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구경거리가 하나 생겼다. 마을 입구 정문 삼거리에서 대산양반 노제가 벌어진다. 노인요양원에 있다 그저께 밤에 돌아가신 대산양반의 영구차가 9시께 정문 앞에 도착할 예정이니, 오늘 행사에 모든 주민이 한 분도 빠짐없이 참여하라는 마을 방송이 아침 해가 뜨기도 전인데 벌써 두 번째 이어졌다. 얼마 후 세 번째 방송이 나오자 김 과장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 분도 빠짐없이’ 참여하라는 마을 이장의 말이 주는 의무감 때문에 가 아니라, 오랜만에 꽃상여도 보고 상엿소리도 들을 수 있는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다.
대문을 나서는데 이장이 또 한 번 방송을 한다. 그의 방송 고정 멘트인 ‘한 분도 빠짐없이’를 오늘은 ‘꼭’까지 붙여서 두세 번 더 반복한다. 마을 회의나 행사에 모든 주민이 한 명도 빠짐없이 나온 적은 별로 없지만 ‘한 분도 빠짐없이’는 그의 방송에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김 과장은 ‘한 분도 빠짐없이’를 흉내 내며 골목길을 내려가다 아랫집 내성양반을 보고 헛기침을 한다. 내성양반이 돌아보며 먼저 말을 꺼낸다.
“이 사람들이 상엿소리를 제대로 낼까 싶어요. 상여를 메 본 지가 10년도 넘었을 거요.”
내성양반은 김 과장보다 나이가 일곱 살이나 많지만 집성촌 사람들의 오랜 전통인지라 항렬이 높은 김 과장에게 말을 높인다. 늦가을 아침 쌀쌀한 날씨가 추웠던지 중절모를 쓰고 있는 내성양반에게 김 과장이 인사말처럼 응답한다.
“근데 요즘도 어디서 상여를 만들어 파나 봐요?”
김 과장과 내성양반은 대산양반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보다 노제가 어떤 모습으로 치러질 것인가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 형님이 올해 102살이랍니다. 참 오래도 사셨어. 요양원에서 몇 개월 계셨지만 100살이 넘게 당신 몸으로 어지간한 것은 다 했답디다.”
내성양반은 삼거리로 가는 동안 대산양반이 ‘참 대단한 양반’이라며 몇 가지 일화를 들려주었다. 객지에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고 정년퇴직하여 다시 고향에 돌아온 김 과장에게는 모두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안개가 걷히면서 마을 앞산의 육중한 덩치가 서서히 드러날 즈음 정문 삼거리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산양반과 가까운 친척인 쑥대미양반이 노제를 치르기 위한 준비를 주도하고 있었고 마을 이장도 거들고 있었다. 정려각 담벼락 밑에는 노제에 필요한 음식과 그릇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영구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없은게 별 수 있소. 구남아제 어깨도 좀 보태야 되것어요.”
쑥대미양반이 나이 60이 넘은 구남양반에게 상여꾼을 하라며 실장갑과 수건, 장화를 건넨다. 나머지 상여꾼들은 벌써 신발을 장화로 갈아 신고 수건을 허리춤에 찔러 넣거나 목에 걸고 상여 틀을 손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마을회관 창고에 보관만 된 것이라 혹시 절단되거나 틀어져서 맞지 않는 곳이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김 과장은 상여꾼이 될 차례가 자신에게까지 올라오지 않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정려각을 덮고 있는 우람한 정자나무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자네도 이제 늙었구만. 상여꾼 축에도 못 끼는 나이가 됐어.”
