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산이 어머니와의 상담은 그 후로도 몇 차례 계속되었다. 사실, 라산이는 학교 많은 아이들을 만난 상담선생님의 눈에도, 30년간 초등학교에 근무한 이전 담임 선생님의 눈에도, 겨우 5년이 지난 초보 교사인 나의 눈에도 ADHD 증상을 가진 아이라는 것이 뻔했지만 이를 아이의 부모님에게 말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학부모에게 아이는 콩깍지를 씐 눈으로 보일 수 밖에 없고 가정 내에 아이들이 많지 않은 이상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내 아이가 이상한건지, 이상하다면 이것이 성장과정에서 있을법한 정도인지, 아니면 얼른 손을 잡고 오은영 선생님(내가 맡았던 학급에는 모두 오은영 선생님이 필요한 아이들이 하나씩은 꼭 있었다.)을 뵈러 가야할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ADHD 약에 대한 근거는 없지만 왠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은 느낌 역시 아이 손을 잡고 정신과 문을 여는 데에 많은 고민을 만든다. 물론 성장과정에 있는 아이에게 어떠한 약물 투약 부작용이 아예 없으리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또 많은 의문과 불안을 들게 하지만 현재 라산 군이 나아진 모습을 보는 나로써는 적절한 시기의 전문 의료진의 도움을 받은 약처방과 치료는 아이를 더 일찍 학교생활의 정상궤도로 들게 하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라산군은 현재 많은 문제행동들이 사라졌으며 모범적인 태도로 수업을 듣고 자발적으로 내게 남아서 수학공부를 하고 가겠다고 말하는 학생이 되었다.
어쨌든 결단을 내리기 전, 부모는 많은 갈대를 가지고 흔들릴 수 밖에 없기에 나는 부모가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독려했다. 라산이가 소리를 지르고 책상을 손으로 내려치고 욕을 내뱉는 날에는 참다참다 수업이 다 끝나가는 5교시에 인내의 끈을 놓고 라산이 어머님을 불러 아이를 귀가조치 하기도 했고 라산이의 문제행동을 그대로 담은 수업 영상을 찍어 학부모에게 보냈으며 두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접수된 '이런 일이 있었어요'(우리 학급에서 발생한 문제 상황에 피해를 본 아이가 담임 선생님의 개입을 요구하기 위해 쓰는 신고 양식이다) 30장 가량을 어머니 앞에 펼쳐 놓으며 결단을 내리시길 촉구했다.
그 사이 라산이와 나는 참 많은 신경전을 펼쳤다. 체육시간마다 바르지 못한 태도로 밉상이 된 라산이가 똥이 마렵다고, 이 체육관에 똥을 싸버리겠다고 난리를 쳐 라산이만 데리고 배변유도를 위한 산책을 시키기도 했고(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는 젊은 여선생님에게 최소한의 수치심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라산이의 이런 반응은 정말이지 신선했다.) 수업시간에 장난감을 만지고 소음을 내며 수업을 방해하는 라산이의 장난감을 빼았아 라산이에게 팔뚝을 긁히고 이를 어머니에게 사진 찍어 보내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 동안 어머니는 검사를 받아보겠다는 결단을 내렸고 라산이와 병원에 다녀온 지 일주일 가량 후 나는 그에 대한 진단 결과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라산이가 가진 병은 ADHD와 음성틱이었다. 라산이의 수업시간 지속되던 욕설이 음성틱의 일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가슴이 아팠다. 라산이는 약을 먹고 피곤해했고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을 먹기 싫어해 내가 손을 잡고 달래가며 급식실로 데려가야 했다. adhd약의 전형적인 부작용이었다. 라산이의 달라진 모습의 부모님은 아마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adhd 아동들의 약물치료가 한번에 끝나기 어려운 것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부모 역시 참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평상시와는 달리 축 가라앉아있는 아이의 모습이 부모눈에는 한없이 안쓰럽게 보이기만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치료의 과정이고 이를 참아내야만 아이가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된다면 달라진 아이의 모습에 눈물이 나더라도 나는 좀 참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아이를 갖지 않은 미혼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실, 라산이에게 나름의 정성을 쏟은 이유는 내가 이 아이를 맡은 담임 교사로써의 책무감 만은 아니었다. 어느날, 친구들에게 개새끼, 지랄, 병신, 씨발년 등의 욕설을 큰소리로 내뱉는 라산이에게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라산아, 그거 대체 어디서 배운 말이야?”
“아빠요! 아빠가 엄마가 일을 잘 못하면 욕해요.”
머리를 한 대 딩 맞은 것 같았다.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일단 아이가 안쓰러웠고, 어머니도 안쓰러웠고, 아버지는 대체 왜 애 앞에서 그런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아이가 내면에 가지고 있을 여러가지 상처들을 생각하니 슬픈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까 싶었다. 라산이가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나의 입장에서, 또 조금이라도 나은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라산이에게 몇 가지 말을 했다.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할 때 네 마음은 어땠느냐, 너 역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선 안 된다, 그건 너 스스로가 안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다. 등의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 있는 10살 아이에게는 스스로의 책임을 더 불러 일으키는, 그런 말을.
사실 나쁜 욕설을 일삼는 어른 밑에서 자란 아이에게 욕이라곤 한번 귀에 들어 보지도 않은 아이처럼 자라라는 말은 이기적인 어른의 요구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입이 걸걸한 두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안다. 아빠는 어린 딸에게 개새끼, 자신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할 시엔 ~하면 죽여 버린다, ~하면 맞는다 등 온갖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밑에서 성장하며 들은 여러 가지 말들은 성인이 된 지금 내게도 상처가 된다. 나 역시 성장 과정에서 많은 욕을 하는 그리 착하지 않은 청소년이었고 입이 거친 20대 초반을 보냈지만 현재 지금은 하고 있는 일때문에선지 욕설 사용은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라산이 역시 욕설 사용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이게 하는지 깨닮고 스스로 성인이 되어가며 고치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살아가는 환경은 다양하지만 같고, 같은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수만가지 갈래의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다른 아이들에게 욕설을 거리낌없이 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소리를 질렀던 아이더라도 그 명민한 뇌와 반짝이는 호기심을 가졌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라산이가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