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 운 Mar 12. 2024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책 <말테의 수기> - 라이너 마리아 릴


-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죽을 때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죽어가는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릴까? 아니면 이제껏 살아오며 놓친 순간들이나 후회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고통이 더 심해질까? 이왕이면 나는 죽어가는 순간에 책을 떠올리기로 했다. 떨어지는 화분에 맞아 머리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순간, 달려오는 차에 부딪혀 공중으로 뜬 순간, 병원 침대에서 자식이나 부모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은 채 눈이 감기는 그 순간. 천둥의 떨어짐과 같은 그 순간에 좋아하는 책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불행히 사고를 당해도 그동안에 죗값이다 하며 모든 감정을 핏물에 씻어 보내고, 그 책을 처음 읽던 날을 떠올린다. 누군가 내 몸을 흔들면, 책을 다 읽고 무언가 바뀐듯한 내 걸음걸이가 떠오르고, 누군가 내 손을 꼭 잡아주면, 잊고 살다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그 책을 다시 발견한 날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눈이 거의 다 감겼을 때야 그 책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미처 핏물흘러가지 못한 일말의 미련이 책시작인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비록 내 몸은 마지막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지만, 내가 떠올린 책은 이제 막 첫 페이지가 시작되는 중이다.







이전 05화 그 일은 잘못 걸려온 전화로 시작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