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보고 있는 찬호가 백 선생을 쳐다보지도 않고 장난기 섞인 대답을 툭 던진다. 사실 찬호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수업 준비하라는 백 선생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뭔가를 하고 있었다. 물리 수업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고 이전 시간에 수업했던 영어책을 그대로 펼쳐 놓은 아이들도 많았다. 백 선생이 칠판에 학습목표와 단원명을 쓰고 수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아무도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한마디라도 대꾸해준 찬호가 신기했다.
찬호는 특별한 목적 없이 나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때로는 툭툭 던지는 실없는 말이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기도 하는데, 특별히 그럴 의도를 갖고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백 선생은 찬호의 이러한 무의식적 당돌함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만, 오늘은 왠지 찬호의 모습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자기도 모르게 눈썹이 이마를 밀어 올려 갈매기 주름을 만든다. 찬호의 발칙한 태도가 못마땅하다는 표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수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적절하게 만들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언짢은 기분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가다듬으려는 듯 백 선생은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며 엄지와 검지로 턱을 만지작거린다. 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강당 지붕을 보며 몇 차례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찬호의 한마디 말에 비록 기분은 상했지만 그렇다고 일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교사로서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고, 자칫 지저분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의연함과 동시에 유연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의식 한편에서는 그가 벼르고 있는 기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라는 쪽으로 생각이 흐르고 있었다. 제대로 수업을 하기는커녕 존재감 없는 교사로 허수아비처럼 교단에 서 있다는 것에 대한 환멸을 극복하려면, 처방과 조치는 빠를수록 좋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기다렸던 때가 지금 눈앞에 와 있지 않는가. 더 좋은 기회가 올 거라는 핑계를 대면서 언제까지 뭉개고만 있을 것인가. 더구나 이미 아이들에게 ‘머지않아 따끔한 맛을 보여 줄 거다’라고 예고까지 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백 선생은 마침내 결심했다는 결연한 표정과 함께 주먹손으로 이마를 한 번 툭 치더니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사냥할 태세를 취한다. 엊그제 준비한 새로운 사냥도구로 찬호를 잡도리함으로써 수업분위기를 바로 잡아 보려는 마음을 굳힌 것이다.
“공부가 싫다고? 나는 너를 공부하게 만들어야 하거든. 근데 우리 찬호가 공부하기 싫은 이유가 뭘까? 선생님이 네 자리로 갈 때까지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놔!”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각자도생하고 있던 아이들은 반투명 인간처럼 보이던 물리 선생님의 온전한 출현에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로 시선을 집중한다. 그렇다고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혹시 오늘이 선생님이 예고한 그 잡도리쇼를 펼칠 그날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가 분명 신호탄일 것이다. 더욱이 양손으로 교탁을 짚고 서 있는 선생님의 굳은 얼굴 표정이 아이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 주었다.
그러나 출입문 쪽 맨 앞에 앉아 있는 미선이는 이러한 상황을 감지하지 못한 채 큼지막한 사각형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다듬고 있다. 그러다가 뒤늦게 주위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듯 거울을 뒤집어 놓고 한 손으로 백 선생의 셔츠를 가리키며 말한다.
“선생님, 오늘은 긴팔 셔츠 입으셨네요!”
“그래 미선아, 선생님에게 관심을 보여줘서 고맙다. 근데 오늘도 미선이 책상에는 물리책이 안 보이네!”
백 선생은 미선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행여나 마음이 약해지거나 결심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터프한 액션을 취한 것이다. 미선이는 뻘쭘해서 입술을 쭈뼛 내밀었지만 다시 거울을 보기 시작한다.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의 행동개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 선생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교탁을 탁 내리치며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다짐과 결기를 보여주고 찬호에게 뚜벅뚜벅 걸어간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가벼운 탄성이 들리고 잠자고 있던 명식이도 스스로 깨어났다. 명식이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다가 백 선생에게 두 번씩이나 혼난 적이 있다. 그는 백 선생의 잡도리를 ‘테러’라면서 투덜거렸지만 수업이 시작되면 여전히 책상에 엎드린다. 그런데 오늘은 찬호가 테러를 당할 참이었다.