김 과장은 팔짱을 풀고 누가 어디서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지 두리번거렸다. 정자나무 앞 버스정류소 벤치에 앉아 있는 내성양반이 김 과장을 보고 뭔가 말을 하는 듯 보이기는 했어도 항렬이 높은 김 과장에게 ‘자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주변에 노인들이 몇 명 있었지만 김 과장과 그런 말을 주고받을 분들이 아니었다. 더욱이 동네 사람들 대부분은 그가 이미 퇴직했는데도 그를 ‘김 과장’이라고 부른다. 김 과장은 자신의 귀가 자신의 마음속 생각을 엿들은 것이라 여기고 고개를 몇 번 돌리며 버스 정류소 쪽으로 걸어갔다. BUS STOP 영어 표지판이 오늘도 눈에 거슬린다. 마을 주민 평균 나이가 60을 넘었고 영어를 모르는 노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산골 마을에 굳이 영어 표지판을 붙여 놓은 것은 무슨 의도일까? 시골 마을의 글로벌화를 바라는 설계자의 기특한 생각일 수도 있겠구나. 김 과장은 저 표지판을 볼 때마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맥없는 노력을 한다.
상여를 실은 차가 먼저 왔다. 이어서 리무진 영구차와 장의버스가 보였고 승용차도 여럿 뒤따랐다. 상여꾼들이 달려들어 상여를 내려놓고 명정과 만장, 운아, 공포 등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나씩 안겨준다. 영구차에서 관을 내리고 상여를 씌워 노제 준비가 얼추 끝나갈 때, 삼거리는 대산양반 가족과 친지, 문상객, 그리고 한 분도 빠짐없이 참여한 동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가끔씩 떨어지는 정자나무 황톳빛 잎사귀들이 상여를 빙 둘러 장식해놓은 울긋불긋한 종이꽃 위에 내려앉았다.
다시 정려각 옆으로 올라온 김 과장은 휴대폰을 꺼내 몇 장면을 담아 넣는다. 화려한 명정과 줄 지어 선 만장, 대나무 끝에 게딱지처럼 초라하게 붙어있는 운아와 공포까지, 어쩌면 이후로는 보기 힘들 것 같은 모습들이기에 휴대폰을 가로로 세로로 돌려가며 좋은 구도를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김 과장은 제상 위에 올려놓은 대산양반 영정이 화면에 들어오자 고개를 들어 휴대폰 너머로 대산양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정자나무 이파리 하나가 날아와 머리카락 하나 없이 번드르르한 대산양반 머리를 지나 제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김 과장은 휴대폰을 집어넣고 다시 상여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순간 대산양반 영정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조선시대 고집불통 양반처럼 보이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누그러지는 듯 보이더니 조금 전 그 나지막한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허허, 자네도 이제 많이 늙었어.”
대산양반이 서서히 내게로 다가왔다. 율 브리너 머리를 닮은 대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질거렸고 손에는 짧은 담뱃대를 들고 있었다. 남들은 다 궐련을 피우는데 대산양반은 담뱃대로만 담배를 피운다. 그것도 담배 연기가 얼굴 전체를 가릴 때까지 뻑뻑 빨아대야 직성이 풀리고, 살담배가 떨어지면 궐련을 풀어서 담배통에 넣어 피운다.
땅 위로 뻗어 있는 정자나무 굵은 뿌리에 앉아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대산양반에게 인사를 했다. 대산양반은 한참이나 나를 보고 서 있더니 내 교련복을 담뱃대로 가리켰다.
“아재가 벌써 고등학생이 됐어?”
항렬이 나보다 낮은 대산양반은 나를 아재라고 불렀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의 대머리와 담뱃대가 주는 어색함 때문에 대산양반이 나를 아재라고 부를 때마다 늘 거북했다. 머쓱하게 서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는데 대산양반이 나의 손을 잡고 앞장서서 정려각으로 끌고 갔다. 정려각 안에는 정려비가 세워져 있고 4개의 둥근기둥 사이에 나무 살대가 촘촘히 둘러져 있어 어린아이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대산양반은 나무 살대를 받치는 가로 막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를 따라 들어갔고, 정려비와 나무 살대 사이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몸을 대고 서게 되었다.
“이걸 알아야 앞으로도 나에게 아재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무리 1등을 한다한들 자기 집안의 내력도 모르면 근본 없는 헛똑똑이가 돼요!”
