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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종 Oct 18. 2023

최고의 인생

  「걸리버여행기」라는 책을 읽은 4학년 어느 날이었다.

  이 글을 읽고 상상을 해본다. 만약 내가 나보다 몸집이 작은 사람들이나 힘없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가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그 세계에서는 내가 최고 강하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훨씬 더 인정받고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최고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우리 반에서 나는 키가 큰 편이다. 우리 식구들은 키가 작은데 왜 나만 이리 클까 궁금해하면, 형들은 항상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와서 우리랑 다르다고 놀렸다. 형들은 항상 나를 놀리고 공부 못 한다며 때리고 괴롭혀도, 나를 위해서 그런다는 걸 알기에 괜찮다. 하지만 그만 좀 괴롭혔으면 하는 마음이다. 막둥이와 엄마는 정말 좋다. 매일 화가 나 있는 아버지만 빼고.     

  “어이, 너 일로 와 봐.”

  바람에 이끌려 이리저리 춤을 추는듯한 코스모스가 핀 하천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키가 나하고 비슷한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키 작은 그 아저씨를 보고 있자니 동화책에 나오는 난쟁이가 떠올라,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키는 나와 똑같은데 얼굴은 내 세 배, 몸집은 내 두 배쯤 되는 사람을 처음 마주하고 보니 어른이 저렇게 키가 작을 수가 있나, 밥을 못 먹어서 저러나 내게 마법을 걸어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저예?”

  “어, 그래.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냐. 너 철이반점 옆에 사는 아이 맞지? 나는 너희 집 2층에 사는 아저씨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네. 집에 같이 가자.” 

  아저씨가 내 옆으로 와 나란히 걸었다. 

  “야, 날씨도 더운데 우리 쮸쮸바나 하나씩 먹을까.”

  “아니예, 지는 괜찮아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근처 슈퍼로 들어가 쮸쮸바 2개를 들고 나왔다. 진짜 괜찮다며 손을 뒤로 감췄지만 억지로 쮸쮸바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둘이 나란히 걸으며 시원하고 달달한 쮸쮸바만 빨았다.

  “너 이름이 뭐고?”

  “아, 네. 지는 민규라고 해예.”

  “그래. 나는 조용제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아저씨 이름 알아봐야 나는 그냥 아저씨라고 부를 건데 왜 굳이 나한테 자기 이름을 가르쳐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맛있는 쮸쮸바도 얻어먹어서 “네”라고 짧은 대답만 했다.

  말없이 같이 걷는 길이 더디게만 느껴질 때이다.  

  “민규야, 너희 집에 아이들이 많던데 식구가 몇 명이고?”

  “아부지하고 엄마캉 위로 형 3명 하고 동생 한 명 있어예.” 

  “방 한 칸에 일곱 명이 살기에는 비좁지 않나? 많이 불편하겠는데.”

  무시하는 듯한 말에 기분 나빠진 나는 우리 식구들끼리 살아서 아주 행복하고 좋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공부할 때는 어떻게 하노?”

  “그냥 엎드리서도 하고 상에 앉아서도 하고 있어예.”

  “그래. 그럼 우리 집에 와서 공부도 편하게 하고 재밌게 놀면 되겠네. 어차피 아저씨는 혼자 살고 있고 저녁에는 일하러 가서 아무도 없으니 언제든지 놀러 와.” 

  자기 혼자 얘기하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그냥 집으로 올라가 버렸다.

  ‘칫, 누가 놀러 간 댔나. 이상한 아저씨네. 별 꼬라지다.’ 중얼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니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일곱 살 막둥이가 반가이 달려왔다. 막둥이는 내게 엉겨 붙으며 오늘은 왜 이리 늦었냐며 혼자서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고 칭얼댔다.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나와 형들이 등교하고 나면, 혼자서 집을 지킨다는 표현보다는 혼자 남게 되는 막둥이는 얼마나 심심할까?라는 생각도 잠시 막둥이가 나를 아주 성가시게 따라다녔다.

  “형아, 학교 가면 뭐 하고 노노. 공부하면 재밌나?” 

