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하시겠습니까?”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던 스마트폰 화면에는 그 짧은 문장이 깜빡이고 있었다. 좁은 방 안의 침대 위에 쪼그려 앉은 채였다. 수많은 파일 중 하나, 그저 ‘삭제 버튼’이면 손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손가락으로 버튼을 클릭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쌓여온 파일들, 사진, 문서, 메모들. 그 안에 담긴 시간이 흘러가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한때 그 파일들은 내 삶의 중요한 일부였고, 그 순간에는 절대 지워지지 않을 기억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한동안 열어본 적도 없는 파일에 불과하다. 그저 한 공간을 두둑이 차지한 채로 낡고 잊힌 것들이 되어 있었다.
삭제하는 건 언제나 쉽다고 생각했다. 쓸모없는 것, 의미 없는 것, 이제 필요하지 않은 것들. 그러나 파일이 쓸모를 잃어버리는 순간, 그 안에 담긴 감정이나 기억마저도 가치가 없어진 걸까. 이 파일을 삭제하면, 그때의 순간도 완전히 사라지는 걸까.
여전히 클릭되지 않고 네 / 아니오 버튼에 멈추어 있었다. 지워지는 건 단순한 파일일 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일을 그만두며 느꼈던 안도감, 친구들과의 웃음이 넘쳤던 사진들, 그리고 연락이 끊긴 사람들과의 메시지. 모든 순간이 파일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정말 전부 지울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어떤 기억은 무겁게 남고, 또 어떤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러나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져도 괜찮은 걸까. 과거의 내가 남긴 흔적들이 현재의 나에게 더는 의미가 없을지라도, 그 순간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텐데. 그 모든 기억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나다. 그 점에서, 삭제는 마치 과거의 일부를 인정하지 않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삭제가 너무 손쉽게 이뤄지는 요즘이 새삼 낯설고 약간은 잔인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쌓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워진다. 더 이상 열어보지 않을 추억들, 닿을 수 없는 과거들이 현재를 가로막을 때가 있다. 언젠가 다시 꺼내볼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는 건지도 모른다. 지우지 않으면 그 안에 묶여 버릴 수도 있으니까.
"삭제하시겠습니까?"
마치 내 삶 전반에 걸쳐서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 같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삶의 어느 시점에서든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기억은 품고 갈 수 있지만, 어떤 기억은 놓아주어야 한다. 버린다고 해서 완전히 잊는 것은 아니겠지. 다만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울 여유를 만들 뿐이다. 결국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순간, 파일은 빠르게 사라졌고, 내 화면은 조금 더 깨끗해졌다. 삭제된 것은 과거가 아니라, 과거를 담아두었던 공간이었다. 과거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을 테니까. 살면서 내가 삭제할 수 없는 것들, 삭제하고 싶은 것들, 그리고 삭제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선택은 나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러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