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햇살은 한 가닥도 버릴 수 없다. 아침햇살이 삐죽삐죽 대나무 사이로 퍼지기 시작할 때 그 빛줄기 받으러
장독 위에 소쿠리를 올려놓았다. 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장두감 몇 개 따서 두툼하게 썰어 놓은 것이다.
가을에는 눈만 돌리면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있지만 나는 감말랭이를 좋아한다. 창가에 앉아 따뜻한 차와 함께 먹는 말린 감은 달콤한 가을 한 조각을 맛보는 행복을 주고 창밖에 펼쳐진 가을을 가슴에 듬뿍 채워준다.
앞마당 감나무에는 다 익은 노란 장두감이 아직도 수십 개가 달려있다. 그중 몇 개는 홍시가 되어 까치 부부가 번갈아 가며 쪼아 먹고 있다. 찻잔을 놓는 달가닥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 놈은 전봇대 꼭대기에 앉아 망을 보는 듯 보이지만 고개만 몇 번 돌릴 뿐 짝꿍의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는 모습이다.
“쟤들은 당신을 아빠라고 생각하나 봐.”
아내가 감말랭이를 뒤집으러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그제야 놈들은 대나무 숲 옆 은행나무로 날아간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그 은행나무에 그들의 보금자리가 있다.
“저 대나무 소쿠리, 어머님이랑 담양 대나무축제에 갔을 때 어머님이 샀던 거 당신 알고 있어?”
감말랭이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직접 고르고 샀던 대나무 소쿠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나무축제에 가자고 먼저 말씀하신 어머니의 속내는 축제를 구경하려는 것보다 마음에 드는 괜찮은 소쿠리 하나 사고 싶은 당신 나름의 뜻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홍시를 더 좋아했다. 주먹보다 큰 장두감 홍시를 드실 때는 돈가스 먹는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홍시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창가에서 장두감을 썰어 소쿠리에 널고 있으면 어머니는 아내를 보고 나의 흉을 보았다.
“쟈가 곶감 씨 빼내고 먹는 것이 귀찮아서 저러고 있단다.”
그러면 아내는 신이라도 난 듯 어머니 말에 맞장구를 친다.
“홍시는 껍질 벗겨 먹기 귀찮고 손이 끈적거려 싫대요!”
곶감이나 홍시나 먹을 수 없는 씨를 빼내는 작업은 귀찮은 것이 사실이고 더욱이 식감의 연속성을 깨트린다. 미리 씨를 빼고 말려 먹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 홍시는 모두 아내 차지였다. 모두라고 해봤자 몇십 개 안되지만 아내는 어머니만큼 홍시를 좋아한다.
감꽃 떨어지고 감또개도 쏟아지고 비로소 감같이 생긴 어린 감들이 올망졸망 감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부터 아내는 홍시 먹는 꿈을 꾼다. 창밖을 보며 손가락으로 감을 세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감이 부정을 타서 떨어진다는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던지 턱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숫자를 센다.
“대충 999개는 되것네.”
아내가 세는 둥 마는 둥 그야말로 대충 어림잡은 999개의 어린 감들은 장마철 비바람을 못 이기고 매일 아침 수십 개씩 떨어졌다. 올해는 유난히도 길고 습한 여름을 보내면서 아내의 홍시 풍년의 꿈은 서서히 멀어진 듯 보였다. 마침내 장마가 끝나고 남아있는 감은 3분의 1, 즉 333개쯤 되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두 번의 태풍이 그중 3분의 1, 즉 111개쯤을 빼냈고, 태풍이 끝나니 벌레들이 노닐면서 또 111개쯤을 떨어뜨렸다.
가을이 깊어가고 감이 익어갈 즈음 우리 집 감나무에는 장두감이 111개쯤 남아 있었다. 식구 두 명이 먹기에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특별한 식구가 또 있다. 언제부터인지 은행나무에 둥지를 틀고 몇 대를 걸쳐 우리와 함께 살아온 까치 부부가 있다. 그놈들은 실컷 먹어도 10여 개 정도면 되지만 그들도 충분히 먹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석과불식碩果不食, 복을 받으려면 서너 개쯤은 더 남겨둬야 한다. 까치가 배불리 먹고 낮잠 자는 사이에 대나무 숲에서 기회를 엿보는 물까치, 동박새, 직박구리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늘과 자연이 버무리고 아내의 꿈이 깃들어서 감나무가 우리에게 준 장두감은 99개 정도이다. 나도 차를 마시면서 찻잔 위로 흐르는 김만큼 작은 기운을 보태기도 했고, 우리 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은행나무도 분명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했을 것이다.
99개의 장두감은 많은 것이 보태졌고 깃들여진 결과물이다.
늦가을 해가 감나무를 넘어가고 까치가 망보는 2시 방향 전봇대 위에 이르렀을 때 나는 말린 감을 또 하나 입에 넣는다. 열흘 전부터 썰어 말린 장두감이 이제 먹기에 딱 좋은 상태이다.
창밖 감나무에는 감과 감잎이 얼추 비슷한 숫자로 남아있다. 아침에 딴 몇 개의 장두감은 나의 몫으로 배당된 마지막 감이었다. 나머지는 내일 서리 한 번 더 맞히고 따게 될 아내 몫이다. 아내는 벌써 빈 사과상자 몇 개를 준비해 놨고 장두감을 수확할 생각에 흥분한 모습이었다.
아내는 홍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정말 솜씨 있게 먹는다. 홍시를 접시에 올려놓고 그 얇고 물렁한 껍질을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한 터치로 벗기는 작업은 거의 예술에 가깝다. 그리고 아주 맛있게 먹는다.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어린아이 같다.
“이게 다 당신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거야.”
인색한 늦가을 햇볕에도 아침에 소쿠리에 널어놓은 감말랭이가 제법 꼬독꼬독해졌다. 그러나 자꾸 감말랭이보다 소쿠리에 눈이 간다. 어머니가 앞장서 구태여 담양까지 가서 사 왔던 대나무 소쿠리는 감을 말리기 위한 도구를 넘어서 나에게는 어머니 그 자체이다.
감말랭이를 뒤집고 있는 아내의 손놀림이 점점 어머니를 닮아간다. 은행나무는 간간이 노란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까치 부부는 낮잠을 자는지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