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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타멀스 Aug 22. 2022

아내는 여시코빼기

1.

“마당에 화덕 하나 만든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한 달째 구상 중이었다. 마당에 화덕 하나 있으면 좋을 거라는 아내의 말에 ‘그거 간단하지’하며 시작했던 일이다. 화덕에 장작 숯불 만들어 고기는 물론이고 고구마, 알밤을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뭇 흥분되기까지 했다. 가마솥 걸어놓고  토종닭을 두세 시간 푹 고아 영양식으로 먹기도 하고, 돼지 뒷다리살 삶아 수육 만들어 보쌈으로 먹을 수도 있지 않는가!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하고 스스로 머리통을 때리며 화덕 설계를 착수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결코 게을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이디어와 청사진을 얻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기왕 할 거라면 멋지고 폼 나게 하고 싶었고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내  나름의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 일단 백지 위에 도면을 작성해보기로 했다. 아내에게 선물할 화덕이자 내 삶에 또 하나의 놀이터를 만들기 위한 첫 삽을 뜨는 기분으로 4HB 연필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한참이나 연필만 돌리고 있었다. 머리를 굴려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 했으나 백지상태였다. 화덕에 대한 막연하고 어설픈 생각과 느낌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실체가 없었다. 아내가 일하러 나간 동안 화덕 하나 후다닥 만들어 깜짝 선물을 해볼까도 한 순진한 생각은 사라지고 갑자기 손목에 힘이 빠진다. ‘그거 간단하지’라는 말이나 안 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를 하며 첫날을 그렇게 보냈다.


화덕 만들기 프로젝트를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서 화덕에 대한 좀 더 전문적인 지식과 자료가 필요했다. 인터넷을 뒤지고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 등을 보면서 빈 머릿속을 조금씩 채워갔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자신의 취향에 맞는 화덕을 만들어 자랑도 하고 그 기법을 친절하게 설명한 영상을 올려놓았다. 그중 어떤 것은 금속으로 제작된 고가의 화덕이나 생태 건축자재라며 황토벽돌로 만든 것도 있었다. 드문드문 탐나는 작품도 있었지만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화덕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산속에 홀로 사는 한 노인의 화덕을 보는 순간 나의 입에서 짧은  외침이 절로 나왔다. “유레카!” 그것은 자연석과 진흙으로만 만든 것이었다. 크게   품위는 없어 보이지만 내가 원하는. 특히 아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멋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 자연석으로 만들고 최대한 멋을 살려보자.  책상 위에 백지인 채로 며칠을 방치해 놓은 종이와 연필을 다시 붙잡고 본격적인 궁리에 들어갔다.


도면 작업은 화덕의 전체 모양을 그려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사각형으로  시작해서 원형, 타원형, 좀 더 폼 나게 별 모양, 꽃문양으로도 그려봤다. 그리고 건축자재는 정말 자연석과 진흙만으로도 괜찮을까? 큰비에 씻겨 무너질지도 모른다. 진흙 대신 시멘트를 사용해보자. 문명이 만들어낸 건축 접착제. 문명의 혜택을 받아보자. 아궁이가 필요할까? 돌과 시멘트로만 아궁이 시공이 가능할까? 철제 아궁이를 쓰지 않으려면 아궁이 윗부분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렇다. 아치형 석조 건축물처럼 마름모꼴이나 역삼각형 돌을 서로 맞물리게 하면 된다. 견고함을 위해 시멘트는 사용하지만 철제는 건축기술로 이겨내 보는 거다. 나는 문명과 자연의 경계선에서 이런저런 궁리, 그러니까 미적, 철학적, 건축공학적 궁리를 해가며 그 결과를 정리해 나갔다.


그리 넓지 않은 마당에 화덕이 자리 잡을 장소 또한 중요하다. 도면을 들고 마당에 나가 현장답사를 했다. 최적의 장소를 고르기 위해 우리 집이 위치한 지형  전체를 둘러보고 현관문에서 이어지는 동선도 고려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집에 맞게 아궁이의 방향도 정했다. 불을 피웠을 때 산불의 위험은 물론이고 겨울 북서풍의 방향이 화덕에 미치는 영향을 참작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산소부족으로 화력이 시들해질 수도 있으니 화덕 아랫부분 적당한 곳에 작은 숨구멍도 하나 만들었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데 이렇게 잘하고 있다는 내가 대견했다. 비행기를  설계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화덕 일이 끝나면 문간 옆에  첨성대도 하나 만들어 볼까? 궁리의 고통과 즐거움을 넘나들며 어느 정도 구상이 마무리되었다. 그렇다고 바로 시공에 들어가지 않았다. 숙고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밤새 쓴 연애편지를 아침에 읽어보고 구깃구깃 구겨서 내던진 연애 시절 내가 아니다. 멋진 화덕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나는 화덕의 실용성이나 화덕 주변에 마련할 설치물 등에 대한 고민을 더했다.


