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해인 Oct 13. 2024

10. 도둑질을 배워서 할 수 있는 직업은?

경찰과 도둑

 #홍준영 - 청소 중

 급히 청소를 끝마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현관 차임벨이 울린다.


 홍준영은 신발장에 서서 현관문에 대고 방문자의 신원을 요구한다.


 ‘대문이 잠겨있었을 텐데?’


 “……누구세요?”


 “문 열어, 이놈아.”


 홍준영은 두 귀의 성능을 의심한다.

 툭하면 충치에 속 썩이는 이빨과 달리 귀만큼은 유독 건강했건만.


 “…….”


 “안에 있는 거 안다. 현관문부터 열고 당황하던가 해라, 못난 제자 놈아.”


 “…….”


 현관에 우뚝 선 홍준영은 당황을 넘어 의심하기 시작한다.


 요새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 AI가 기승을 떨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교도소에 있어야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왜 여기서 들린담?


 “내가 문 따고 들어가랴?”


 “……이거 디지털 도어락인데요.”


 홍준영이 나름 반격을 해본다.


 “내가 못할 거 같으냐?”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속닥속닥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공작원들의 접선 모습과 흡사하다.


 “저는 영감님한테 그런 기술 못 배웠는데요?”


 “제자한테 밑천까지 다 털어서 가르쳐주는 스승이 세상에 어디 있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자성어가 청출어람이야. 어디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으려고 해. 네가 내 자식도 아니고, 내 노후 챙겨줄 것도 아니잖어?”


 “서운합니다, 영감님. 저는 부모처럼 모셨는데.”


 “어느 자식이 지 부모를 이렇게 현관밖에 세워놔?”


 홍준영이 도어락 잠금을 해제하고 현관문을 연다.


 예상대로 이수광이다. 


 “조금이라도 늦게 열었으면 내가 직접 잠금장치 따버리고 네 놈 모가지도 같이 따버렸을 거다.”


 어딘지 모르게 맹한 구석이 있으면서도 한번 할 때는 제대로 할 줄 아는 스승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홍준영은 그럴 여유까지는 없었으면 한다며 냉큼 스승님을 집으로 모신다.    

 




 #진강석 - 선잠에서 깨어나는 중

 꿈과 현실의 경계에 발을 걸치고 있던 진강석이 피곤에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네.”


 “강석아, 나다.”


 그 말에 진강석은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내 저장된 이름을 확인한다.


 예전에 같은 교도소에서 일했던 선배 교도관이다.


 “아, 예, 형님.”


 진강석이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오랜만이네요.”


 “자고 있었구나?”


 “네, 야간근무였어요.”


 거실 탁자 위를 살피던 진강석이 눈앞에 보이는 컵을 집어 들고는 내용물을 냅다 입에 털어 넣는다.


 다량의 물과 소량의 와인이 섞인 것 같은 오묘한 액체가 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래? 거기나 여기나 밤에 고생하는 건 똑같네.”


 선배의 말에 진강석이 헛웃음을 흘린다.


 “그러게 말입니다. 몸 망가지는 것까지 똑같아요.”


 “몸 잘 챙겨가면서 일해.”


 선배가 돌연 목을 가다듬는다.


 “그건 그렇고 강석아, 네가 일 그만두기 전에 나한테 부탁했던 거 있잖아.”


 “……예.”


 상대방의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에 진강석이 덩달아 긴장한다.


 “그분한테 일 생기면 연락 달라고 했던 거, 기억하지?”


 “당연하죠.”


 “근데 일이 생겨도 무지막지한 일이 생겨버렸다.”


 “……큰 싸움이라도 났습니까?”


 진강석이 괜스레 침을 꼴깍 삼켰다.


 “이제 그분은 수감자가 아니야.”


 선배 교도관은 착잡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어이없다는 듯 속삭인다.


 “팔광 선생, 집 나갔다. 탈옥했어.”     





 #양태호 - 정보원과 통화 중

 “사장님, 정만식입니다.”


 “어! 우리 정보원 만식이! 오랜만이네. 내가 전에 보낸 영치금은 남았어? 신경 쓰지 말고 팍팍 써. 더 보내줄게.”


 양태호가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귀중한 정보를 물어다 주는 정보원은 항상 부족함 없이 대해야 한다.


 초코파이로 생색을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 바로 교도소다.


 양태호는 최근 5년간 교도소에 있는 정만식을 통해 업계 전반에 걸친 소식들을 전해 듣곤 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정보의 퀄리티가 떨어져 돈이 아까워진 참이었다.


 다달이 자동으로 구독비가 결제되는데 막상 이용하지 않는 OTT서비스 같은 느낌이랄까?


 양태호는 생각난 김에 오늘은 퇴근 후에 넷플릭스로 영화나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예, 매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여기서 살찌고 나가겠어요.”