  한시도 입을 가만두지 않고 종알댔다. 하는 수 없이 귀찮게 하는 막둥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길거리에 버려진 바람 빠진 축구공을 가지고 축구놀이를 한참하고 있으니, 수업 마치고 온 옆집에 사는 웅이를 선두로 성현이, 미연이도 같이 놀자며 끼어들었다. 친구들과 축구, 딱지치기, 숨바꼭질하며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이 집 저 집에서 엄마들의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은 하나둘 각자 집으로 들어가고 막둥이와 나만 남게 되었다. 더 놀자고 보채는 막둥이를 달래서 집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형과 셋째 형이 들어왔다.

  “집 잘 지키고 있었나. 막둥이 얼굴이라도 좀 씻기지.”

  셋째 형이 막둥이를 데리고 동네 우물가로 가서 얼굴을 씻기고, 둘째 형은 부랴부랴 쌀을 씻어 곤로에 불을 붙이고 쌀을 안쳤다.

  밥이 다 되어갈 무렵 온몸에 생선 비린내를 풍기며 엄마가 들어왔다.

  “어이구, 우리 막둥이 세수도 했는가베. 씻으니까 얼굴이 꼭 가시나 같이 이쁘네.”

  막둥이는 셋째 형이 씻겨줬다며 엄마 옆에 붙어 종알종알 떠들어 대지만 엄마는 저녁 먹을 준비해야 하니 형들하고 놀고 있으라며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는 다니는 쥐포 공장에서 가져온 쥐치 새끼로 찌개를 끓였다. 다 같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아버지는 오늘도 늦으시냐는 둘째 형의 물음에, 아직 안 오시는 거 보니 또 어디서 술 한잔하시지 않겠냐며 엄마는 한숨을 내쉬셨다.

  저녁 식사 후 둘째 형과 셋째 형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지막이 흥얼대고 있었고, 엄마는 빨래를 끝내고 방에 들어와 막둥이를 무르팍에 앉히고 구멍 난 양말과 속옷을 꿰매고 있었다. 한동안 각자의 휴식과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쯤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벌떡 일어나 일렬로 섰다. 엄마는 막둥이를 형들 뒤에 숨겨놓고 밖으로 뛰쳐나가 아버지를 부축했다.

  “아이고, 인자 오는교. 어데서 이래 마시고 오는교. 어여 들어가 주무이소.” 

  “이게 어디서 지랄이고. 서방이 술 마셨다고 지금 잔소리하는 기가. 니 내 무시하나?” 

  아버지가 엄마를 밀어 넘어뜨리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둘째 형과 셋째 형이 엄마한테 달려가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고는 아버지 눈치만 보고 있다.

  “이노무 새끼들. 아부지 왔는데 인사도 지대로 안 하고, 지 엄마 옆에 붙어서 뭐 하는 짓이고.”

  아버지는 옆에 있던 빗자루를 들어 형들을 때렸고, 겁이 난 나는 막둥이를 데리고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아버지가 주무시려면 아직 한참을 더 있어야 하는데 갈 곳이 없다. 

  밤하늘에 뿌려져 있는 별들이 나를 조롱이라도 하는 듯 각자의 빛으로 나의 눈동자 깊은 속까지 들어오는 듯하다. 그러다 낮에 만난 아저씨가 한 말이 떠올랐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갈 곳도 없는 처지라 막둥이와 2층으로 살금살금 올라가 문 앞을 기웃거렸다. 

  “행님아, 여기 누구 집이고? 여기와 왔노.” 

  막둥이 입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문이 열렸다.

  “어, 민규 왔네. 동생이 가? 얼른 들어온나.” 

  아저씨가 내 손을 잡고 우리를 집안으로 끌어당겼다.

  “너네 아버지 원래 술 많이 드시나. 술 드시면 원래 저러시나? 한번씩 저녁마다 고함소리가 나더만 너거 집인가 보네.” 

  “우리 아부지는 맨날 술 묵고 들어와서 고함치고 엄마 때리고 내도 때리고 형도 때려요.”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치는 막둥이의 입을 얼른 막았다.

