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서커스
- 서커스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예고도 없고 시내의 벽기둥이나 광고판에 전단이 붙지도 않고 지역 신문에 단신이나 광고가 실리지도 않는다. 어제까지는 그 자리에 없었는데 그냥 나타난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까. 서커스는 물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대개 예고가 없다. 인간이 유독 서프라이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놀라게 하는 것 이외에 무언가를 준비한다거나 갑자기 나타나준다거나 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엄마가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나를 데리고 경기도의 한 산으로 데려갔을 때, 나는 그것을 갑작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정말이지 길이라곤 애초에 없었다고 생각되는 곳을 길이라 칭하며 성큼성큼 올라가는 엄마를 약간 원망하기도 했다. 나를 지탱하던 나무를 몇 개나 부셔 뜨리고 가시나무에 긁힌 상처에서 피가 조금 나오기 시작했을 때쯤 외할머니 산소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봐 왔던 산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동안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듯 이상하게 생긴 풀들이 외할머니 산소 주변을 맴돌았다. 비록 어렸지만 나는 그제야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명절이면 난 가끔 엄마와 둘이 외할머니 산소로 갔다. 아빠에게 소리친 후 엄마 손을 잡고 지하철로 향했다.
"아빠만 엄마 있냐! 엄마도 엄마 보러 갈 거야!"
엄마는 갑자기 20년 만에 외할머니 꿈을 꿨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집에서 뒹굴거리는 날 데리고 그 산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