화덕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한 그 모든 것을 설계하는데 이렇게 한 달이 걸린 것이다. 화덕으로 마당 한 공간을 채우는 것은 결국 궁리를 채우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설계도에 있는 화덕을 마당에 그대로 구현하는 일이다. 하지만 모양을 내며 돌을 쌓는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닐곱 날을 쌓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고, 다시 사나흘 동안 마무리 손질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화덕 만들기 대장정이 끝났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여! 혹시 생각했던 것만큼 화덕이 멋지지 않고 볼품이 없을지라도 그것은 나의 궁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오. 나의 손놀림이 궁리를 따라 맞추지 못한 결과이지. 그렇다고 서툰 내 손만을 탓하면서 부족함을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라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나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다오.

다행히 아내는 여시코빼기다. 나는 알다가도 모를 일을 아내가 눈 한 번 깜빡하면 모르는 것이 없어지고 헷갈리는 일이 정리된다. 어쩌다 내가 눈 한 번 잘못 깜빡거리거나 헛기침만 해도 아내는 금세 나의 낌새를 알아차리는 소통의 달인이다. 그런 아내가 나의 궁리를 모를 리가 없고 따라서 내 작품의 진가를 허투루 보지 않을 것이다.


화덕을 완성하고 주변을 정리한 다음 우리는 점화식을 하기로 했다. 배가 불룩하게 올라와 동글동글한 송편 같은 달이 뜨는 날을 디데이로 잡았고, 나는 불놀이 이벤트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며 들뜬 기분으로 며칠을 보냈다. 디데이 아침에는 아내도 은근히 달밤 불놀이가 기대되는 양 콧노래를 부르며 거실과 주방을 드나든다. 해 질 녘이 되자 나보다 달이 더 성급한 듯 앞산 머리 위에 얼굴을 내밀고 장작을 쟁여놓은 화덕을 내려다본다. 나는 휴대폰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하여 잔잔한 배경 음악을 깔고 제법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한 후, 화덕 둘레를 몇 바퀴 돌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달빛이 노랗게 무르익자 아내는 작은 무드 등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왔다.

“분위기 죽이네. 근데 장작에 불 붙이면서 축가 하나 틀어야 하지 않아? 당신의 멋진 작품에 어울리는 노래로.”

그래, 이 순간을 기다렸지. 불꽃 위로 음악이 흐르고 아내와 축배를 들이키며 나의 궁리의 과정을 자랑하는 시간. 나는 휴대폰 속에 준비한 노래를 눌렀다.  

“오! 이 노래, 박인희의 ‘모닥불’!”

점화식 축가를 어떤 곡으로 할까 궁리하면서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와 박인희의 ‘모닥불‘을 여러 번 들어가며 며칠을 고심했는데, 아내가 오늘 아침 박인희의 '모닥불'을 콧노래로 부르며 지나가는 것을 보고 바로 그 곡으로 결정했다.

“이 노래 틀 줄 알았어. 당신은 어쩜 나하고 그렇게 코드가 딱 맞아. 아!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멋진 화덕에 불을 밝히는 거야?”

아내의 칭찬에 하마터면 화덕 위에 올라가 춤을 출 뻔했다. 나는 아내와 손을 잡고 일어나 바리톤 음성으로 오프닝 멘트를 날렸다.

“여시코빼기님, 이제 이 화덕에 불을 내리십시오!”

아내의 점화가 내 궁리의 산물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2.

정년퇴직한 남편에게 숙제를 주었다.

“우리 집 마당 한쪽에 화덕 하나 만들어 놓으면 어떨까?”

“화덕? 그거 간단하지.”


퇴직하기 전 남편은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다면서 퇴직을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퇴직하고부터는 뭘 하는지 몰랐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출근 준비하는 나보다 더 바쁘게 집 안팎을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퇴근하고 집에 와서 보면 소파에 누워 한가롭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당신 아침에 씩씩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오늘은 정말 뭔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는데, 조용하네.”

“긍게 그것이 좀 거시기하네.”

맘먹었던 것이 마음대로 안 되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DIY 해보겠다고 몇 가지 것을 뚝딱뚝딱 만들기도 하고 에 나가 마당을 꾸미는 일도 하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남편은 마당일에 더 관심이 많다. 텃밭도 가꾸고 나무를 손질하며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갈수록 많아졌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몸도 쓰고 마음도 쓰며 그의 특기인 궁리에 빠지게 하는 것, 그러면서 성취감을 맛보고 결과물에 대해 나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그에게 화덕 만들기 숙제를 주었다.