찬호에게 걸어가는 백 선생의 손에는 택배박스 하나가 들려 있다. 그 박스는 교실에 들어올 때부터 들고 왔지만 존재감 없는 그의 움직임을 아무도 보지 않았고 박스의 존재도 몰랐다. 택배박스는 그가 사용할 사냥도구, 즉 테러용 무기를 담아 두기 위한 것이다. 사실 아이들은 찬호가 선생님의 테러대상이 되었다는 것보다 택배박스 안에 들어 있는 무기에관심이 더 많았다. 오늘 새로운 무기가 공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수업 중 학생에 대한 백 선생의 테러는 자신의 무너진 존재감을 찾으려는 시도로 1학기 때 강아지풀 테러로 시작되었다. 잠자고 있는 명식이가 백 선생의 첫 번째 테러 희생자였다. 명식이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여 그의 교복 바지 밑으로 강아지풀을 거꾸로 집어넣고 다시 자리에 돌아가라고 한다. 그 사이에 강아지풀은 바지를 타고 허벅지까지 올라갔고, 놀란 명식이는 화장실로 뛰어가 구시렁거리며 강아지풀 빼내기 작업을 해야 했다. 명식이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내지르는 소리가 교실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이건 학생에 대한 교사의 테러다!”
그날 점심시간에 백 선생의 강아지풀 테러 사건이 전교생에게 알려졌고 백 선생은 ‘테러 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음 물리 시간에 백 선생이 명식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강아지풀 맛, 괜찮았어?”
“선생님, 우리 고등학생이에요. 그런 유치하고 싱거운 테러로 우리를 어떻게 해보실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싱거운 맛이었니? 그럼 조금 업그레이드 해야겠군. 유치하지 않고 싱겁지도 않는 고등학생용 테러를 준비할 테니 기다려 봐.”
그러나 백 선생이 돌아서자마자 명식이는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강아지풀 정도야 견딜 만 했고, 설사 핵폭탄 테러를 당한다 해도 그에게는 일단 잠이 우선이었다.
백 선생은 좀 더 센 거를 준비했다. 5월 어느 날 그의 택배박스 안에는 보리이삭이 들어 있었다. 강아지풀보다 훨씬 더 크고 더 까칠한 보리이삭이 바지 속을 타고 올라갈 때, 명식이는 괴성을 지르며 엉거주춤 몹시 불편한 걸음으로 화장실까지 가야 했다.
“어때, 이번 거는 맛이 좀 짭짤하더냐?”
보리이삭을 생전 처음 봤던 명식이와 아이들은 백 선생의 보리이삭 테러에 움찔한 모습이었다. 겉보기부터 강아지풀과 달랐다. 강아지풀이 박격포라면 보리이삭은 미사일급이었다. 뻣뻣한 보리이삭이 엉금엉금 허벅지까지 바지를 타고 올라가더니 까슬까슬한 까끄라기가 살갗을 찔러대어 따끔거렸고, 물티슈로 몇 번을 문질렀지만 기분만 더 더러워졌다며 명식이가 구저분한 체험담을 늘어놓는다. 백 선생의 이마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다.
“근데 선생님, 왜 우리 남학생들만 괴롭혀요? 여자애들은 수업시간에 거울 내놓고 화장을 해도 못 본 척 하잖아요. 쟤들 혼 좀 나야 되요!”
“여자가 예뻐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거야. 너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만 자고 있는 것과는 다른 거지.”
“그래도 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성 차별 아닌가요?!”
명식이의 항의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백 선생은 여름방학 동안 고심한 끝에 새로운 테러 방법을 찾아냈다. 특히 수업 중에 딴 짓하는 여학생에게 알맞은 벌칙이었는데, 기술가정 수행평가 과제로 십자수를 놓고 있는 지선이가 2학기 첫 번째 테러대상이 되었다.
“지선이 너는 선생님이 여러 번 경고 했는데도 계속 이러고 있으니 벌을 좀 받아야겠다. 물리 시간에 기술가정 과제를 하고 있는 것은 벌을 받아 마땅한 잘못이지?”
