우는 모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준이는 눈치가 굉장히 빠른 아이였고 내게 잘 보이기를 원했다. 새우가 불만을 가지고 내게 준이에 대한 불평들을 털어놓을 때 나는 새우와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준이의 눈을 여러 차례 보았다. ‘ 새우야, 너 지금 준이랑 더 멀어지고 있어.’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 소년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후 새우는 쉬는 시간에 줄곳 혼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반의 학급 구성을 살펴보면 새우가 편하게 여기고 어울릴 친구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마음이 통하지 않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웅다웅 거리는 것보다 새우는 혼자 만화책을 그리기를 택한 것 같았다. 혼자있는 새우가 안타까워 같이 혼자있는 라산이와 놀아보라고 권유했지만 새우는 친구에 대한 주관이 뚜렷한 아이답게 라산이는 이상하다며 거부했다. 친구와 함께 해 마음 시끄러운 것보다 차라리 혼자 있기를 택한 나와 비슷한 선택이었다.


 새우는 쉬는 시간이면 나의 옆에 붙어 다양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 중 내 신경을 쓰이게 만든 한 축은 새우의 아빠에 대한 것이었다. 새우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에게 “아빠 싫어요. 아빠가 집에 없었으면 좋겠어요.” 같은 표현을 일관적으로 했다. 새우는 아빠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어릴 때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당연함에 젖어 새삼 인식하지 못하므로 나는 그럴리 없고 아버지는 너를 사랑하신다는 뜻의 말을 했다. 그러자 새우가 들려준 말은 나로써도 좀 혼란스러웠다.


“아빠가 집에서 나가라고 했어요. 숙제도 안하고 공부도 열심히 안한다구요. 우리 아빠는 집에 오면 나한테 방에 들어가서 책보고 문제 풀라고만 말해요. 그러다 아빠랑 싸웠는데 아빠가 집에서 나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알게되면 시끄러워 지니까 아빠랑 엄마가 외출한 사이에 집에서 나가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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