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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Feb 08. 2022

우리집 가훈에 담긴 뜻

웃으면서 살자!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끄고있는 아빠의 모습. (실제로 저런 콧수염은 없다)



케이크 앞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우리들을 바라보면 아빠가 행복하게 웃는다.

“아빠 생일 축하해요.” 하자,

아빠는 촛불을 후~ 불고 또 환하게 웃는다.


우리 집에서 가장 잘 웃는 사람은 아빠다.

세상의 크고 작은 뉴스에도 웃고, 드라마를 보면서도 웃고,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을 때도 웃고, 저녁에 반주를 하면서도 웃고, 딸들과 대화하면서 웃고, 손녀들의 재롱에도 웃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빠를 보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난다.


중학생 즈음인가.

“우리 집 가훈이 뭐야?”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문서를 채우기 위해 엄마에게 묻자, 엄마는 아빠를 쳐다본다.

엄마의 눈빛을 받은 아빠는 잠시 고민하더니,

“웃으며 살자.”

하고 대답했다.


내심 멋진 말을 기대했던 나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가훈을 듣고는 아쉬워했지만, 별다른 좋은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에 아빠가 불러준 가훈을 묵묵히 받아 적었다.

낙엽이 굴러만 가도 웃음이 터지던 중학생 시절의 나는 ‘웃으면서 사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는 어른이 될 줄은 그땐 몰랐지.


몇 년 전에 회사 업무로 여러 업계 관계자가 모인 곳에서 ‘웃음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웃음강의가 도대체 그날의 미팅과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회사 사람들이 모였으니 아이스 브레이킹이라도 하라는 의미로 주최측에서 준비해준 세션이었던 것 같다.)

건장한 체격의 강사님께서는 문을 박차고 들어오자마자 “여러분 따라 해 보세요. 하, 하, 호, 호. 손뼉도 같이 치면서 웃으세요. 하, 하, 호, 호.” 하고 외쳤다.


나를 포함한 참석자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은 주최측이 준비해준 것이라 서로의 눈치를 보며 손뼉 치는 흉내를 내고 있었는데, 강사님은 우리들의 태도가 영 맘에 들지 않았는지 힘찬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여러분,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닙니다. 웃어야 행복해지는 거예요! 하, 하, 호, 호. 웃으세요. 하, 하, 호, 호.”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행복해진다.’

무표정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웃음을 유도하는 절박함.

하지만 위트를 잃지 않는 그 말에 나는 진짜로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에 행복한 사람이 진짜 없어서였을까. 강사님의 현실을 꼬집는 블랙 유머에 다들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도 웃음을 짓기 시작했고, 그날 회의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는 것만큼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지금도 가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행복해진다.’는 말을 떠올리곤 하는데,

아빠가 가훈으로 말했던 ‘웃으며 살자.’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빠는 당시에 어떤 마음으로 가훈을 ‘웃으며 살자.’라고 했을까.

어른의 팍팍한 삶이 웃음을 앗아간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진정한 웃음이 사라져 간다는 것을,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행복해진다’는 것을 아빠는 먼저 경험했던 것이 아닐까.

아빠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 가족들은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가훈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빠의 생일인 오늘.

오늘만큼은 아빠를 따라서 웃어봐야겠다. 하, 하, 호,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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