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점은 0점이다

by 이삼오

"쌤, 여기 이 학생 점수 좀 수정해 주세요."



"왜 그러시죠 원장님? 맞는 점수인데..."



"40점이 맞는 점수일 테지만, 이 엄마가 이 점수를 보면 난리 날 겁니다."



"그럼 몇 점을 줘야 하나요?"



"흠... 70점 밑으론 안 된다 생각하시면 돼요."





학원들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가 있었던 학원들은 모두 최하 기준 점수가 있었다.



문법이나 독해 시험은 명확하게 점수가 나오지만 (이마저도 점수가 너무 낮으면 수정이 된다) 스피킹 시험은 주관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반영이 되기 때문에 점수도 유연하게 줄 수 있다.



진짜 제대로 된 스피킹 시험은 학생이 딱히 준비할 게 없고 있는 실력을 그대로 하여 인터뷰처럼 진행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보통 어떤 주제나 수업 때 다뤘던 내용 위주로 전개된다.



주로 열 문제 내외다.



이 중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혹은 안 하거나) 너무 불성실하게 시험에 임하는 학생들도 있다.



아무 말도 안 한 친구에게도 70점은 줘야 한다.





"쌤, 제가 이번에 00 담임 맡았잖아요. 근데 수업 때 묻는 말에도 답을 아예 안 하고... 진짜 인사도 안 하고 아무 반응이 없는데... 쌤 수업 때는 좀 어때요?"



"제 수업 때도... 아무 대답도 없고 반응도 없어요. 그런데 점수는 못해도 70점을 줘야 하니..."



(며칠 뒤)



"하아... 제가 00 어머니랑 상담을 했는데, 어머님께서도 잘 아시더라고요. 우리 애가 한마디도 뻥긋 안 했을 텐데 스피킹 시험이 70점인 게 확실하냐면서. 본인 한텐 솔직하셔도 된다고 막 그러시는 거예요."



"진짜 난감하네요. 점수를 높게 줘도, 낮게 줘도 이래저래 말이 나오네요."





돈을 내면서 보내는 사교육이니, 당연하게도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이니 이해는 된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을 어느 정도 부인을 해서라도 성적표에 찍히는 숫자에 집착을 하는 게 쓴웃음을 짓게 한다.



학원마다 조금 다르지만 어느 곳은 숫자로 기입하지 않는 곳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학부모는 정확한 숫자를 원한다.



정확한 능력치가 아니더라도 높은 점수는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객관적으로 (힘들겠지만) 봤을 때, 아무리 봐도 우리 아이 실력은 별론데 점수가 항상 터무니없이 높게 나온다면, 진짜 실력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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