  뭐라 할 얘기도 없어서 그냥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에게, 아저씨는 내일부터 오후 5시쯤 일하러 나가니까 저녁에 심심하면 올라와서 텔레비전도 보고 공부도 하다가 잠 오면 여기서 자도 된다고 했다.

  “진짜? 텔레비 봐도 돼요? 행님아 아저씨가 여기서 놀아도 된다고 한다. 우리 맨날맨날 여기 와서 놀자.”

  막둥이는 엉덩이춤까지 추며 좋아했다. 오늘은 조금만 있다가 가겠다는 나의 말에 아저씨는 여기서 자고 가도 된다며 찬장 속 조그만 통에 들어있는 사탕을 꺼내 줬다.

  “하나씩 묵어봐라. 아주 맛나다. 그리고 텔레비 볼 때 요건 트는 거고, 끌 때는 요래 돌리면 된다.” 

  “야, 만지지 마라. 고장 나면 우짤라고 그라노.” 

  막둥이는 그저 좋아 입을 헤헤거리며 신기한 듯 텔레비전 여기저기를 만졌고, 나는 그런 동생의 손을 내리쳤다. 아저씨는 괜찮다며 그냥 놔두라고 하셨다.

  한참이 지난 후 우리는 집으로 내려왔고 막둥이는 잠이 쏟아진다며 방 한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코를 드렁드렁 골며 주무시고 계셨다.

  “너거들 어데 갔다 인자 오노? 나간 지 한참 됐는데 안 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나?” 

  엄마에게 2층 아저씨 얘기를 했고 아저씨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었다. 엄마는 아저씨가 많이 고맙다며 내일 고등어라도 한 마리 갖다 드려야겠다며, 그래도 자꾸 가면 싫어하실 테니 아저씨 귀찮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 후로 나와 막둥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저씨 집에 놀러 갔다. 아버지가 술 마시고 집에 와서 난리 칠 때면 자연스레 아저씨 집에 가서 잠을 잘 정도로 친해졌다. 엄마도 수시로 김치와 고등어조림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 갖다 주시곤 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되고 막둥이도 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5학년이 되었다. 

  하교 후 막둥이와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은 4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그날따라 막둥이가 사탕이 먹고 싶다며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보채기 시작했다. 

  “행님아, 배도 고프고 사탕이랑 과자도 먹고 싶다. 돈 없나? 내일 돈 준다 카고 그냥 좀 달라하면 안 되나.”

  “누가 돈 없는 우리한테 그런 걸 주겠노. 쫌만 참았다가 저녁에 엄마한테 사달라 해라.”한참을 막둥이를 달래어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집에 안 가겠다고 막둥이는 떼를 쓴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준이연쇄점’이라는 가게가 있는데 나는 하는 수 없이 막둥이를 가게 문밖에 세워두고 살짝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 할아버지가 꾸벅꾸벅 졸고 계신 틈을 타, 사탕 한 개랑 캐러멜 한 개를 들고 뛰어나왔다.

  “막둥아, 어여 뛰라.” 

  “이노무 자식들, 어디서 도둑질이고. 도둑놈 잡아라.” 

  나는 막둥이 손을 잡고 죽어라 내달렸고, 잠에서 깬 주인 할아버지는 고함치며 쫓아왔다.

  우리는 겨우 도망쳐 집 뒤 담벼락에서 훔친 사탕과 캐러멜을 먹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빙그레 웃으며 아무도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이라는 것을 눈빛으로 교환했다.

  다음 날 조례 시간이 끝난 후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다. 나는 어제 일이 들통난 것을 직감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교무실로 들어갔다. 막둥이가 언제 왔는지 선생님 앞에서 울고 있고, 그 옆에는 가게 할아버지가 씩씩거리며 서 있다가 나를 보고 달려왔다.

  “이 도둑놈의 자슥, 이제 찾았네.” 

  내 멱살을 잡고 흔드는 할아버지를 선생님들이 겨우 말렸고, 내일까지 부모님과 함께 가게로 찾아가 사과하고 사탕값을 변상하겠다는 다짐을 듣고서야 교무실을 나가셨다. 

  “민규야, 너 남의 물건 훔치는 아이는 아니잖아. 왜 그랬어?” 