‘그거 간단하지’라고 말하며 시작했던 화덕 만들기는 열흘이 지나도, 스무날이 지나도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얼마 전에는 남편이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며 어떤 화덕이 좋을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화덕의 기능은 크게 차이가 없을 거니까 자연스러운 멋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해봐”라고 말해 주었는데, 잠시 후 “유레카!”라고 외치는 소리가 욕실까지 들려왔다. 그러나 여전히 화덕을 시공하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분명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연애 시절 남편은, 나에게 첫 번째 편지를 쓰면서 편지지 25장을 버렸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남편은 화덕을 구상하고 설계하는데 25일은 걸릴 것이다.


한 달이 지나면서 남편이 마당에 돌을 쌓기 시작했다. 일단 벽돌이 아닌 자연석으로 화덕을 만드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마당에는 돌과 시멘트 포대만 널브러져 있고 화덕의 형태를 갖춘 구조물은 보이지 않았다.

“긍게 그것이 좀 거시기하네.”

남편은 헛공사만 했다고 투덜거리며 시멘트도 없이 첨성대를 축조한 사람들은 천재들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첨성대는 반듯한 직사각형 석재로 지었지만 당신은 동글동글한 송편 같은 돌로 화덕을 지으니까 더 어려울 수 있어. 돌의 모양에 따라 궁합을 잘 맞춰봐.”

“오호! 바로 그거구나. 돌의 궁합!”


화덕을 완성하고 우리는 점화식을 하기로 했다. 남편은 이벤트 하기에 딱 좋은 날을 잡아야 한다며 손가락으로 달력을 짚어가며 진지한 모습을 보였고, 틈만 나면 마당에 나가 화덕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디데이 아침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7080 노래를 골라 휴대폰에 저장하고 있었는데, 점화 순간에 틀 노래인 듯 마지막 두 곡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한 곡을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달밤에 펼쳐질 불장난을 은근히 기대했다.


해 질 녘이 되자 남편은 탁자와 의자를 밖으로 내놓고 이것저것 준비물을 가져가 화덕 주변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의 휘파람 소리와 문 여닫는 소리가 없어지고 조용해서 밖을 내다보니 남편이 화덕 주변을 서성거리며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화장을 마치고 무드 등을 챙겨 현관문을 나섰다. 하늘에는 동글동글한 송편달이 차려져 있었고 마당에는 잔잔한 음악이 깔려 있었다. 내가 불쏘시개에 불을 붙였을 때 박인희의 ‘모닥불’이 하얀 연기를 타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노래 틀 줄 알았어. 당신은 어쩜 나하고 그렇게 코드가 딱 맞아.”

“내가 여시코빼기 남편이잖아. 나도 이제 눈치가 7단 정도는 된다고.”

“여시코빼기가 뭐야. 촌스럽게. 이 분위기에 맞게 좀 멋있는 별명 없어?”

“그럼 이거 어때? 원더우먼. 아니면 슈퍼우먼. 그것도 모자라면 앞에 어메이징을 붙여줄까?”

“그냥 여시코빼기로 하자. 촌스럽기는 하지만 리얼하네.”


남편은 화덕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가 겪은 궁리와  그가 이룬 성취를 세세히 설명했다. 화덕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그곳이 그렇게 된 이유와 과정을 마치 전쟁 영웅의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그러다 송편 같은 달이 머리 위로 지나갈 때쯤 우리는 술기운에 흥이 불어났고,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가 나오자 남편은 두 손으로 허공을 쑤시며 지휘를 하기도 했다. 나는 술에 취하고 모닥불에 달아오르고 달빛에 젖어 한동안 남편의 팔을 껴안고 어깨에 기대 말없이 불구경 달구경을 하며 음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드뷔시의 '달빛'이 피아노 건반을 더듬듯이 흐르고 있을 때 문득 그 옛날 남편과 달빛을 타고 불장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연애 시절, 오늘처럼 저렇게 동글동글한 달이 떴을 때, 어른들 몰래 불장난했던 거 기억나?”

그러자 남편이 팔을 빼고 나를 바라보더니 바리톤 음성으로 능청맞게 대꾸한다.  

“그때는 은밀한 불장난이었고 지금은 로맨틱한 불놀이지. 불장난과 불놀이는 엄연히 달라.

"뭐가 다른데?"

"그러니까 불놀이는 말 그대로 그냥 재밌게 노는 거고, 반면에 불장난은, 뭐랄까, 좀 거시기하잖아. 철없는 젊은 애들이나 속없는 어른들이 생각 없이 하는 짓이지." 

그래도 나는 불장난하고 싶은데.”

불장난을?”

남편이 놀란 척 엉거주춤하다가 나의 양쪽 귀를 싸잡고,

“좋아. 근데 어떤 버전이 좋을까? 은밀하게? 아니면 로맨틱하게?”

나는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서

“둘 다.”

“여시코빼기님, 욕심도 많으셔.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불장난 한번 해볼까.”


송편달이 닭살을 감추려는 듯 구름 한 조각을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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