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노인은 정월 초사흘에 산길을 가다 어느 대궐 같은 절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보살 같은 어느 여인이 큼지막한 수십 마리 꿩을 내다 버리고 있었다.
“떡국 끓일 때 넣으려고 잡은 꿩 같은데, 왜 죄다 버립니까?”
“죄다 버린 게 아니고요, 우리 같은 아랫것들이 잡아먹고 남은 겁니다. 어른들은 꿩고기는 안 먹어요. 꿩은 경박한 날짐승이라며 묵직한 소를 잡아먹지요.”
되돌아오는 길에 그는 보살 같은 어느 여인이 내다 버린 꿩 한 마리를 주워 가려고 대궐 같은 그 절 앞을 두리번거렸으나, 꿩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보살 같은 어느 여인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
“여기에 버린 꿩들이 안 보이네요. 한 마리 주워 가려고 했는데.”
“몇 놈은 죽은 척하고 있다가 살아서 날아갔고요, 나머지는 저 아랫마을 양반 것들이 주워 갔습니다.”
그러면서 보살 같은 그 여인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소고기 떡국을 쏟아 버린다.
“소고기 떡국이 맛이 없었던 모양이죠?”
“맛이 없는 게 아니고요, 먹다 남은 겁니다. 요새 아이들은 소고기 떡국은 안 먹고 햄버거만 먹어서 소고기 떡국이 이렇게 많이 남았답니다.”
그는 대궐 같은 그 절을 지나 한참을 가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대궐 같은 그 절은 이제 보니 절이 아니었다. 지붕이 뾰족한 걸로 보아 교회 같기도 했으나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산을 내려와 이름 없는 어느 카페에 들렀다. 카페 주인장과 차 한잔 하면서 뒷산 언덕에 대궐 같기도 하고, 절 같기도 하고, 교회 같기도 한 것이 무엇이냐고 주인장에게 물어보았다.
“나도 한때는 그곳에서 잠시 기거한 적이 있었지요. 임금이 없으니 대궐은 아니고, 부처님이 없으니 절도 아니고, 예수님도 없으니 교회도 아니지요.”
“근데 지붕이 뾰족하고 엄청 높이 솟아 있던데요.”
“그건 지붕 같아 보이지만 지붕이 아닙니다. 황금으로 쌓아 올린 우상입니다. 옛날에는 황금 그대로 보였는데 언제부턴가 돌로 붙이고 청동으로 덮어 금은 보이지 않지요. 근데 진짜 재미난 것은, 그것이 산꼭대기보다 높아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 당신 같은 사람들은 모른다는 겁니다.”
주인장은 ‘당신 같은 사람들’을 말할 때, 손가락으로 김 노인을 가리키며 '사람들'을 힘주어 말했다.