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다닥 시간을 대하는 자세

by 김이름

마냥 행복한 금요일 저녁, 퇴근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김쿼카는 여전한 잠옷 차림으로, 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업무 정리를 하고 있다. 퇴근까지 앞으로 15분. 칼퇴를 위한 동물의 손과 눈은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눈치 없이 띵 하고 울린 메신저 알림 창. 동시에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쿼카는 싸해지는 마음을 애써 붙잡고 메신저를 클릭했다.


오소리(팀장) :

“쿼카님, 이거 급한 건이라 지금 예외 처리하고 회신까지 보내주세요~~“


메시지에는 방금 도착한 메일의 캡쳐본도 함께 첨부돼 있었다. 쿼카의 입꼬리는 어느새 축 처지고 말았다.


‘아니 왜 하필!!! 지금 온 거야.. 담당자 퇴근 시간인 거 뻔히 알면서 지금 보낸다고?!’


마음속으로는 씩씩거렸지만, 직장 생활을 하는 사회 동물에게 ‘거절’이란 선택지는 없었다. 쿼카는 아무렇지 않은 척 ‘넵!‘하고 대답한 뒤 급하게 예외 건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퇴근하기 위해, 쿼카는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막 도착한 어른 동화 원고를 빠르게 보기 시작했다. 시계 초침이 얼마나 움직였을까, 다행히 큰 이슈는 없어 금방 서비스 세팅을 마쳤고 거래처에 안내 회신도 보냈다.


기지개를 쭉 펴고 서둘러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때, 또 거래처에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혹시 뭔가 잘못됐나?‘ 놀라서 급히 열어본 메일에는 감사인사가 담겨 있었다.


통상적인 인사말을 스쳐보다, 문득 마지막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환절기 건강 잘 챙기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별것 아닌 인사말 한 줄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바쁘게 살아가던 쿼카는 그제야 가을이 왔다는 걸 실감했다. 어렴풋이 선선해진 날씨는 느끼고 있었지만, 가을이 왔다는 것을 체감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 여름도 다 갔네. 벌써 가을이라니.

시간이 너무 빨라.. 나 올해 한 것도 없는데.‘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며, 쿼카는 괜히 모니터 옆에 있던 달력을 뒤적거리며 남은 날들을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달력을 찬찬히 따라가던 손끝이 얼마 안 가 멈추고 올해가 100일도 안 남았다는 사실에 눈이 동그래졌다.


언젠가 어린 시절, 동물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쿼카야, 어른이 되면 시간이 흐른지도 모르게 다 지나가 있다?

흐르는 물 같아서 모아놓고 보면 많은데, 막상 보려고 하면 사라져 있어. 그래서 더더욱, 순간순간을 아끼며 살아야 해.‘


그땐 이해되지 않았던 어른의 말.

단지 어른의 시간이 아이보다 짧은 건가,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이제 그 말을 절실히 이해하게 된 어른이지만, 순간을 아끼며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일에 치여 하루를 보내고, 퇴근 후엔 스스로에게 보상하느라 이것저것 미루다 보면, 어느새 다음 날 아침이 돼 있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 이미 지나간 건 어쩔 수 없지.

지나간 시간은 흘려보내고 아직 100일 정도 남은 이 시간이라도 잘 보내자!


하루하루 아쉬움 없게 열심히 보내고 그 순간을 즐기다 보면 올해가 끝나도 좋은 기억이 많이 남을 거야.‘


긍정 회로를 돌리며 마음을 다잡은 쿼카는 모니터 하단의 시계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에 놀라, 허둥지둥 업무 정리를 끝내고 퇴근했다.


소소한 에필로그)

그날 저녁, 쿼카는 책장 한구석에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다이어리를 꺼냈다.

펼쳐보니 아직 하얀 여백이 많이 남아 있었다.

쿼카는 100일간의 짧은 계획을 하나씩 적어가며, 남은 시간을 조금 더 아껴 써보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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