백 선생은 택배박스에서 잘 익은 석류 하나를 꺼냈다.
“자, 이것이 석류인데 지선이 네가 직접 석류알 다섯 개를 뜯어내어 한꺼번에 입어 넣고 깨물어 먹는다. 반드시 한꺼번에 먹어야 한다!”
“선생님, 이게 석류예요? 어머, 이쁘게 생겼네!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요, 석류가 여자에게 그렇게 좋데요!”
“그러니까 먹어 봐. 다섯 개를 한꺼번에!”
백 선생은 석류의 새콤한 맛이, 비록 크지는 않지만, 벌을 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석류에는 새콤한 맛과 함께 달콤한 맛도 있다는 것, 더욱이 석류가 여자에게 좋다는 말에 단호하게 벌을 주려던 그의 표정이 어색하게 누그러진다. 그를 더 난감하게 만든 것은 호들갑을 떨며 석류알을 씹었다 뱉었다하는 지선이를 보고 다른 여학생들이 지선이 책상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여학생들은 석류를 돌려가면서 몇 개씩 뜯어 먹느라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고 남학생들은 여기저기서 불퉁거리는 소리를 늘어놨다.
“이건 뭐 벌을 주는 게 아니고 상을 주는 거 아니에요?”
“재들한테도 뭔가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테러가 슬슬 파티로 변하고 있으니 그렇게 나쁜 건 아니지.”
석류테러에 실패하고 백 선생의 존재감은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선생님, 오늘은 석류 없어요?”
“저도 오늘은 딴 짓 할 거예요. 선생님의 석류테러를 받고 싶어요.”
교실에 들어갈 때 아이들의 우스갯소리 인사말이 아이러니하게 백 선생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듯 했지만, 꾹 다문 백 선생의 입을 본 아이들은 그를 다시 반투명 인간으로 취급했다. 수업이 끝나고 칠판 당번 성필이는 칠판에 게시한 물리 시간 테러경보도 해제해 버렸다. 뭔가 ‘따끔한 것’을 찾지 못하면 백 선생은 반투명에서 아예 투명으로 추락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학교에 투명인간 교사가 두 명이 있다는데 이러다가는 자신이 세 번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백 선생은 수업준비보다 뭔가 ‘따끔한 것’을 찾는 일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만 했다.
백 선생이 따끔한 것을 찾기까지는 다행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말에 시골길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지만 드디어 최고의 무기를 얻었다고 확신했다. 이번에야말로 존재감을 최상으로 끌어 올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택배박스를 손질하는 그의 입가에는 흐뭇하고 야릇한 미소까지 흘렀다. 지난주 어느 반에서 머지않아 새로운 벌칙을 보여줄 거라고 선언했을 때 시큰둥했던 아이들의 반응이 백 선생의 의지를 더욱 북돋았다. 그것은 거의 복수심에 가까웠다. 그렇게 기회를 엿보고 있는 백 선생의 경계망에 오늘 찬호가 걸려든 것이다.
택배박스를 찬호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백 선생이 찬호에게 묻는다.
“그래 찬호야, 공부하기 싫은 이유가 뭐지? 두 가지 이유를 말해 봐.”
찬호가 택배박스를 좌우로 살피면서 빙긋빙긋 웃는다.
“선생님, 이거 설마 명식이의 꿀잠을 앗아간 그 보리이삭은 아니죠?”
“공부하기 싫다고 당돌하게 말했으니 그 이유도 당당하게 말해 봐!”
“그니까 선생님, 꼭 가을이어서 공부를 해야 하는가요? 저는 봄하고 여름에 열심히 했으니 가을에는 좀 쉬어야 합니다.”
옆에 앉아 있는 민정이가 찬호 옆구리를 푹 찌르며 피식 웃는다.
“그게 첫 번째 이유냐? 그럼 두 번째 이유는?”
찬호가 다시 택배박스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사실 제가 좀 가을을 타거든요.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공부가 안돼요.”