대산양반은 ‘고려 대제학’으로 시작하여 전체가 한자로 새겨진 정려비 비문을 전면에서부터 읽어가며 해석하기 시작했다. 전면의 글자는 크기가 크고 몇 글자 되지 않아 쉽게 끝났지만, 측면과 뒷면의 작은 글자들은 정려각 안쪽이 어두컴컴해서 분별하기도 어려웠다. 분별한다 해도 드문드문 쉬운 한자 몇 개 아는 정도인 고등학생이 한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대산양반은 마치 어떤 신통력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담뱃대 끝으로 한 글자씩 짚어 가면서 또박또박 읽고 해석해 나아갔다. 가끔 침을 삼키며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초등학교 5학년 동생이 구구단 외우는 것처럼 그야말로 술술 읽어갔고, 뒷면을 다 끝내고 옆으로 돌아 마지막 한 면을 읽을 때는 목소리가 더 카랑카랑하기까지 했다. 그의 엉거주춤한 모습과 담뱃대를 쥐고 있는 주먹손을 번갈아 보며 ‘참 대단한 분이구나’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제 근본 없는 헛똑똑이는 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허허, 자네도 이제 근본을 좀 알았는가?”
익숙한 목소리에 김 과장은 눈을 뜨고 두리번거렸다. 삼거리에는 상여도 없고 노제를 지내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군내버스가 한 대 왔지만 승객이 없었던지 정차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서 간다.
“아재, 이제 올라갑시다!”
마을회관 쪽에서 내성양반이 걸어오면서 김 과장에게 소리친다.
“근데 아무리 술을 못한다 해도 막걸리 몇 잔 마시고 그렇게 곯아떨어지다니, 그런 술 실력으로 어떻게 과장까지 올라갔을까.”
김 과장은 두 손으로 얼굴을 몇 번 문지르고 내성양반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손짓했다. 내성양반은 알았다는 듯 중절모를 벗어 흔들어 보이고 비틀거리며 올라갔다.
정자나무 뿌리에 앉아 잠들었던 김 과장은 머릿속 필름을 거꾸로 돌려본다. 노제가 끝나고 동네 사람들이 술과 음식을 나눠 먹은 시점까지 기억이 났다. 좀 더 필름을 잡아당겨 보니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 준 쑥대미양반과 금동양반이 떠올랐다. 평소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김 과장에게는 폭음 수준이었다. 이장이 또 한 잔을 따라서 가져오고 있었고 김 과장은 후다닥 일어나 정자나무 아래로 도망치고 있을 때,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선소리꾼이 풍경을 울리며 앞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상여꾼들이 뒷소리를 이어가는 순간부터는 기억이 없다.
김 과장은 다시 한번 얼굴을 쓰다듬고 앞에 있는 정려각을 올려다보았다. 정려각 단청이 단풍 든 정자나무 잎사귀들과 어울려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하지만 둥근기둥 위에 도깨비 같이 생긴 화난 얼굴이 송곳니를 길게 드러내고 눈을 부라리며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에, 김 과장은 사뭇 느낌이 달라지며 정신이 든다. 불현듯 고등학교 때 대산양반 손에 이끌려 정려각 안으로 들어가 비문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는 정자나무 뿌리에서 일어나 정려각으로 다가가 나무 살대를 잡고 비문을 들여다보았다. 정려각 안쪽이 어두컴컴하기 때문에 음각된 작은 글자를 분별하기는 역시 어려웠다. 나무 살대 사이로 얼굴을 들이 밀고 좀 더 가까이 비문을 보려는 순간, 정려비 위아래를 미끄럼 타듯 움직이는 대산양반 담뱃대가 어른거리더니 어디선가 그 목소리가 또 들려오지 않는가!
“그 비문에 글자는 전부 785자라네. 자네도 대산이처럼 그걸 다 외우면 눈 감고도 분별할 거네.”
김 과장은 정려각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수령 390년 지정 보호수, 정자나무만 황톳빛 잎사귀들을 간간이 떨어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