  담임선생님이 화가 나서 야단을 치셨고 나는 울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울고만 있는 내게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시며 내일 학교로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늦게까지 일한다고 바쁘신 엄마와 무서운 아버지. 만약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안다면 나는 분명 옷이 다 벗겨진 채로 집에서 쫓겨날 것을 알기에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이참에 학교를 그만둘까 아님 집을 나가 버릴까. 그냥 확 죽어버릴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2층 아저씨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내 등을 치며 물었다.

  “민규야 니 무슨 일 있나? 아무리 불러도 대꾸도 안 하고. 막둥이는?”

  막둥이는 진작에 집에 먼저 갔고 나는 학교 화장실 청소하고 이제 가는 길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냐며, 친구들이랑 싸웠냐며 귀찮게 캐묻는 아저씨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문디 짜식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얘기하지. 남의 물건을 훔치긴 와 훔치노. 내 니 그렇게 안 봤는데 영 못 쓰겠네.” 

  “누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는교. 그람 우짜겠는교 막둥이가 묵고 싶다고 울면서 집에도 안 갈라 카는데.” 

  내 맘도 모르고 버럭 화를 내는 아저씨 때문인지 서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참을 말없이 걷는데 아저씨가 훔친 사탕값은 대신 주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니예. 그보다 학교에서 부모님 모시고 오라 카는데 사실대로 얘기하면 지는 아부지한테 맞아 죽어요. 우짜면 좋을지 모르겠네예. 그냥 집에서 도망치 삐까 예?”

  “뭐라고. 이노무 짜식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니가 도망가긴 어디로 간단 말이고. 너 엄마랑 동생 안 보고 살 수 있나? 아무리 철딱서니가 없기로서니 어떻게 그딴 말을 하고 지랄이고.”

  “그라믄 어쩌란 말인교. 내도 성질나 죽겠는데 더 뭐라 카기만 하고. 아제 혼자 가이소.” 

  조금 전보다 더 화를 내는 아저씨에게 고함을 치고 무작정 내달렸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 앞 개울가에 앉아 돌팔매질만 하고 있었다. 돌이 떨어진 물가에 물살이 원을 그리다 이내 사라졌다. 나도 저 물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무작정 흘러가거나 돌이 떨어져도 잠시 첨벙거리고 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가 있는 저 물처럼 이 일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아저씨가 옆으로 다가왔다.

  “아저씨가 부모님 대신 학교 가주면 되겠나. 근데 내가 가면 친구들이 난쟁이라고 많이 놀릴 건데 니 괜찮겠나?”  

  “아제를 우리 아부지라고 합니까. 뭐라 합니까?”

  “아버지는 바빠서 못 오시고 삼촌이라 해라. 내일만 니 삼촌 해주꾸마. 내가 학교 가는 건 괜찮은데 너 놀림감 될까 나는 그게 더 걱정이다.” 

  “아제요, 내 이래 봬도 우리 반에서 싸움 젤 잘해요. 아무도 내 못 건드려요.”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아저씨가 크게 보인다. 아버지보다 더 크게.

  다음날 아저씨가 학교에 오셨다. 담임선생님께서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무실로 향했다.

  “어, 민규 왔어. 너희 삼촌한테 말씀 들었다. 아무리 동생이 보챈다고 그런 못된 짓을 하면 되겠니. 앞으로 나쁜 짓 안 한다고 약속하면 용서해 줄게.”

  “네. 선생님.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인사를 꾸벅하고 웃으며 나왔다. 하교 후 아저씨와 같이 가게에 들렀다.

  “제가 조카 교육을 제대로 못 해서 이런 몹쓸 짓을 했네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테니 한 번만 용서해 주이소.”  

  “니 경찰에 신고할라 캤는데 요번 한 번은 용서해 준다. 한 번 더이라면 그땐 뒈지게 맞을 줄 알아라. 인자 가봐라.”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사탕값의 몇 배 되는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우리는 가게를 나왔다.

  “니 배 안 고프나? 긴장해서 그런가 나는 배고파 죽겠다. 짜장면 사주께. 먹고 가자.”