다른 아이들은 물리 선생님의 새로운 테러공격을 확인하고자 찬호 책상 위에 올려놓은 택배박스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언박싱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은 찬호의 계속되는 너스레가 짜증스럽다는 표정이다.
“좋아, 첫 번째 이유는 너나 나나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선생으로서 공부를 시켜야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오롯이 다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니 이제 따끔한 맛을 보고 공부 좀 하자.”
백 선생의 두 손이 드디어 택배박스 뚜껑으로 올라간다. 백 선생은 찬호의 눈을 보면서 단단히 각오하라는 눈빛을 보낸 다음 뚜껑에 테이프로 붙여 놓은 종이를 떼어 낸다. 그런데 택배박스로부터 신무기의 등장을 기다리며 그 장면을 주시하고 있는 아이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눈치를 주고받는다. 강아지풀과 보리이삭, 석류테러를 할 때와 테러 과정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택배박스를 열고 테러무기를 꺼내야 하는데 선생님이 택배박스 뚜껑을 열지 않는 것이다. 대신에 종이를 떼어 낸 택배박스 뚜껑에는 주먹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다.
“자 이제 이 구멍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정말 따끔한 맛이 무엇인지 직접 느껴 봐라.”
선생님의 전략이 바뀌었다는 것을 직감한 아이들은 다시 탄성을 내며 웅성거렸다. 찬호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지만 그의 눈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공포감이 드러났다. 백 선생은 찬호에게 또 한 번 레이저 눈빛을 보낸다. 이어서 택배박스 구멍으로 눈길을 돌려 잔말 말고 손이나 넣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혹시 모르니까 손을 조심스럽게 집어넣고 함부로 휘젓지 마라라.”
교실에 웅성거림은 사라지고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조심해야 하고 손을 휘젓지 말라는 백 선생의 경고가 택배박스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심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백 선생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찬호는 결국 택배박스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핫!”
입을 실룩거리며 최대한 천천히 손을 집어넣고 있던 찬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손을 빼낸다.
“선생님, 이거 뭐예요?! 워매, 피까지 나잖아요!”
찬호의 가운데 손가락 끝에 정말 피가 살짝 보였다.
테러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섰거나 의자와 책상 위로 올라선 아이들은 놀라움과 궁금함이 뒤섞인 얼굴로 한참을 얼어붙은 자세로 서 있었다. 찬호는 바지를 벗으러 화장실까지 갈 필요는 없었지만 제대로 뜨거운 맛을 봤고, 아이들은 거인처럼 우뚝 선 백 선생의 존재감에 기가 죽어 조용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교실에 있는 누구도 택배박스 안에 들어 있는 그 ‘따끔한 것’의 정체가 뭔지는 몰랐다.
백 선생은 택배박스를 교탁위에 올려놓고 물리 수업을 시작했다. 잠을 자거나 딴 짓하는 아이들은 없었으나 물리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도 없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 미선이가 손을 들어 흔든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뭐예요? 알려 주시면 공부 열심히 해서 물리 100점 맞을 게요.”
“난 너희들이 물리 100점 맞는 것보다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너희들이 알아만 주면 된다.”
그날 급식소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물리 선생님이 택배박스에 살아 있는 고슴도치를 넣고 다니고 여차하면 고슴도치를 꺼내 가슴에 안겨 줄지도 모른다며, 물리 시간 테러경보를 최상으로 올려놓았다.
겨울방학을 맞이한 날 백 선생은 찬호를 교무실로 불렀다.
“내가 찬호 덕분에 오늘 방학하는 날까지 존재감을 잃지 않고 잘 버텨왔다. 그래서 이 택배박스를 너에게 방학선물로 주겠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집에 가져가서 너만 보거라.”
그날 저녁 아이들의 SNS에는 어른 주먹보다 큰 밤송이 네 개가 들어있는 택배박스 사진과 백 선생이 A4용지에 손 글씨로 써놓은 글귀가 돌아다녔다.
‘얘들아, 찬호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더라도 너희들의 생각을 믿어라. 우주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