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사 갈 집은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는데아버지를 제외한 온가족이 각자 아프다고 경쟁적으로 드러눕다시피 했다.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시어머니가 옆에서 이삿짐은 직접 못 싸줘도 눈으로라도 아이들을 지켜보기만 해도 심적으로 위안이 될 터인데 어디를 가신다고 하시는지 기가 막혔다. 지금 인생을 체험 놀이나 장난으로 아시는 건가?
난 이 와중에 라스베이거스로 요양하러 간다는 시어머니의 말에 대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아이들이 있어서 몸져눕지는 못 했지만 마음이 칼에 난도질을 당한 것처럼 쓰라린 통증으로 아파왔다. 내가 아는 '가족'의 의미는 힘들 때 옆에서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것인데 기가 막히게 힘들 때마다 도망가서 눈에 보이지 않고 상황이 정리되고 나아지면 다시 나타나는 시어머니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증오와 분노가 일었다. 남편의 친모만 아니었다면 우리 둘은 육탄전이라도 벌여 감옥에 가 있지 않았을까... 살의를 느낄 정도의 무책임한 행동에 난 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아 진짜... 지금 미친 거 아니에요? 지금 살 집도 못 구했는데 어디를 가신다고요? 라스베이거스요? 지금 장난하세요? 농담하냐고요? 어머니는 인생이 장난이냐고요?"
"쟤, 쟤 말버릇 좀 봐라.. 이 고얀 것 같으니! 아니...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흑흑흑... 나도 가기 싫다. 비행기 티켓을 보내왔는데 어쩌냐...?"
화내다가 울다... 변검 배우 뺨치는시어머니에게 익숙하다.
"디스크로 1시간도 제대로 못 앉아있는 분이 무슨 비행기를 14시간이나 타고 가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른이 돼가지고,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냐고요? "
난 악에 받쳐목이 부서져라 언성을 높였고 남편은 갑자기 등 뒤로 다가와 내가 못 움직이게끔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당신! 나 좀 봐! 따라와!!!"
"싫어! 당신 어머니나 데리고 가! 난 맞는 말만 하는데 왜 날 막아! 어머니를 데리고 나가라고! 정말 거지 같은, "
내가 시어머니에게 강하게 항의하자 남편이 내 손을 잡고 끌고 문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작은 상가 건물 뒤쪽으로 날 끌고 갔는데 그곳은 아주 외진 곳이었다, 평상시 그 길로 밤에 아예 안 다닐 정도로 으쓱하고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무서운 길이 아무렇지 않았다. 하나도 안 무서웠다. 집이 불지옥인데 뭐 그까짓 더럽고 좁고 어두운 골목길이 뭐가 무서울까. 난 억울하고 분했다. 시아버지가 아이들을 돌봐 준다고 해서 선뜻 합가 제안을 기쁜 마음으로 승낙한 바보 같은 나 자신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고 현실감이 비정상적으로 떨어지는 시어머니나 옆에서 옛날 며느리 이야기만 읊어대는 시아버지, 효자 남편...
"아 OO , 가서 담배나 사와."
"담배 끊은 지가 언젠데 담배를 피워? 참아!"
"지금 참게 생겼어? 당신 어머니 정신병원 독방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지금 무슨 라스베이거스를 간다는 거야? 쫓. 겨. 나. 는. 마. 당. 에..."
남편은 알겠다며 편의점 쪽으로 뛰어갔다.
담배를 사 온 남편은 나에게 담배 한 가치를 건넸고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를 한 모금 피니 연기가 몸속으로 들어가 폐부를 찌르는 것 같았다. 속이 쓰려왔다.
"컥컥.. 아, 이것도 내 맘대로 안되네... 하..."
"나도 엄마가 이해 안 되네. 애도 아니고... 암튼 진정해. 내가 아버지랑 얘기 좀 해 볼게."
"아버지랑 얘기하면 뭐가 바꿔? 바뀌냐고?"
그날 결혼 후 두 번째로 소리 없이 울었다.
신혼여행 가서 밤 바닷가를 바라보며 이렇게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돼서 감사하다고 감동해서 운 게 첫번째다.
왜 내 인생은 뭔가 일이 잘 되려고 하면,산 정상이코 앞인데 ,중턱에서 늘이렇게무너져야 하나? 집에서 아이들을 잘 돌봐주고 조금만 기다려 주면힘을 내서 어찌어찌 헤쳐나가겠는데... 무엇보다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나야 당장 어디 살든 관계가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한겨울에 먼 거리를 걸어 다녀야 할지도 모르니 그게제일 무섭고 두려웠다. 시어머니는 걸핏하면 쓰러지니 시아버지가 시어머니 근거리에서 지키고 있어야 하고 남편은 매장 일과 동시에 위급시에는 회사 관련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난 12시간 매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부모를 선택해 태어난 게 아닌 아이들한테 미안했다. 보금자리가 흔들거리니 엄마로서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이러려고 아이를 둘이나 낳은 게 아닌데...
그날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또 술을 마시고 취기에 기대어 잠을 청했겠지...
다음 날,
어제 일로 몸이 피곤했지만 그보다도 머리가 아팠다.
다. 머리 한쪽이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통증이 감지돼 약을 먹어야 될 것 같아서 다른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국으로 가서 두통약을 사서 한 알 먹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이야? 지긋지긋하다... 하, '
아무래도 차에서 조금 쉬었다 다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주차해 놓은 차에 들어가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웠다. 그런데 그때 바지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카톡!'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