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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너부리 May 09. 2023

아빠는 어디에 계신 걸까?

<할아버지는 무덤이 없어>

라마에서 인물들이 부모의 무덤이나 유골함 앞에서 삶의 고통을 내뱉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때로는 치유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무덤도 유골함도 없다면, 골분을 뿌린 강이나 산을 찾아 부모를 그린다.


한국 사람들에게 부모는 늘 같은 곳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붙박인 장소와 같은 존재인 걸까? 그렇다면, 나에게는 그런 장소가 없다. 아빠에 관해서는 말이다.      

 

갑자기 풀린 날씨 때문에 나른해짐을 핑계 삼아, 엄마가 보내주신 나물과 장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아이들과 저녁을 간단히 해치웠다. 곧 36개월이 되는 둘째에게 가족에 대한 책을 읽어준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읽는 책 속 가족들은 '아기 상어' 노래의 상어가족 같다. 씩씩한 아빠, 사랑 많은 엄마, 다정한 할머니, 자상한 할아버지. 귀여운 아기.


 옆에서 학습지를 풀고 있던 첫째가 끼어든다. 서울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빠의 엄마, 아빠고, 시골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이고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갔다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무덤에 담겼단다.


'담긴다'. 참, 죽음답지 않은 말이다. 죽음이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을까? 보통 죽음은 무엇인가를 깨뜨린다. 관계, 남겨진 이들의 마음, 나를 지켜줄 거라는 신뢰감. 

  

 "엄마, 할아버지 무덤은 어딨어?"


우리 아이들은 다행히 아직 가족의 죽음을 겪지는 않았다. 가까운 이의 무덤이나 유골함도 실제로는 본 적이 없다. 경주 여행에서 봤던 왕릉이나 역사책에서 사진으로 본 위인들의 무덤이 전부이다.


  "없어."


  "엥?, 그럼, 할아버지는 어딨어?"


  " 그니까. 어딨지? 엄마도 모르는데? "

   


 

아빠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딱 30년, 아빠는 무덤도 유골함도 없다. 유골을 뿌린 장소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기일이 되면, 여전히 제사를 모시지만, 30년 동안 아빠를 어디다가 뿌렸는지 딱히 궁금해하지 않고 살아왔다.


첫째에게 무덤 말고도, 유골함을 추모공원에 모시기도 하고, 예전에는 골분을 강이나 산에 뿌리기도 했다고 짧게 설명했다. 시골 할머니와 집안의 어른들이 어느 물가에 할아버지의 재를 뿌리고 왔다고. 엄마는 그때 너만 한 나이였기 때문에 설명을 듣지 못해서 정확한 장소를 모른다고.


딸 아이는,

"아~."  하고  금세 수긍한다.  


아빠의 뿌려진 위치보다 그동안 궁금해하지도, 딱히 설명하지도 않은 우리의 태도가 더 의문이다.  몇 번인가 엄마에게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명확한 대답을 들은 기억이 없다.


 90년대 초, 시골. 명절이면 여자들은 집에서 음식을 준비했고, 사촌 오빠들은 마을 어른들 댁을 돌며 세배를 했다. 어른들은 딸만 있어 제사도 물려주지 못할 우리에게 아빠의 무덤은 사치이자 부담이라 판단하신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해마다 고모들을 불러 남편의 제를 지낸다. 결혼한 딸만 있다는 핑계로 그만둘만도 한데도  명절이면 혼자서 차례상을 뚝딱 차리신다. 음식 위치, 지방 쓰는 법에 관한 책까지 사두시고는 혼자 장을 보고, 제기를 닦고, 음식을 하신다.


"불쌍한 사람. "

엄마는 주로 아빠를 이리 지칭한다. 아빠는 나에게 그리운 대상이라면 엄마에게는 안쓰러움이 더 큰 사람이다. 그럼에도 제사는  본인이 살아 있을 때까지만 이란다.




결혼하기 전까지 설거지조차 한 기억이 거의 없다. 마는 이렇게 살림에 솜씨가 없을지 몰랐다며, 지금은 후회하고 계시지만. 라도 가르쳐 달라면 결혼하면 다 해야 한다며 먼저 시작 할 필요는 없다 말씀하셨다. 본인은 아궁이 있는 집에서 아홉 살 갓 넘어서부터 집안일을 시작하셨으면서. 


아빠의 작스러운 죽음 뒤로 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고된 생활 속에서도 엄마는 세 식구의 살림을 대부분 혼자 감당하셨다.


힘들다는 푸념도 도와달라는 부탁도 없다. 모든 을 다 감당하면서도 딸에게 오는 작은 어려움도 여전히 막아주신다. 


아버지의 무덤이 없는 것은 이제는 연락도 어려운 친척들의 뜻도 컸겠지만, 한 번도 먼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엄마의 뜻이다. 일찍 여읜 남편을 아파하는 마음보다 남아 있는 딸들이 가질 부담이 엄마에게는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의 말로 '뭐든 저지르기부터 하는 .'인 나를 멈추게 하는 것도 결국 엄마이다. 무덤을 만들지 않은 이유도 아빠의 위치도 나는 물을 수 없겠다.


아이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할아버지는 무덤에 담기지는 못했지만, 엄마도 할머니도 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속에 담으려고 애쓰고 있어.

할머니는 세상 그 누구보다 크고, 늘 떠나고 싶은 엄마를 붙들어 놓는 분이야.
할머니에게도 엄마가 그런 존재일 거야. 그래서 할아버지의 재가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시골 할아버지가 있었고, 엄마한테는 재밌는 아빠였다는 것만 기억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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