  “집에 막둥이 혼자 있어서 지는 집에 가서 묵어야 돼요.”

  “막둥이 꺼는 우리 먹고 냄비에 싸달라고 할 테니 먹고 가자.”

  아저씨가 억지로 내 손을 잡고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태어나서 학교를 한 번도 못 가봤다. 니 덕분에 학교라는 곳도 다 가보고. 가보니까 신기하고 기분이 참 좋네.”

  “아제요. 진짜 고마워예. 앞으로 시키는 거 다 할 테니 말만 하이소.”

  “아니다. 다신 그런 짓 안 하면 된다. 나는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고 보다시피 이렇게 작게 태어나서 사람들한테 조롱거리만 되는데 니는 공부 열심히 해서 나 같이는 안 돼야지. 그리고 니는 이제 내 조카 아니가. 맞재.”

  함박웃음을 짓는 아저씨를 보니 나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저씨는 뭐가 그리 좋은지 ‘헐헐헐’ 웃기만 하셨다.

  그날 이후 매일 아저씨 집에서 잤고 막둥이는 아침마다 나를 깨우러 2층으로 올라와 투덜거렸다.

  “행님아, 맨날 깨우러 와야 되나. 행님이 제 발로 일나서 내려오면 안 되나. 귀찮아죽겠다.”     

  며칠째 아저씨가 집에 들어오질 않는다. 아무리 늦어도 집에는 꼭 들어오시는데 뭔 일이 있나 걱정을 하며 집으로 내려갔다. 아침 먹고 있는데 주인집 할머니가 엄마를 찾았다.

  “야야. 좀 나와봐라. 우리 집에 전화가 왔는데 민규 엄마 바꿔 달란다.”

  “아침부터 누가 전화를 하노. 혹 너그 외할매한테 뭔 일 있는 거 아니가?”

  엄마가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2층 아저씨 전화인데 얼마 전 밤에 일하다가 손님한테 맞아서 병원이라며 옷가지랑 필요한 물품 좀 갖다 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우리밖에 없다는 전화였다. 아버지가 궁금해하며 엄마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뭔 일 하노?” 

  “괴정에 있는 나이트에서 삐끼 한다고 하대요. 그 작은 몸으로 술 취한 사람들 상대하려면 엄청 힘들 건데 많이 안 다쳤나 모르겠네요. 내일 퍼뜩 갔다 오께요.”

  “엄마 내도 같이 가자. 짐은 내가 챙길 테니까 병원 갈 때 내캉 같이 가자.”

  “알았다. 오늘 공장 가서 물어보고 일찍 나올 수 있으면 나올 테니까 같이 가자.”

  학교 등교 후 아저씨 걱정에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교 후 친구들이 놀자는 것도 뿌리치고 곧장 집으로 가서 엄마를 기다렸다. 4시쯤 돼서 공장에서 조퇴하고 오신 엄마가 빨리 다녀오자며 보채셨다. 나는 아저씨 짐을 들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니는 2층 아제가 그리 좋나. 우째 된 게 집에 있는 시간보다 2층에 있는 시간이 더 많노. 아제가 니 싫어하지는 않나?” 

  “아니. 아제는 어차피 혼자 있으면 심심하고 외롭다며 제발 내 보고 더 자주 놀러 오라 하는데 내가 튕구고 있다.” 

  나는 엄마를 향해 히쭉 웃어 보였다.

  병실에 있는 아저씨를 보니 눈가는 퍼렇게 멍들어 있고, 머리에는 하얀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우얘 된 거요? 몸은 괘안아요. 얼마나 다쳤길래 입원까지 다하고, 때린 놈은 잡았는교?”    

  “며칠 지나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네요. 바쁘신데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하네요. 나중에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우리 막둥이캉 민규 돌봐주시고 이뻐라 해주시는데 지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저희가 죄송하지예. 민규야, 니는 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노. 빨리 가보자고 재촉할 때는 언제고 와 그라고 있노?”

  “엄마. 내 오늘 여기서 자면 안 되나. 낼은 학교도 안 가는데 병원에서 자고 큰 행님이 데리러 오면 되잖아.”