 “감사는 무슨. 내가 더 고맙지.”


 이만하면 인사는 됐다는 듯 양태호가 용건을 묻는다.


 “근데 무슨 일이야? 정기 보고일은 다음 주 아니었나?”


 “특이사항입니다.”


 “말해.”


 양태호 사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팔광이 사라졌습니다.”     





 #이수광, 홍준영 - 재회 중

 “근데 영감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제자의 물음에 이수광은 코웃음을 친다.


 “내가 내 힘으로 번 내 돈으로 산 내 집에 내가 온다는데, 왜 네가 그런 걸 묻는 거냐? 웃기는 놈이네.”


 “엄밀히 따지면 영감님 돈은 아니죠. 저희 일에 저희 돈이 어디 있어요. 다 남의 돈이지. 안 그래요?”


 출소한 지 이제 막 12시간이 지난 전과자답게 홍준영이 바른 소리를 한다.

 교화가 제대로 됐다.


 “그래도 내가 내 힘으로 번 돈은 맞잖아! 그렇게 맞는 소리만 할 거면 나가라. 기껏 신세지게 해줬더니만.”


 이수광이 오랜만에 만난 제자의 바른말에 얻어맞는 기분으로 투덜댄다.


 “그렇긴 하죠.”


 제자 홍준영이 시인한다.


 “영감님이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열심히 훔치셨죠.”


 “이것저것 많이도 훔쳤지. 대신 나는 기부도 많이 해. 복권도 많이 사고. 담배는 많이 안 피우지만.” 


 “차라리 세금을 내세요.”


 제자가 타이르듯 말한다.


 “내년이면 일흔 되는 스승한테 너무 매몰찬 거 아니냐?”


 이수광은 2년 만에 만난 제자의 홀대가 마냥 서운하다. 그는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따뜻한 밥상을 내와도 모자랄 판에 이게 뭐야.”


 “감옥에 있어야 될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까 놀라서 그런 거죠. 아직 1년은 남지 않았어요?”


 홍준영이 수치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받아친다.


 “아, 그렇긴 한데, 갑자기 급한 용무가 생각나서 미리 한번 나와 봤어.”


 “세상 사람들은 그걸 탈옥이라고 부를 걸요?”


 홍준영은 언뜻 딱 잘라 말한다.


 “뭐,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별 수 없고.”   

  




 #강신영 - 쇼핑 중

 파출소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강신영 파출소장이 전자제품 판매점에 들어간다.


 “저어……, 무슨 일이실까요?”


 근무복 차림의 강신영을 보자 점원이 잔뜩 긴장한다.


 “아아, 그냥 손님입니다.”


 위에 점퍼라도 걸치고 올 걸 그랬나, 강신영이 속으로 생각한다.


 근처에서 사건이라도 발생했나 싶었던 점원은 이내 안심하며 묻는다.


 “혹시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따로 있으실까요?”


 “이어폰을 좀…….”


 미란다 원칙은 술술 욀 줄 알아도 최신 전자제품 모델명은 무지한 파출소장이 아버지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을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내뱉는다.


 “……요새 대학생들이 많이 쓰는 걸로.”


 강신영은 점원이 추천해준 무선이어폰 제품을 이리저리 살핀다.


 살핀다고 뭘 알겠냐마는 요리조리 열심히 만져본다.


 이윽고 제품 하단에 적혀있는 가격을 확인한다.


 가격을 본 강신영은 덩그러니 서서 계산을 시작한다.


 열흘 전에 입금된 월급을 수식의 가장 왼쪽에 두고 내일 빠져나갈 카드 값과 공과금을 뺀다.


 부모님께 드릴 용돈과 기름 값을, 보험비를 제한다.


 언제쯤 수입과 지출을 암산하는 과정 없이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양태호 - 흥분 중

 교도소에 심어놓은 정보원으로부터 실로 오랜만에 고급정보를 들은 양태호 사장은 잔뜩 흥분한 상태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돈을 코앞에 둔 순간에 일에 몰두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진강석 - 흥분 중

 선배 교도관의 연락을 받은 진강석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찬물샤워로 몸을 각성시킨 뒤, 급히 집을 나선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목적지로 향한다.





 #이수광, 홍준영 - 대화 중

 “야, 제자야. 이리 와서 앉아봐라.”


 이수광이 홍준영을 불러 세운다.


 “잠깐만요.”


 “하던 일 멈추고 일단 빨리 와봐. 너도 알다시피 내가 탈옥자 신세잖냐. 한시가 바쁘다고.”


 웬일로 이수광이 맞는 말을 한다.


 “언제는 따뜻한 차라도 내오라면서요…….”


 홍준영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스승을 나무란다.


 맞은편 식탁의자에 제자를 앉힌 이수광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아까 화장실에서 똥 누다가 생각났는데, 내가 너한테 일 하나 시키지 않았냐?”


