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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을 부릴 줄도 아는 요즘 봄비

by 밤과 꿈

봄비는 감질나게 내린다. 그 모습이 마치 밀당 중인 연인을 닮았다. 가을이나 겨울에 내리는 비처럼 스산하지 않고 여름의 장대비나 소나기처럼 사납지도 않다. 추적추적 내리기로는 여름철 장맛비와 흡사하지만 봄비는 장맛비와는 달리 높은 습도로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포근한 촉감으로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감싸기도 하고 들뜨게도 한다. 봄비에 촉촉하게 젖고 있는 풀이나 나무를 보면 그렇게 생동감이 넘칠 수가 없다. 비에 만물이 소생한다는 말이 딱이다.

봄비를 밀당 중인 연인으로 묘사한 까닭이다. 사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이전의 밀당기(?)야말로 연애의 정점이다. 고뇌와 조바심, 그리움으로 점철된 그 시간이야말로 미숙하지만 순수했던 첫사랑의 추억을 불멸의 장면으로 마음에 각인케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뇌로 채워진 그 시간들이 결코 힘에 겹지 만은 않다. 그것은 그 번민의 시간들이 어지간한 소설을 뛰어넘는 짜릿함을 제공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또한 남성의 입장에서 느낀 것으로 여자는 자신의 속내를 감춰 남자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이 남자로부터 떠나지 않았다는 힌트를 곧잘 남기곤 한다. 이 힌트를 붙들고 남자는 힘들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밀당을 이어가는 것이다. 타고난 여자의 재능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을 따라 축적된 여성의 자기 방어기제가 DNA에 정보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요즘 내리는 봄비는 그저 감질난 것만 같지는 않다. 여름의 장대비 못지않게 제법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생경한 봄비의 모습이다. 이 또한 온난화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여자로 치면 적절한 삐침도 남자에게는 피곤한 매력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재난이 아닌 다음에야 봄비가 부리는 성질을 감당 못할 일도 아니다.

한 가지, 밤부터 오래 내리는 봄비를 두고 연애 감정을 연상하는 나도 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아내가 보면 내가 피곤할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내 글에 별 관심이 없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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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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