  “알았다. 대신 아제 귀찮게 하지 말고 옆에서 심부름 잘해드리고 낼 온나.”

  그렇게 엄마는 집으로 가셨고, 나와 아저씨 둘만 휑한 병실에 남았다.

  저녁 식사로 나온 흰쌀밥과 된장국, 밑반찬을 보고도 아저씨는 입맛이 없다며 나보고 다 먹으라고 했다. 망설이며 눈치를 보다가 배가 고파 허겁지겁 밥을 다 먹고 아저씨가 다친 이유를 물었다. 손님 중에 술만 취하면 ‘난쟁이’라고 놀리며 손찌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날도 잔뜩 취해서는 시비를 걸었다고 했다.

  “너거 부모도 니랑 똑같이 생긴 거가. 난쟁이끼리 결혼하면 니 같이 작은 얼라가 나오는기가.” 

  얼굴도 모르는 부모까지 들먹이며 괴롭히는데 너무 화가 나 옆에 있는 맥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쳤는데 얼굴에 피가 묻어나오며 그 사람이 쓰러지자 같이 온 일행들이 미친놈이라며 아저씨를 둘러싸고 집단으로 때렸다고 했다. 아저씨는 맞다가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고 했다. 

  “그람 때린 사람들은 경찰들이 다 잡아 갔는교?”

  “아니. 병으로 사람 머리 내리친 거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고, 나도 사람들한테 집단으로 구타를 당해 맞아 죽을뻔했으니 서로 비슷하다고 경찰서에서 그냥 또이또이 하자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

  씁쓸한 표정을 짓는 아저씨를 보니 더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아저씨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규야. 나는 세상에서 니가 제일 부럽다. 니는 학교도 다니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계시지. 듬직한 형들과 귀여운 동생도 있지. 게다가 니는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 성격도 좋지. 니 첨 봤을 때 참 좋아 보이더라. 착하고 동생 잘 돌보고. 그런데 며칠 보니까 니도 힘든 게 많아 보이더라. 맨날 칭얼대는 막둥이는 언제나 니 차지고, 밤마다 아버지한테 맞고, 형들은 니 무시만 하고. 어머니도 형들하고 막둥이만 신경 쓰지 니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고. 아저씨가 니 맘 다 안다. 그래도 니보다 못한 사람, 특히 내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원래 내 이름은 조용제가 아니고 조용조다. 이상하게 태어났으니 조용조용 살라고 지어주신 이름이라더라. 내 부모님도 민규 부모님처럼 보통 사람인데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머리는 크고 몸집이 작으니 괴물같이 느껴졌을 거야. 사람들 앞에 내보이기엔 창피하고 두려워서 걱정도 많으셨을 테고. 2살 땐가? 암튼 어릴 때 보육원으로 보내졌어. 거기서 쭉 살았는데 같이 생활하는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너무 당해서 도망쳐 나왔어. 여기저기 떠돌면서 만난 말 못 하는 벙어리, 앞이 안 보이는 봉사, 팔 하나 없는 사람, 다리는 있는데 힘이 없어서 걷지를 못하는 사람,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들 하나 같이 착하고 선한 사람들인데, 힘이 없고 다르다는 이유로 제일 가까운 사람들한테 버림받고 망가지더라. 그들에 비하면 그나마 내가 좀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 나름대로 글도 배우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서 지금 이렇게라도 사는 거야. 니는 앞으로 살면서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그런 나쁜 사람은 안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규야, 아저씨 눈에는 니가 세상 부럽고 좋아 보인다. 지금 조금 힘들어도 지금 같이만 살면 니는 아주 훌륭한 사람 될 거야.”

  “네. 지는 안 그럴 겁니다. 지보다 약한 사람들 보호하면서 살 겁니다. 아제도 빨리 나아서 집에 오셔야죠.”      