 “다 늙어서 똥이 뭡니까, 똥이.”


 홍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질색한다.


 “그리고 일을 시킨 게 아니라, 시킬 거라고 했죠. 그 조건으로 제자로 받아준 거였잖아요.”


 “아, 그 조건은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그냥 해본 말이었어. 뭐 어쨌든 그 일이라는 거 말이다. 슬슬 해줘야겠다.”





 #강신영 - 또 쇼핑 중

 예상외로 비싼 가격에 재차 망설인 건 사실이지만 강신영은 기분 좋게 구매를 결정한다.


 그럼에도 쇼핑백에 담긴 이어폰을 들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내일은 딸아이의 생일이다.


 기뻐야 할 생일이 지옥이 되어버린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는 건, 아버지도 차마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무거워짐에 따라 강신영의 발걸음도 서서히 무거워진다.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엉망이다.


 결국 그는 파출소 근처 약국으로 향한다.


 파출소 근처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답게 경찰복을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는다.


 “어서 오세요.”


 “저, 몸이 좀 무거워서요.”


 “어제 또 술 드셨구나?”


 약사가 너무나도 친근하게 물어와 강신영은 순순히 대답한다.


 “……네.”


 경찰의 토로에 피식 웃으며 약사는 숙취해소제와 정체불명의 캡슐을 건넨다.


 “같이 드세요. 탁월한 강장 효과가 있는 제품이에요.”


 “탁월한 관장 효과요?? ……몸이 무겁긴 하지만, 그렇다고 관장까지 해야 할까요? 그렇게까지 가벼워지고 싶지는 않은데…….”


 약사의 말에 강신영이 두 귀를 의심한다.


 “……관장이 아니라 강장이요, 강장. 자양강장제 할 때, 그 강장. 관장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


 “아…….”


 관장이 아닌 강장 효과가 기분을 한층 낫게 해주길 바라며 강신영이 약을 꿀꺽 삼킨다.      





 #황중근 - 직장 상사와 통화 중

 “……여보세요.”


 잠에 취해있던 황중근 이사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어어, 중근아!”


 양태호 사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황중근은 번뜩 정신이 돌아온다.


 “예, 사장님.”


 “여태 자고 있었어? 벌써 한 시 반이야. 점심시간이라고. 너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몰라서 그래?”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황중근은 잠자코 시계를 들여다본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세 시간도 채 못 잤다는 사실이다.


 설마 예전처럼 점심을 대신 주문해 달라는 용건은 아니겠지, 그는 아니길 바라며 묻는다.


 “무슨 문제라도 벌어진 겁니까?”


 “사람 하나 찾아야겠다. 애들 좀 풀자.”    

 




 #이수광, 홍준영 - 진솔한 대화 중

 “저는 영감님한테 제자가 더 있었다는 게 놀라운데요?”


 홍준영은 말한다.


 이수광이 유감이라는 듯 어깨를 들썩거린다.


 “왜 정작 중요한 아들 말고 제자한테 꽂힌 거야?”


 “제가 영감님 아들이 돼 본 적은 없어도 제자는 해봤으니까 그렇죠.”


 홍준영이 화제를 돌린다.


 “아무튼 그러면 영감님이 가르쳤다는 마지막 제자는 주로 어디서 활동하는데요? 별명 같은 거 있어요?”


 “활동지역은……, 어디였더라? 그것까지는 기억이 안 나.”


 사실 제자의 이름과 나이, 얼굴 말고는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이수광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한다.


 “별칭은 있어.”


 “뭔데요?”


 “민중의 지팡이.”


 “희한한 별명이네요. 일처리를 뭐, 되게 정의롭게 하나?”


 홍준영이 비웃는다.


 제자 놈의 지레짐작에 이수광이 혀를 끌끌 찬다.


 “도둑놈 제자라고 전부 도둑놈이라는 법 있냐? 내가 그리 가르쳤어?”


 “도둑놈한테 도둑질 배워서 도둑질할 때 쓰지, 어디다 써먹어요?”


 “도둑놈 잡을 때도 써먹지. ……그놈, 경찰이야.”


 “에이, 영감님. 그놈한테 깜박 속으셨다! 전과자는 공무원 못해요. 전과자가 무슨 경찰이에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어요? 경찰이라고?”


 “누가 전과자라고 했냐? 이 놈이 오랜만에 만났더니만 아주 편견덩어리가 됐네.”


 “영감님이 교도소에서 직접 가르쳤다고 했잖아요.”


 “교도소에 있으면 전부 전과자냐?"


 이수광은 2호 제자의 편협한 시각을 꾸짖는다. 


 "그놈 교도관이었어. 전과자가 경찰은 못 돼도, 교도관은 경찰이 될 수 있지.”

이전 09화 9. 한 번 지나간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은 법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