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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Sep 03. 2024

투명한 날들


아침이 오기 전, 빛의 잔여물이 방 안을 덮는다

손을 들어 그 흐름을 막으려 하지만,

손이 없다. 흔적 없이 사라진 윤곽,

남은 것은 찰나의 감각뿐


거울 앞에 서본다

거울은 비추지 않는다,

텅 빈 공간을

차가운 유리에 내린 결

먼 곳의 기억처럼 희미하다


공중에서 부유하는 중얼거림

공기 속에서 길을 잃은 소리

세상은 감지하지 못하고

점점 더 투명해져 간다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흐릿한 존재  

말을 건네보아도  

아무도 느끼지 못해  

여기에 없는 것 같다  


발걸음은 데리고 간다  

뭍의 결로를 따라  

솔바람이 허공의 몸을 휘감고  

머리칼은 바람 속에서 길을 잃는다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지금, 투명해졌음을 깨닫는다  

사라지기를 원했던 마음  

그 바람이 현실로  

바람결에 휘말려 떠돌다  


강변에 앉아  

물결에 스치는 잔영을 본다  

이제 여기에 없다  

물머리에서 흩어져 간다  


점점 더 얇아지고 흐릿한 그림자  

빛의 결마저 떨쳐내고  

사라지는 법을 배운다  


이제, 어디에도 없다  

세상은 지우고  

완벽히 흩어져 간다 그 공백 속으로  

빛마저 스쳐가던 날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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