  병원에 다녀온 후로 나의 학교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싸움 잘하고 힘이 좀 세다고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면 재빨리 달려가 말리고, 말려도 안 되면 때린 아이와 싸우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가 많이 맞았지만, 나중엔 요령이 생겼고 우리 학년 밑으로는 내가 짱이 되었다. 덕분에 우리 학교에서는 작고 힘없는 아이들이 이유 없이 맞고 괴롭힘 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그네 타는 곳에서 아이들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달려가보니 막둥이가 씩씩거리며 또래 아이들한테 고함을 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며 막둥이 옆으로 가 살짝 묻는 내게 막둥이는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슥들이 내가 숨바꼭질하자고 했는데 술래잡기한다잖아. 울 행님이 학교 짱이라고, 내 말 안 들으면 행님한테 엄청 맞는다고 했더니 다들 찍소리도 못하더라. 내가 때리니까 대들지도 않고 그냥 맞던데.”

  너무 어이가 없어 친구들 보는 앞에서 막둥이 머리를 한 대 때리며 “이 놈이 담에 또 너 것들 못살게 굴면 내한테 이야기해라. 그때는 이 놈 다리를 분질러 놓을 테니까. 그라고 니는 친구들한테 사과해라”고함을 치는 나를 보며 막둥이는 마지못해 “미안하다.”라는 말만 남기고 혼자 뛰어갔다. 일단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기저기 막둥이를 찾아다니다 집 근처 개울가에서 혼자 울고 있는 막둥이가 보였다. 나는 옆으로 다가가 다시 한번 더 머리를 세게 쥐어박으며,

  “니, 한 번만 더 친구들하고 싸워봐라. 그라고 특히 힘없는 친구들 괴롭히면 형이 니 가만 안둘기다.”

  나한테 엄청 혼이 난 막둥이는 울면서 부모님께 다 일러바칠 거라며 도망갔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막둥이 말만 듣고 그래도 동생이 어디서 맞는 거보다 때리는 게 낫지 않냐며, 형이 돼서 동생한테 뭐 하는 짓이냐며 나를 때렸다. 나는 말없이 집을 나와 아무도 없는 2층 아저씨 집으로 갔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나만 구박당하고 내 편은 아무도 없는 이 처지가 너무 비참하고 쓸쓸했다. 방바닥에 아저씨가 마시다 남긴 술병이 있어 술을 마셔 봤다. 약처럼 아주 쓴 맛이지만 마시고 시간이 좀 지나니 천장은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고 방바닥은 좌우로 흔들거리며 나는 벽 속에 갇힌 듯 갑갑하다가도 갑자기 하늘을 나는 듯한 이상한 기분에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음 날 아침 막둥이가 깨우러 올라왔다. 

  “행님아 잘못했다. 앞으로 안 그럴게. 잘못했다. 내는 행님이 젤루 좋다.”

  “문디. 니 담에 또 친구들 괴롭히면 그땐 국물도 없다.” 

  화가 풀린 나는 으름장을 놓으며 막둥이와 내려가서 아침을 먹었다.     

  퇴원한 아저씨는 다행히 전에 다니던 곳에서 연락이 와서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저씨 덕분에 2층에서 친구들은 보지도 못한 텔레비전과 라디오, 전축 그리고 맛있는 초콜릿, 사탕, 과자, 술이 있는 그곳에서 최고의 행복을 만끽했다. 2층은 나에게 행복 그 자체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여느 날과 같이 하교 후 2층 아저씨 집으로 올라갔다. 오늘따라 날씨가 너무 춥다. 텔레비전에서는 역대 최대 한파라며 떠들어댔다. 한파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나는 아저씨가 마시려고 놔둔 술을 홀랑 다 마셔버렸다. 몸이 따뜻해지고 정신이 몽롱했다. 이상하게 기분은 좋아지고 몸에서는 기운이 펄펄 나는 것 같았지만 실상 내 몸은 생각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그러다 벌러덩 누워 잠이 들었다. 

  아저씨는 늘 연탄이 있는 연통 뒷문을 열어놓고 자라 했는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은 없었지 싶다. 그냥 몸이 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렇게 나는 깊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렇게 내가 제일 사랑하고 내게 힘이 되어 준 민규형의 삶은 끝났다.

  마지막으로 본 민규형의 얼굴은 고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모든 걱정과 아픔을 잊고 고요한 적막 속에 자기를 내려놓고 푹 쉬는 듯 매우 평화로웠다.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보였다. 그것은 평안함 그 자체였다.     

  “막둥아. 어여 퍼뜩 올라가 너그 형 델꼬 온나. 오늘따라 내도 늦잠을 자고 와이란가 모르겠네. 막둥아 이러다가 너그들 다 지각하것다. 얼른 갔다온나.” 

  눈도 뜨지 못하는 나를 깨우며 엄마가 재촉했다.

  “행님아, 빨리 일나라. 엄마가 안 내려온다고 난리 났다.” 

  2층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날따라 형이 이상했다. 방 안에 온통 토를 해놓고, 엎드린 채 누워만 있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형은 일어나질 않았다.

  “행님아, 뭐하노. 빨리 일나라. 이러다 아부지한테 또 맞으면 우짤라고 그라노. 빨리 일나라.” 

  불안한 마음에 후다닥 집으로 뛰어 내려갔다.

  “엄마 아무리 깨워도 행님이 일어나질 않는다. 방에 토도 엄청 해놨던데, 이상타. 엄마가 가봐라. 내는 못 깨우겠다.”

  엄마는 들고 있던 주걱을 내팽개치며 뛰쳐 올라갔고 이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민규 아부지요. 민규 아부지요. 큰일 났어예. 빨리 올라와 보이소. ”

  아버지도 들고 있던 숟가락을 던지며 신발도 신지 않고 2층으로 뛰어 올라가셨다.

  “인마야, 눈떠라. 이게와 이라노. 눈 떠라. 뭐 하노 빨리 119 전화해라. ”

  아버지는 울면서 고함을 쳤고 나는 우리 아버지가 저런 적이 없는데, 왜 저러나 궁금했다.

  형을 업고 내려오신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는 형에게 억지로 동치미 국물을 떠먹였고 엄마는 옆에서 울고만 계셨다. 형들도 덩달아 울면서 도로로 나가 지나가는 차에 대고 도와달라고 고함쳤다.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구급차가 와서 민규형과 엄마, 아버지를 태우고 바로 떠났다. 

  저녁이 돼서야 큰형이 집으로 왔고 민규형이 죽었다고 했다. 둘째 형, 셋째 형은 울고불고 난리다. 형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다. 펑펑 울고 있는 나를 큰형이 안고 동네 슈퍼로 가서 사탕을 사주며 괜찮다고 달랬다. 내가 왜 우는지, 무서운 큰형이 왜 나한테 사탕을 사주면서 달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사탕이 너무 달고 맛있었다.     

  며칠 후 집 앞에서 엄마랑 아버지가 2층 아저씨를 때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맞고만 있었고 맨날 아저씨가 고맙다고 칭찬하시던 엄마가 오늘은 너무 이상했다. 나라도 가서 말리고 싶을 만큼 아저씨가 불쌍했다.

  “이노무 새끼. 난쟁이 주제에 감히 우리 아들한테 접근해서 뭔 짓을 한 거고. 순진한 아 꼬아서 니 목숨 연장할라고 했재. 니 오늘 내 손에 죽는다.” 

  계속 때리며 욕하시는 부모님께 아저씨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무릎 꿇고 싹싹 빌었다.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하필 그날 저 때린 손님이 오는 바람에 너무 놀라서 도망쳤다가 다른 곳에서 잤어요. 그래서 집에 못 들어왔는데...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수군거렸다.

  “내, 저럴 줄 알았어. 저런 놈은 옆에 두면 안 돼. 재수 없어.”

  “민규만 불쌍해서 어쩌노.”

  그러던 중 경찰이 와서 흥분한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흠씬 두들겨 맞아서 피를 흘리던 아저씨도 천천히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아주 작은 가방 한 개만 들고 쫓기듯 내려왔다.

  아저씨는 집 앞에 내놓은 민규형 책가방을 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이 말만은 기억이 난다.

  “민규야, 왜 벌써 갔냐. 나랑 조금 더 놀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도 너는 여태 만났던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어. 그래서 더욱더 아쉽구나.”

  그러다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더니 사마귀의 서늘한 눈빛으로 입가에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나지막이 읊조린다. “막둥아 기다려. 다음은 니 차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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